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난중일기
요사이 정신없이 바빠서 찬찬히 음식 만들 새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큰맘 먹고 식구들에게 ‘집밥’을 해주려고 별렀지요. 다음날 저녁은 어쩔 수 없이 또 외출할 일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생필품도 몇 개 떨어졌기에 집 앞 슈퍼로 나가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회사에 급한 용무가 생겨 지방출장 가는 길인데 밤늦게나 돌아올지 말지랍니다. 대학생인 딸아이는 새 학기 첫 주라 일찍 들어오기는 어려울 테고, 아무래도 이번 저녁은 집에 있는 아들놈 하나만 먹이면 되려나 봅니다.
이놈은 학교에서 주는 저녁급식은 아예 신청도 안 하고 오후 수업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들어와서 일단 쉬어야만 하는 아이입니다. 제 애간장이 보통 타는 게 아니지만 타이르고, 위협하고, 때린다고 말을 들을 애가 아니라서 스스로 깨닫는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날마다 먹고 싶다는 건 어쩜 그렇게 다양한지요. 귀찮아하다가도 아직 엄마에게 부릴 어리광이 더 남았나 싶어 그 비위를 맞추기도 합니다.
불고기를 해주기로 마음먹고 곁들여 먹을 상추, 쑥갓, 깻잎을 한 움큼씩 사는데 이것들이 오늘따라 왜 이리 비싼지. 후덜덜. 조금 멀더라도 단골 시장에 다녀올 걸 후회하면서 한참을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과일도 떨어져 가는데 가격을 이리보고 저리보고, 한 바퀴 다시 둘러보며 세일하는 걸로 살까 말까, 오래 두면 상할 텐데 집에 있는 거부터 먼저 다 먹고 다음에 사러 올까 어쩔까. 별별 고민을 하며 저녁 장을 봤습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갓 지은 밥’을 제일 좋아하는 녀석이라서 찹쌀도 한 줌 얹어 밥을 지었지요. 그러는 사이에 아들놈이 공연히 부엌에 와서 한두 마디 거들다가 생각지도 않은 일로 팩하니 삐져버렸습니다. 저 역시 아이가 버릇없이 제 주장만 내세울 때는 수월하게 져주는 법 없는 꼬장꼬장한 엄마인지라 그만 까칠한 사춘기 아이의 성미를 건드렸던 겁니다. 아이는 더 이상 대꾸도 안 하고 제 방으로 철수해버립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엄마는 반찬을 하고 쌈장을 만들고 야채를 씻었습니다.
“우진아, 나와서 밥 먹어라.”
오늘은 저녁 먹자마자 과외 선생님이 오시기로 한 날이라 제 마음도 무척 바빴습니다.
“안! 먹! 어!!!”
“…….”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아이 감정을 덧들여봐야 좋을 일이 없는데요. 가만히 도를 닦습니다. ‘참자 참어. 깡마른 녀석이 굶겠다면 에미 속이야 아프지만 설마 한 끼 안 먹었다고 말라 죽기야 하겠느냐, 그래 까짓것 매달리지 말자. 성질내지도 말자. 참자 참어.’
결국 아이 먹으라고 정성 들여 차린 저녁밥상을 홀로 앉아 먹어 치웁니다. 그래, 네놈이 성질 부리며 ‘안 먹어!’ 해댈 때 이 엄마는 얼마나 많은 노동을 무위로 돌리며 파놓은 구덩이를 다시 메우는 사람처럼 한심한 일상을 반복해야 했는지 더 크면 알겠지. 우리 엄마는 직장 다니느라 이런 꼴까지는 안 당했지만, 저도 성깔만 세우던 사춘기 때는 일주일에 두 번은 부엌에다가 ‘안 먹어!’를 외쳐댄 사람입니다.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그 시절엔 집안에 먹을 입이 워낙 많아서 저 하나 안 먹는다고 뻗대봐야 눈 하나 깜짝하는 사람이 없었지만 말입니다.
철 덜 나서 그렇겠지, 나이 들면 알겠지. 난들 그맘때야 부모 맘을 헤아렸던가 생각하며 혼자서 다독다독. 맛있게 상추쌈에 고기를 얹어 먹습니다, 아귀아귀. 저도 종일토록 제대로 된 끼니를 먹은 적이 없네요. 오후 늦게야 빵으로 허기를 때운 탓에 굳이 저녁밥까지는 안 먹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 부아를 긁은 아들놈 때문에 속상한 저 자신을 위해 맛있게 먹어야지요, 냠냠쩝쩝.
‘그래도 이놈아 네가 어른 되거들랑, 뒤늦게 이런 불효를 반성하며 같이 있는 마누라 제쳐두고 ‘우리 엄마, 우리 엄마’ 하는 어리광쟁이는 되지 말거라. 이 엄마는 사랑에 관한 한 신용카드는 안 받는단다. 무조건 현금박치기다. 그때 미처 못 줬거들랑 그냥 잊어라. 나도 잊을게. 엄마한테 뒤늦게 사랑 갚는답시고 네 마누라 외롭게나 하지 말고.’
겨우 사춘기 아들놈이 토라져서 차려놓은 밥 좀 안 먹었다고 이렇게 치사하게 글로 고발하는 이 어미의 못난 짓도 용서하여라. 지금 못 받더라도 슬프지 않으려고, 웃으며 흘려버리려고 하는 짓이여. 그러니 이제 계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