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특강
“인간은 그가 놀 때만 지극히 인간적인 존재다.”
교육철학자 쉴러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생의 격랑에 허푸대며 수십년을 돌아치고 나면 누구나의 머리 속에 한번쯤은 그런 생각이 떠오르긴 합디다. 하지만 어디요. 금세 자랄 때부터 인이 박혀버린 근면과 성실, 노력에 대한 강박증 때문에 곧 자기 스스로의 목을 다시 조이곤 하지요. 굳이 그럴 것 없는 순간에서조차 노는 것에는 어느 정도 죄책감이 생겨요. 좀 더 빡세게 살아야겠다고 반성하면서 아등바등 살아가게 되지요. 그런 우리들에게 친구 영란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말이다. 너희들에게 그냥 몸으로 노는 걸 가르칠란다. 내가 쫌 잘 놀거덩?
대학 다닐 땐 서울로 갓 올라와가지고 정신이 없어서 내 많이 쫄아 있었단다.
공부만 하고 영 숫기없이 주눅들어 지냈던 거 같어. 그것도 다 옛날 얘기다.
이젠 뱃심 좋은 아지매가 되어부렀잖냐.
내가 요즘 어떻게 변했는지, 뭐하고 노는지 쫌 보여줄게.
그니까 니들은 그냥 놀고싶은 마음과 가볍고 즐거운 몸만 들고 오니라.
우리 교회 비밀 아지트에서 바베큐도 한 판 해 줄테니 그 날은 그저 다 내려놓고
마음껏 즐겁겠다는 결심만 하고 오면 된다. 알긋냐? 들??"
그런 연유로 조금 아카데믹 했던 우리끼리 특강 여섯번째 모임은 어느 야밤의 화려한 외출처럼 설렘을 동반한 저녁 나들이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모이라는 장소는 남산 기슭의 어느 교회였습니다. 서울 한복판에도 이런 동네가 있었던가 싶게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끼고 돌아가니 주택가 한 편에 갑자기 그녀가 말한 교회 건물이 턱 버티고 서있었습니다.
이미 부지런한 친구들이 먼저 테라스에서 상을 차리며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한번 대표는 영원한 대표라고 부추켜 아직도 우리들의 수장 노릇을 하고 있는 기애는 이 날도 역시 미리 시장에 들러 달달한 로즈 버니니 몇 병과 와인, 과일을 준비해서 왔더군요.
시월의 바람이 선선하게 목덜미를 간지르는 가을 저녁, 우리 친구 아홉명은 영란이가 땀 흘리며 구워놓았을 삼겹살 훈제 바베큐를 가운데 썰어놓고 건배를 했습니다. 따끈한 밥과 된장국과 각종 밑반찬을 준비하느라 수도없이 층계를 오르내렸던 그녀의 집은 알고 보니 이 교회의 1층이었습니다. 교회 다니던 친구들이 함께 독서클럽을 하면서 그들만의 유토피아을 꿈꾸었고, 십 여 년 인연을 이어가다가 드디어 함께 투자해 현실 속에 유토피아를 현실 세계에 건설하려고 교회 공동체를 만들었대요.
개척교회를 시작한 목사부부 이야기는 여러 군데서 들어 봤지만, 성경공부로 시작한 독서모임이 그들의 믿음대로 운영할 교회를 건설했다는 이야기는 처음이어서 참 흥미롭더군요. 이 교회는 신도가 되기도 쉽질 않나봐요. 그들만의 규약이 있어서 그걸 함께 지켜나가야만 공동체 일원이 될 수 있대요.
그녀의 말로는 250명 정도의 커뮤니티가 형성이 되니까 그 안에서 공동 소비를 추구하며 서로의 빈자리를 메우는 품앗이 공동체로서 기능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각자의 삶에서 필요한 정보, 인력, 지식이 서로 원활하게 교환되고 지원 되다보니 혼자서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대요. 어울려 살며 서로 힘을 얻는 거죠.
그녀의 만족한 얼굴, 뭘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늘 여유로웠던 품새는 아마도 이런 공동체 울타리의 힘이었던 것 같아요. 서로 배우고, 모자란 것을 채워주고, 내 것을 아무리 퍼줘도 손해라고 느껴지지 않는 공동체의 원형을 그들은 정말로 건설한 걸까요? 믿음에서 출발하고, 배운 것을 몸소 실행하며 30년을 함께 해 왔다는 사람들의 저력이 정말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 넘치는 사랑 덕에 우리 친구들은 이날 황홀한 기분으로 웃고, 떠들고, 즐겼습니다. 잊지 못할 행복한 가을 저녁이었지요. 몸으로 놀자고 했는데 그냥 입으로 떠들고 혀로 맛보고 뱃속까지 호사하니 무엇을 더 바랄까 싶어 움직이기도 싫었던 날이었습니다.
맞아요. 우리는 이 날 참 마음껏 인간적이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그 날을 생각하면 콧노래가 흥얼거려집니다. 그런 시간을 우리에게 선사하느라 종일 동동거렸을 친구 영란이, 그녀의 수고만큼 우리에게도 행복 세포가 생겼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고 있는 그녀가 참 대견하면서도 고마웠습니다.
잘 살아봅시다. 이렇게 서로 다른 곳에서도 각자의 살아가는 방법을 응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