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난중일기
어둠이 찾아올 무렵부터 우리 집 작은아이는 안절부절입니다. 오늘부터 자기 방에서 혼자 자기로 엄마와 약속했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어두운 방 안에서 혼자 잠을 청할 일이 까마득한가 봅니다. 엄마 품에 안겨 잠들기 위해 아까부터 귀여운 척 아양까지 떨어댔습니다. 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매정하게 대했어요.
“안 돼, 그렇게 맨날 약속을 어기면 못 써. 이제부터는 혼자 자기로 엄마랑 약속했잖아.”
사실 그 약속은 아이가 원해서 했던 것도 아닙니다. 제 오랜 설득 끝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렸을 뿐이죠. 그런데도 엄마가 그걸 빌미로 자꾸 압박해대니 황당하기도 하겠지요. 등 떠밀려 자기 방으로 돌아갔던 아이는 도저히 혼자서 잠이 오지 않는지 살며시 일어나 엄마 방 앞으로 나옵니다. 꼭 닫힌 방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용기를 내어 살짝 인기척을 냅니다. 기다리다가 조금 더 큰 인기척을 내봅니다. 엄마가 그 소리를 듣고 다른 날처럼 가볍게 웃으며 ‘너, 오늘 하루 만이다~’ 하면서 문 열어주기를 기다립니다.
그런 아이의 마음과 몸짓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안방 문을 걸어 잠근 저도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모르는 척 입술을 앙다물고 아이와 대치하고 있지만 이게 정말 못할 짓이다 싶도록 신경이 팽팽해진 상태입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그냥 놔두면 이놈은 앞으로도 내내 엄마 품에서 잘 기세인데요. 첫아이 생활교육은 누구나 조금 엄격한 편인지라 큰아이는 일찌감치 혼자 자도록 버릇을 들여놨습니다. 그런데 작은아이는 끝까지 따로 잘 생각을 않는 거예요. 그동안 그런 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더라고 교육철학이 바뀌면서 은연중에 둘째에게는 너그러워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혼자 자야 했던 큰아이 입장에서는 엄마의 처신이 얼마나 불공평하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마음이 약해 몇 년이나 작은애를 떼어놓지 못했지요. 이젠 정말 결단을 내야 했습니다. 물론 잠자는 시간만큼이라도 혼자 있고 싶다는 개인적 소망도 한몫했지요. 그런 이유로 벌어지게 된 또 하나의 전쟁입니다.
아이는 쪼그리고 앉아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이번에는 창문을 공략해 왔습니다. 베란다 쪽으로 신발을 신고 돌아나와 창문 밖에서 무언의 사인을 보내는 방법이지요. 그렇게라도 해서 엄마 마음이 약해지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딸그락딸그락 계속 신호를 보냅니다.
“이놈! 빨리 네 방 가서 자지 못해? 너 정말 혼나고 싶어?”
기대와 달리 조용하던 방안에서 제 엄마의 성난 목소리가 요란하게 터져나옵니다. ‘아, 오늘은 정말 틀렸구나! 엄마가 끝까지 모르는 척하네. 정말 혼자 자기가 무서운데 이를 어쩌나.’ 하면서 실망하는 아이 마음이 그대로 느껴져 온몸이 찌르르합니다. 그래도 입술을 깨물며 참았지요. 지금쯤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아무도 없는 마루에서 빙빙 돌다가 소파 끝에 몸을 움츠리고 앉았을 아이를 상상하면서요.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눈꺼풀이 저절로 무거워지겠지요. 지금이라도 엄마가 나와 주면 얼마나 좋을까 기다리는 사이에 스르르 잠도 찾아올 것입니다. 아이와 힘겨루기를 하다가 명분 없이 중간에 자꾸 져주면 교육이 안 될까봐 섣불리 나가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방에서 애만 끓였죠.
귀를 쫑긋 세우고 바깥 동태를 살피던 저는 마루의 기척이 잦아들자마자 크게 틀어놓았던 TV를 끄고 살금살금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이가 소파 끄트머리에서 겨우 쿠션만 하게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습니다. 그 작은 부피감에 마음이 저립니다. 혼자서 안 자려고 그토록 방문 앞에서, 창문 밖에서 딸그락거리던 아이를 모질게 마음먹고 모른 척했던 게 후회됩니다. 잠든 아이를 자리에 누이려고 안아 올리자 양쪽 팔이 축 처집니다. 아마 깊은 잠에 빠졌나 봐요.
가만히 침대에 누이며 생각합니다. 내 품에 안긴 이 아이가 어느새 나보다 커서 세상으로 날아갈 때까지 과연 오늘 밤처럼 엄마가 절실하게 필요한 날이 몇 날이나 더 있을까 하고요. 나 역시 나이가 들어 외로워지면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간절히 기다리면서 살아갈 텐데 이 아까운 순간을 버릇 들인다는 핑계로 그냥 허비하는 게 안타깝기만 합니다.
‘아가야, 엄마가 미안해. 그래도 예쁜 꿈꾸고 포근히 잘 자렴. 엄마도 뭐가 옳은 건지 잘 모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