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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Aug 11. 2019

화목한 가정에서 꼬르프 스튜디오까지

사람여행

   이번에 내게 된 꼬르프 스튜디오(Korf Cooking Studio)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초는 어쩌면 음식보다는 언어였을 거야.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영어를 참 잘하셨거든. 부대에서 외국인과 만나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언제나 주인공처럼 한가운데 자신만만하게 서계셨던 아버지 사진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외국어 배우는 것에 열심이었던 거 같아. 친구들도 그러더라. 내 손에서 영어책이 떨어지는 꼴을 못 본 것 같다고. 그럼에도 영어 실력이 생각만큼 오르지 않자 대학을 들어간 후엔 다시 불어를 배우느라 열을 올렸지.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된 거야. 남편의 고향으로 내려와 살다보니 모든 게 새로운 관계였어. 그런 상황에서 좋은 매개가 되어준 것이 음식이었던 거 같아. 서로 생각은 달라도 정성을 들인 밥상처럼 누구나에게 반가운 게 또 있을라구. 아, 이거구나 싶더라. 칭찬받는 만큼 나 또한 더 정성을 들이게 되니 이 또한 관계를 이어가는 대화의 한 형태일 수 있으려나. 서로 다른 문화와 행동 사이에서 그나마 화합의 하모니를 이룰 수 있는 가장 공통된 부분이었어. 그렇게 남편과 아이들은 물론 시부모님과 정을 쌓아갔지.


   마침 이곳 대전은 연구단지가 있어서 외국인의 유입이 많은 곳이야. 늘 근처에 있는 대학교를 어른거리며 도서관 이용을 하곤 했는데 거기에서 한국음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 살아있는 외국어공부를 하고 싶어서 그런 사람을 몇몇 모아 우리집으로 초청했지. 한국음식을 가르쳐주겠다고. 외국인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려면 어쩔 수 없이 영어를 해야하고 식탁에서 나누는 대화를 통해 저절로 살아있는 언어를 배울 수 있었으니까. 그런 식으로 재료비만 받고 공부 삼아 시작한 게 십년도 더 됐네. 더 제대로 가르쳐주려고 숙명여대 한국궁중요리반 과정을 다니며 배우기도 했어. 어쨌든 외국인과 만나는 동안은 나도 작은 외교관이니까. 우리 문화에 대한 공부도 이것저것 관심있게 하게 되더라.


   ‘르 꼬르동 블루’에 입학할 때도 마찬가지였어. 뭔가 평생의 배움과정에서 나름대로의 맺음을 할 수 있는 징표로 의미를 두었지만 그 처음은 역시 프랑스 요리보다는 그 과정에서 불어까지 배울 수 있다는 매력이 더 크게 작용했지. 그만큼 나에게 외국어란 아빠에 대한 애틋한 동경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흐름에 항상 열려있으려는 상징적인 그 무엇이었던 것 같아. 서울을 떠나 대전에서 전업주부로 살게 되다 보니 혼자만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많이 있었어.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좋은 직장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었거든. 그런 친구들에 비해 시대에 뒤떨어진 답답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거 같아.


   사람들은 평생 지치지도 않고 무언가를 배우던 나에게 이제 그만 서성이고 빨리 세상으로 나와 뭐라도 저질러보라고 수도없이 독촉했지. 나 역시 지금보다 더 빨리 서둘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어. 하지만 그조차 마음대로 안되더라. 나만의 속도를 잃으면 도저히 기운을 차릴 수가 없더라니까. 그럼에도 늦게나마 이렇게 작은 나만의 부엌을 사무실로 갖게 되니 참 좋아. 뭔가 내 인생의 주제가 생긴 느낌이랄까? 뭔가 긴 여행 끝에 이제야 비로소 내 집에 들어선 느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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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시50플러스재단 당사자연구 <엄마경력을 살려 자기 일을 찾은 50+ 선배주부 성공사례> 보고서의 일부로, 50+선배주부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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