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안 먹어'에도 흔들리지 않으련다

엄마난중일기

by 김정은

요사이 정신없이 바빠서 찬찬히 음식 만들 새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큰맘 먹고 식구들에게 ‘집밥’을 해주려고 별렀지요. 다음날 저녁은 어쩔 수 없이 또 외출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생필품도 몇 개 떨어졌기에 집 앞 슈퍼로 나가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회사에 급한 용무가 생겨 지방출장 가는 길인데 밤늦게나 돌아올지 말지랍니다. 대학생인 딸아이는 새 학기 첫 주라 일찍 들어오기는 어려울 테고, 아무래도 이번 저녁은 집에 있는 아들놈 하나만 먹이면 되려나 봅니다.


이놈은 학교에서 주는 저녁급식은 아예 신청도 안 하고 오후 수업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들어와서 일단 쉬어야만 하는 아이입니다. 제 애간장이 보통 타는 게 아니지만 타이르고, 위협하고, 때린다고 말을 들을 애가 아니라서 스스로 깨닫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날마다 먹고 싶다는 건 어쩜 그렇게 다양한지요. 귀찮아하다가도 아직 엄마에게 부릴 어리광이 더 남았나 싶어 그 비위를 맞추기도 합니다.


불고기를 해주기로 마음먹고 곁들여 먹을 상추, 쑥갓, 깻잎을 한 움큼씩 사는데 이것들이 오늘따라 왜 이리 비싼지. 후덜덜. 조금 멀더라도 단골 시장에 다녀올 걸 후회하면서 한참을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과일도 떨어져 가는데 가격을 이리보고 저리보고, 한 바퀴 다시 둘러보며 세일하는 걸로 살까 말까, 오래 두면 상할 텐데 집에 있는 거부터 먼저 다 먹고 다음에 사러 올까 어쩔까. 별별 고민을 하며 저녁 장을 봤습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갓 지은 밥’을 제일 좋아하는 녀석이라서 찹쌀도 한 줌 얹어 밥을 지었지요. 그러는 사이에 아들놈이 공연히 부엌에 와서 한두 마디 거들다가 생각지도 않은 일로 팩하니 삐져버렸습니다. 저 역시 아이가 버릇없이 제 주장만 내세울 때는 수월하게 져주는 법 없는 꼬장꼬장한 엄마인지라 그만 까칠한 사춘기 아이의 성미를 건드렸던 겁니다. 아이는 더 이상 대꾸도 안 하고 제 방으로 철수해버립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엄마는 반찬을 하고 쌈장을 만들고 야채를 씻었습니다.

“우진아, 나와서 밥 먹어라.”

오늘은 저녁 먹자마자 과외 선생님이 오시기로 한 날이라 제 마음도 무척 바빴습니다.

“안! 먹! 어!!!”


“…….”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아이 감정을 덧들여봐야 좋을 일이 없는데요. 가만히 도를 닦습니다. ‘참자 참어. 깡마른 녀석이 굶겠다면 에미 속이야 아프지만 설마 한 끼 안 먹었다고 말라 죽기야 하겠느냐, 그래 까짓것 매달리지 말자. 성질내지도 말자. 참자 참어.’


안먹어에도흔들리지않으련다.JPG


결국 아이 먹으라고 정성 들여 차린 저녁밥상을 홀로 앉아 먹어 치웁니다. 그래, 네놈이 성질 부리며 ‘안 먹어!’ 해댈 때 이 엄마는 얼마나 많은 노동을 무위로 돌리며 파놓은 구덩이를 다시 메우는 사람처럼 한심한 일상을 반복해야 했는지 더 크면 알겠지. 우리 엄마는 직장 다니느라 이런 꼴까지는 안 당했지만, 저도 성깔만 세우던 사춘기 때는 일주일에 두 번은 부엌에다가 ‘안 먹어!’를 외쳐댄 사람입니다.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그 시절엔 집안에 먹을 입이 워낙 많아서 저 하나 안 먹는다고 뻗대봐야 눈 하나 깜짝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말입니다.


철 덜 나서 그렇겠지, 나이 들면 알겠지. 난들 그맘때야 부모 맘을 헤아렸던가 생각하며 혼자서 다독다독. 맛있게 상추쌈에 고기를 얹어 먹습니다, 아귀아귀. 저도 종일토록 제대로 된 끼니를 먹은 적이 없네요. 오후 늦게야 빵으로 허기를 때운 탓에 굳이 저녁밥까지는 안 먹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 부아를 긁은 아들놈 때문에 속상한 저 자신을 위해 맛있게 먹어야지요, 냠냠쩝쩝.


‘그래도 이놈아 네가 어른 되거들랑, 뒤늦게 이런 불효를 반성하며 같이 있는 마누라 제쳐두고 ‘우리 엄마, 우리 엄마’ 하는 어리광쟁이는 되지 말거라. 이 엄마는 사랑에 관한 한 신용카드는 안 받는단다. 무조건 현금박치기다. 그때 미처 못 줬거들랑 그냥 잊어라. 나도 잊을게. 엄마한테 뒤늦게 사랑 갚는답시고 네 마누라 외롭게나 하지 말고.’


겨우 사춘기 아들놈이 토라져서 차려놓은 밥 좀 안 먹었다고 이렇게 치사하게 글로 고발하는 이 어미의 못난 짓도 용서하여라. 지금 못 받더라도 슬프지 않으려고, 웃으며 흘려버리려고 하는 짓이여. 그러니 이제 계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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