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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은 Sep 09. 2017

간병인의 한 숨

사람여행

아이를 키울 때는 선생님을 자주 만나게 되더니, 나이들어가며 자주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간병인이다. 사람마다 환자를 대하고 돌보는 방법이 제각각이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 아이를 돌보며 키웠을까 의문이 갈 정도로 같은 일을 하면서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 중 좀 오래 인연을 맺게 된 간병인 한 분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결혼 기간 내내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어요. 홀어머니는 남편을 절대 놔주지 않았죠. 저는 그 집에서 종년처럼 살았습니다. 시어머니보다 한 술 더 뜨는 남편에게 정말 배신감이 들더군요.

얼마나 가부장적인지 지금도 성가한 아이들한테까지 끊임없이 못마땅한 것들을 지적합니다. 애비 성격이 불인데 아이 성격이 물일라고요. 우리 가족은 서로 웬만하면 안보는 게 낫습니다. 그런 와중에 컸는데 교수도 되고 공기업도 다니며 제 구실하고 있는 애들이 눈물나게 고맙지요.

간병인이 되는 게 정말 험한 일이거든요. 아이들 다 키우고 참다참다 뛰쳐나와 이 길로 들어선지 벌써 십 년 됐어요. 제가 집을 나오고 나니 갑자기 집안이 난리가 났지요. 남편 사업은 가라앉고 생활은 엉망이 되더군요. 그러는 새에  시어머니도 돌아가셨고요. 그 집의 모든 걸 종년인 제가 지탱하고 있었기에 갑자기 우르르 무너진 꼴이예요.

저는 사회생활 재수가 좋았는지 처음부터 믿고 의지해주는 환자 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6년 넘게 같은 집에서 일했으니까요. 숙식을 해결하니 늙은 여자의 하루벌이로는 수입도 좋은 편이었습니다. 뒤늦게 돈 맛을 알았네요. 요새는 외려 시어머니한테 고맙습디다. 그렇게 벼랑 밖으로 나를 던질수 있게 해준 사람이니까요.

남편이랑 이혼은 안했으니 가끔 집에는 들어갔어요. 중환자실 환자를 볼 때는 밤근무를 안하거든요. 그땐 출퇴근을 했는데 그게 더 죽겠더라구요. 집에만 가면 지옥이니까. 불화가 잦아지면 아예 찜질방으로 내빼곤 했어요. 한 달 전인가 제 버릇 개 못주고 또 어거지를 쓰며 저를 못살게 굴기에 이젠 정말 마지막이다싶어서 짐을 싸고 나오는데 남편이 붙들어요. 이제 나가면 정말 끝이라는 걸 알았나봐요. 무릎까지 꿇더라구요. 그러곤 여태 잠잠해요. 


진작 좀 구부려서 타협하고 포용하며 서로 살 길을 찾아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서로 평생 못할 일만 한 거죠. 새로 찾은 제 인생은 고맙지만 지난 세월이 너무나 안타까워요. 뭡니까 이게.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그간의 사정이 그려졌다. 누가 나쁜 사람이고 누가 좋은 사람인지 가늠하며 함께 핏대라도 올리면 좋을 텐데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들었다. 어쩔 수 없이 관계 속에 얽혀 부대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속 등장인물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그래 맞아. 우리 모두 그런 식으로 부대끼며 살았지. 누구는 그래도 참을 만한 수준이었고, 누구는 도저히 참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던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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