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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Jul 27. 2019

이젠 남을 꾸며 주며 살지

사람여행


평생 내가 제일 잘했던 건 뭘까? 그건 ‘꾸미는’ 걸 거야. 전업주부 생활이 따분했냐고? 아니 전혀! 너무 행복했어 나는. 매일 먼지 하나 없이 쓸고 닦고 매만져서 이제 막 잡지 책에 나올  집처럼 분통같이 만들어놓고는, 예쁘게 화장하고 머리만지고 입고 백화점으로 나가서 또 디스플레이 된 것들을 구경하고.


그러다가 애들 올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와 다시 먹이고 입히고. 그 모든 하나하나의 일상이 풍성하면서도 기분좋아지도록 꾸미는 게 엄청난 재미였어. 애들 교육에 열성을 낸 것도 어쩌면 아이들을 보기 좋게 꾸미려던 거 아니었을까? 내 인생 모토가 ‘겉 볼 안’이었으니까.


우리 때야 남편 번 돈을 살림하는 엄마가 몽땅 쥐고 썼으니 경제력도 쎘지. 그래도 뭐 빚까지 내가며 살 순 없잖아. 월급쟁이 생활이 빤한데. 자연히 어떻게 하면 적은 돈으로 가장 폼나게 꾸밀 수 있는지 쇼핑 노하우가 점점 쌓일 수 밖에. 그런데 그런 엄마만의 생활도 아무 필요가 없는 때가 결국 오더라구.


오십줄에 들어서니 아무리 잘난척하고 예쁘게 입어봐야 결국 남의 눈에는 그냥 나이든 아줌마 밖에는 안되는 거라. 레스토랑에 가도 물 흐릴까봐 구석자릴 찾아들게 되고 어딜 가도 괜히 환영 못받는 사람이 된 것처럼 주눅이 들게 되더라. 집도 아무리 예쁘게 꾸며놓으면 뭐해. 함께 그 속에서 일상을 보내줄 아이들이 이젠 없는데. 


처음에는 막연히 카페를 차리면 어떨까 싶었어. 멋진 인테리어 실력을 발휘해 꾸며놓고 커피와 샌드위치를 팔아보면 어떨까 싶었지. 제일 익숙한 거니까. 교회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도 1년이나 봉사를 했었거든.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까 망하면 의자와 탁자만 남겠더라구. 아우 내가 그런 건 또 못 보지. 그래서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작은 니트옷 가게를 내게 됐어. 한참 아이들 학원 로드매니저로 쫒아다니게 되었을 때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뜨게질을 짬짬이 했거든. 그거에 완전 재미가 붙은 거야.  누가 실값만 주면 공짜로라도 당장 떠줄 수 있겠더라니까. 


엄마는 남들 다 은퇴하는 나이에 사모님에서 갑자기 장삿꾼이 되려는 딸을 못마땅해 하셨지. 나도 처음에는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서 동네 뒷길에 사람도 드나들지 않는 구석에 작은 가게를 임대했어. 가게세는 한 달에 30만원. 그동안 떠놓은 옷을 가져다 걸어놓았지. 예쁘게 꾸미는 건 어차피 내가 전공이니 걱정할 것도 없었고. 주윗사람들은 가게 지키느라고 돈 쓰러 다닐 새가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돈 버는 거라고 조급히 생각하지 말라더군.


그렇게 시작해서 벌써 14년이 됐네. 사람들은 성공한 내 가게를 기웃거리면서 나도 뜨게질 배워 이런 가게나 내볼까요 하며 기웃거리기도 해. 네, 해보세요~ 하고 웃어주지만 글쎄 누군가 나처럼 성실하게 해낼 수 있을까 싶네. 남들 눈에는 일주일에 4일만 오픈하고 6시면 문을 닫으니 놀면서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이 모든 걸 혼자 다 해내는 일이 정말 보통 정신으로는 되는 게 아니야. 백조의 두 다리가 물 밑에서 얼마나 바쁜지 모르는 말씀이지. 주말에는 뭐 쉴 수나 있다니? 밀린 집안 살림에 위로 아래로 돌봐주러 다녀야 할 사람이 한 둘이냐고.


난 전업주부 시절에도 평생 누워서 뒹굴거려본 적이 없어. 드라마를 보면서도 멸치 똥을 따고 다림질을 해야 시간이 아깝질 않았거든. 그 내공이 모여 오늘의 내가 된 거 같아. 아이들 키우며 살림하던 눈썰미와 부지런함으로 이젠 다른 사람을 꾸며주고 돋보이게 하는 일을 하게 된 거 같아. 쉴 새 없이 백화점이고 시장이고 다니면서 구경하고 사입고 했던 것들이 지금 와서는 시장조사비 , 연구비였던 셈이네. 하하하.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거는, 이전에는 어떤 일이라도 내가 하고싶고 재미있으면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자꾸 기회비용을 생각하게 돼.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에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게 마음에 걸려서 오히려 옛날보다 더 심리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것 같아.  그게 너무 속상해. 더 자유로워지고 더 오래 하고싶은 일을 하려고 돈을 벌기 시작한 건데 말야. 


그래서 아이들이 다 취직하고 난 뒤에는 과감하게 평일 하루를 더 쉬고 있어. 나를 위한 시간이 너무 없어서. 결국 그 시간에 이리저리 일 핑계로 못했던 사람 도리를 하느라 시간을 다 보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주객전도가 되는 삶을 경계하고 싶어서 아직 일주일의 하루는 나를 위한 시간으로 남겨놓고 있어.


뭘 자꾸 후배 엄마들한테 쑥스럽게 한마디를 하라그래. 지금 내가 엄마를 다시 한다면? 글쎄...나는 아이들한테 밥은 꼭꼭 차려주고, 간섭은 안하는 엄마로 살 거 같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 욕심으로 애들을 너무 흔들어댄 거 같아서 애들이 힘들었던 거 같아. 나중에 보니까,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내팽개치니 애들이 더 잘 크더라구. 그럼에도 밥은 꼭꼭 챙겨먹이고 싶어. 그거만큼 따뜻한 엄마와의 교감이 어디 또 있겠냐?



#오지랖통신 #사람여행 #빈둥지리노베이션 


2019 서울시50플러스재단 당사자연구 <엄마경력을 살려 자기 일을 찾은 50+ 선배주부 성공사례> 보고서의 일부로, 50+선배주부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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