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난중일기
부엌에서 음식 준비를 하다 보면 갑자기 마녀가 된 기분이 듭니다. 매부리코에 모자가 달린 새까만 가운을 걸치고 거위 간 반쪽, 악어 눈물 반 스푼, 거북이 발톱 두 개를 넣고 휘휘 저으며 요상한 주문을 외우는 그런 마녀 말이에요. 시장을 보느라 온갖 물건과 가격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던 날은 그런 증상이 심해져 밥할 기운도 안 납니다. 과연 시중에서 파는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건강해질 수 있을까 자꾸만 의문이 생기거든요. 도시의 식탁은 농장과는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요.
달걀 하나, 콩나물 하나에도 무공해니 저농약이니 유기농 인증이니 어쩜 종류도 이리 가지가지인가요. 값은 또 왜 그렇게 천차만별인가요. 매끈한 호박이나 잘생긴 무를 고르다가도 이게 농약이나 촉진제를 많이 맞아서 그런가 싶으면 주춤해집니다. 싱싱한 계란처럼 보이려고 흰자에 탄력을 주거나 노른자를 진한 색으로 만드는 약도 있대서 찜찜하고요. 톱밥 안에서 버둥거리는 게마저도 빨리 죽지 않도록 마이신 같은 약을 살포한다는 소문까지 들었거든요. 지갑을 열 때마다 어떤 먹거리를 사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그러니 주머니 사정에 맞춰 몸에 좋다는 유기농 최고급품을 내려놓고 값싼 재료를 구입해서 그걸로 요리하는 제 마음이 가벼울 리 있겠습니까.
참기름 앞에 ‘순’이라는 글자를 붙인 사람은 분명 또 다른 참기름 장수였을 거예요. 그 전에야 참기름이라니까 다들 그런 줄로 믿었을 텐데 ‘순’ 참기름이 나오면서부터 이전 참기름에 의심이 들기 시작했지요. ‘방부제 안 들었음’이라는 광고를 보고 나서 다른 상품에는 방부제가 들어있다는 걸 눈치챘고, ‘발색제 안 들었음’이라는 문구를 읽고서 소시지의 분홍빛이 발색제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잖아요. 판매하는 사람이 서로 경쟁하는 사이에 소비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너무도 많은 진실을 알아 버렸습니다.
이렇게 오만 걱정을 한가득 안고 식탁을 차리면서 제 마음은 늘 심란하기만 했습니다. 밥을 안치고, 생선을 구우면서도 농약과 방사능 오염을 걱정합니다. 된장찌개 하나만 봐도 그래요. 슈퍼마켓에서 사 온 된장 한 숟가락에, 말도 많은 수돗물을 한 컵 붓고, 농약 먹고 피둥피둥하게 자란 야채까지 숭숭 썰어, 유전자 조작 콩으로 만든 두부까지 넣고 끓여야 하죠. 동화책에 나오는 무서운 마녀가 연상될 수밖에요.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나온 추억의 옛 장면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골목길로 찾아다니며 냄비 고쳐주는 아저씨를 찍은 다큐멘터리 영상이었는데, 그 아저씨가 석유곤로에 납을 끓여서 뚫어진 냄비 구멍을 천연덕스럽게 메우더라고요. 납은 요새 거의 독극물처럼 취급되는 중금속이잖아요. 그런데 우린 그걸로 때운 양은 냄비에 매일 밥을 하고 국을 끓여 먹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랬어도 오히려 평균수명은 늘어났는데 너무 예민하게 군 건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저를 짓누르던 수많은 고민이 갑자기 우스워지더라고요.
그날 이후 마음을 비웠습니다. 이 지구와 생사고락을 같이 하겠다고 타협을 봤거든요. 지구가 오염되면 거기 사는 사람도 어쩔 도리가 없는데 일일이 신경을 곤두세우며 불행해지지 않겠다고. 천만년 사는 데야 문제가 되겠지만, 까짓것 백 년 정도 사는 데는 별 무리 없을 것도 같아요. 상황 되는 대로 편안하게 먹고살기로 했습니다. 돈이 모자라 더 좋은 음식재료를 못 산다고 생각하면 괜히 스트레스만 더 생길 뿐인 걸요. 차라리 그런 신경 안 쓰고 기분 좋게 만들어 먹으며 사는 게 더 낫겠습니다. 무슨 재료를 썼든 가족들에게 사랑과 기운이 넘쳐날 수 있도록 주문을 외우면서 말이에요.
수리수리 마하수리 뾰로롱 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