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특강
다섯번째 우리들의 특강이 논현동에 있는 로얄앤컴퍼니 강의실에서 열렸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다가 중간에 다시 상담 공부를 시작했다던 광경이가 지난번 만났을 때 우리들이 어떤 것을 듣고 싶은지 먼저 물어왔습니다. 천만다행으로 객관식이었어요. 1번 남편하고 잘 지내기, 2번 자녀 잘 떠나보내기, 3번 자기정체성 찾기 중에 고르라고.
친구들은 압도적으로 2번을 뽑았지요. 남편하고는 여태 사는 동안 어떻게든 각자에게 맞는 관계를 설정했을 테고, 자기정체성 찾기도 관심이 가긴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들의 당면 과제는 이제 막 품에서 떠나는 자식들을 어떻게 잘 놓아주느냐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특강주제는 <자녀 잘 떠나보내기>가 되었습니다. 광경이가 정해온 강의 제목은 ”관계, 거리가 필요해”였습니다.
먼저 우리들이 겪고 있는 중년의 현상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중년이란 처음으로 신체적으로 몸의 노화를 느끼게 되면서 심각하게 삶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시기래요. 젊음을 강조하는 문화적 현상에서 오는 소외감, 장기적인 부양 의무에서 오는 경제적인 압박감, 가족의 구조적인 변화에서 오는 자기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혼란도 생기고요. 불안과 두려움, 피해의식과 억울함이 혼재하게 된대요. 어쩜 이렇게 딱 우리의 마음이지요? 듣는 것만으로도 속이 다 시원하네요.
인생을 네 계절로 나누어 본다면 봄 여름에 해당하는 전반부에는 외부지향적 성공과 성취를 목표로 삼는 반면에, 가을과 겨울이라고 생각하는 후반부에는 점점 내부지향적인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게 된답니다. 이타성이 강화되고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요. 그렇게 보면 중년을 딱히 위기라고만 여길 게 아니예요. 오히려 성숙한 인격체로 정신에너지가 전환되는 시기에 생겨나는 자연스러운 혼란기인 거지요.
분석심리학자 융은 ”개성화”를 그 대안으로 생각해냈어요. 즉, 이제껏 목표 지향적, 사회적 압박에 못 이겨 무의식세계로 밀려나 있던 자신의 일부분을 돌아보고 그걸 다시 의식으로 끌어올려 양자가 통합되도록 노력하라는 거지요.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화해하고 연결되어야만 비로소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완성되는 거래요. 이게 바로 자기실현이라는 얘기죠.
여러분은 어떠세요? 때론 내 안에 사회의 규범에 눌려, 역할과 의무에 바빠, 억누르고 숨겨버린 자아가 무의식에 세계에 가라앉아 화를 내고 있다고 느끼지는 않았었나요? 그 안을 관조하고 세세히 살펴보면서 잃어버렸던 나의 한 부분을 꺼내 올려 보자구요. 이제부턴 온전한 자기자신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우리에게 남겨져 있으니까요.
드디어 본론입니다. 광경이는 먼저 자신이 아이들을 떠나보냈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어요. 깊은 상실감과 빈 둥지에서 느꼈던 혼란을요. 그걸 먼저 경험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상담사가 된 것 같아요.
우리는 먼저 ‘성인애착유형 질문지(ECR-R)’로 간단한 검사를 해보았습니다. 문항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해보았답니다. 애착이란 한 개인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강한 감정적 유대관계를 말한대요. 대부분 3-5세에 완성된다는 이 대인관계의 내적작동 유형은 크게 네가지로 나뉩니다.
1. 안정/자율형 (자기 긍정감도 높고 타인에 대한 신뢰도 높은 경우)
2. 회피/거부형 ( 자기 긍정감은 높으나 타인에 대한 신뢰도 낮은 경우)
3. 불안/집착형 (자기 긍정감은 낮으나 타인에 대한 신뢰도 높은 경우)
4. 혼란형 (자기 긍정감도 낮고 타인에 신뢰도 낮은 경우)
1번 안정자율형은 충분하고 편안한 모성 반응을 통해 건강한 자아와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 경우이고, 2번 회피거부형은 자기가치감은 높으나 타인에 대한 신뢰나 애착보다는 대인관계에 기대기 보다는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독립군 스타일이고, 3번 불안집착형은 일관되지 않은 부모의 감정대응으로 정서 조절이 결여되거나 위축되어 늘 타인에게 집착하고 의지하려는 경향이며, 4번 혼란형은 강한 충격이나 트라우마적 환경 속에서 자라 자신과 사회 모두에게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래요.
내적작동모델은 우리의 정보처리방식을 좌우해요. 이를 테면 안정애착의 경우에는 긍정적인 사건을 훨씬 더 많이 기억하는 반면, 불안정애착은 부정적 사건을 훨씬 더 많이 기억하는 거죠. 개인의 역사가 자신의 기억에 따라 편집되는 실체라고 한다면 이것 때문에 개인은 행복질수도 불행질수도 있다는 얘기지요.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애착유형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나면 좀더 성숙한 관계맺음과 개선점을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고슴도치 일화 아시지요? 너무 가깝게 다가가면 서로에게 찔리고, 너무 멀면 상대의 온기가 그리워서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는 고슴도치 말예요. 서로 수없이 상처를 주고받으며, 다가가고 물러서기를 반복하다가 어느새 자기들에게 맞는 적당한 거리를 찾아낸다잖아요.
바로 그거예요. 자식도 성장에 따라 예전보다 가시도 더 자라났을 테니 아기 때 생각만 하고 습관적으로 가까이 가다보면 늘상 찔리죠. 서로 상처없이 온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찾는 게 중요해요. 그 거리는 엄마 자신을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이죠. 그 적당한 거리를 늘 유지하기 위해서 암송해두면 좋을 시가 있어요.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가기로 해요.
나는 나의 일을 하고
너는 너의 일을 한다.
나는 너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너 또한 나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너
나는 나
우연히 우리가 서로 만난다면 아름다운 일
만일 그러지 못한다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Fritz Perls-
너무 쓸쓸해하지 마세요. 이제부터는 당신만을 위한 시간으로 날마다 설렐지도 모르잖아요. 모두 새로운 또 하나의 여정을 향해 건강하게 파이팅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