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처음처럼 우리두리

엄마난중일기

by 김정은

그녀는 팔방미인 슈퍼울트라 전업주부였습니다. 집안 인테리어를 위해서라면 장롱이나 피아노도 척척 옮길 만큼 힘도 셌죠. 온 집안을 유리알처럼 닦아대야 직성이 풀렸고, 뭐 하나라도 삐뚤어져 있는 꼴을 못 봤습니다. 쇼핑 정보도 빠삭하고 요리도 잘하고 게다가 늘 멋쟁이이기까지 했어요. 아무 때나 들러도 그 집에선 언제나 반들반들한 생활의 윤기가 흘러넘쳤습니다. 아이들을 다 키운 후에는 사업을 시작해서 집안 생계까지 책임지는 바람에 그녀 주변의 아줌마들은 저절로 주눅이 들어버렸어요. 그런 그녀가 얼마 전부터 만나기만 하면 앓는 소리를 해댔습니다.


“엄마라는 게 정말이지 아이들 앞에서는 너무나 약한 존재더라. 아무리 신경을 끄자고 결심을 해도 금방 도루묵이 돼. 서른 넘은 자식놈이 한밤중에 들어와 라면을 끓이고 있으면 잠결인데도 몽유병환자처럼 일어나 냉장고를 뒤적이는 거야, 김치라도 꺼내주려고. 몇 년 전부터 불면증 생겨서 수면제 먹고 겨우 잠이 드는 판인데 애들이 그런 엄마는 도무지 안중에도 없어. 아무 때나 들어오고 아무 때나 나가고. 그때마다 강아지마저 요란하게 짖어대니 수면제가 다 무슨 소용이야. 이게 집인지 우주 정거장인지 매일 어수선해 죽겠어. 저희들 다니기 편하라고 일부러 교통 좋은데 사는 건데 그게 외려 더 나쁜 거 같아. 요즘 애들은 왜 맨날 밤늦도록 잠을 안 잔다니?

우리 남편은 퇴직하고 허전해서 그런지 계속 함께 살았으면 좋겠나 본데 난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우리가 그 나이였을 때를 생각해 봐. 남편은 넥타이 매고 직장 다녔고, 나도 애 엄마였잖아. 지금 보면 애들 소꿉장난이었지, 우리가 뭐 그때 철이 들어서 결혼했다니? 근데 요즘 애들은 손톱만큼도 어른 노릇을 할 마음이 없어 보여. 답답해 죽겠어. 근데 결혼을 안 하더라도 독립은 시켜야 하는 거 아닐까? 혼자 살 줄도 알아야 나중에 함께 살아도 뒤탈이 없지 않겠어? 지금처럼 부모 손만 탔다간 세상이 저절로 돌아가는 줄 알고 결혼할 테니 당장 이혼감이 아니겠냐고. 끼고 가르칠래도 애들이 도저히 손에 잡혀주질 않는데 그럴 바에는 직접 겪게 하는 게 낫겠어. 주위에서는 나보고 무슨 엄마가 그렇게 야멸차냐고들 하지만, 정작 엄마 노릇의 완성은 자식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 아닐까?”


매사에 거칠 것 없던 그녀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몇 년째 뭉그적뭉그적 맘고생만 했지요. 그런데 드디어 얼마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호수가 보이는 한적한 교외에 부부가 살 만한 집을 계약했다고. 더 늦기 전에 깔끔하게 치워놓은 집에서 조용히 살아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합치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하고 싶은 건 해봐야겠대요. ‘자기가 놓아둔 커피 잔이 몇 날이고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는 그런 삶’을 위해 그녀는 기어이 한 집을 셋으로 쪼갰습니다. 경제적으로 보면 바보 같은 일이었으되, 시대의 흐름으로 보면 그런 결단이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싶어 호기심이 당겼습니다. 조만간 벌어질 내 미래도 그와 별로 다르지 않을 테니까요.


그 집 아이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쿨하더랍니다. 엄마의 크고 작은 간섭을 보살핌의 대가라고 생각해서 겨우 참아왔었는지도 모르지요. 이사 결정을 통보받고는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태연하게 입장을 정리하더래요. 부모와 같이 살기 위해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할 마음은 없으니 각자 회사 근처에 작은 오피스텔을 얻어 나가겠노라고. 굳이 긁어 부스럼 내지 말자 생각해서 집에 한 다리 걸치고 있었을 뿐, 저희도 이미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딸아이는 신혼살림이라도 차리는 것처럼 들떠서 요리조리 바쁜 반면에, 아들아이는 허름한 방 하나만 덜렁 계약해놓고 아무런 후속 조치가 없어 애가 타더랍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천식이 있어서 유난히 엄마의 정성과 보호를 받고 자랐던 아이였지요. 대한민국의 대표 ‘까도남(까칠한 도시 남자)’이라고 할 만큼 매사에 취향도 분명해서 다들 그 아이의 홀로서기가 절대로 순탄치 않으리라 점을 치기도 했습니다. 아들에게 매번 질 수밖에 없던 그녀도 이번만큼은 단호했어요. 어렵게 떠나보내기로 작정한 끝이어선지 터져 나오는 잔소리를 입술 깨물어 가며 참았답니다. 괜히 청소해준다, 음식 해준다고 드나들기 시작하면 혹 떼려다 더 붙이는 꼴이 될까 봐 손발이 근질거려도 끝까지 버텼대요.


이사를 앞둔 마지막 주말, 그녀는 미리 섭외해 놓은 작은 용달차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당장 버려도 아깝지 않을 허름한 가구 몇 개와 옷가지들을 아들과 함께 실어 보내는 것으로 식적인 작별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제껏 고급 호텔에 견줄 만한 서비스를 집에서 누리고 살던 아이는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엄마가 설마 그렇게까지 대책없이 자신을 내보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겠죠. 하지만 어수선하게 어질러진 자신의 잡동사니가 그대로 얼기설기 용달에 실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사태를 파악한 아들이 실실 실소를 날려가며 이러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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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 나 이제부터 얘네들이랑 우리 집에서 짤리는 거임?”

아들이 갖은 고생 끝에 겨우 취직해서 월급 받기 시작한 지 일 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거대한 이별 프로젝트를 집행하느라 천만 톤의 감정을 소모했던 엄마만 황당하게 아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용달에 올라타서 두말 없이 손을 흔들며 사라지더랍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용달차에는 이름도 얄궂게 ‘꽃미남 이삿짐센타’라고 쓰여 있었다면서 시트콤 장면을 묘사하듯 연신 키들거리며 이야기를 전했지만 듣던 저는 마음이 짠했습니다. 그간 그 아들을 붙들고 수도 없이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던 그녀의 눈물 어린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서요.


얼마 전 뒷일이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예상과 달리 두 아이 모두 잘 지낸다고 했습니다. 큰딸은 주말마다 집으로 와서 부모와 같이 시간을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자기 일로만 바쁜 동생한테 매일 부모님께 안부라도 전하자며 가족 카톡방까지 개설했대요. 아들은 혼자 살면 집에서는 잠만 자겠거니 했는데 그간 얼마나 살림꾼이 되었는지 기가 막혀 죽겠다고 했어요. 청소랑 빨래도 하고, 식탁이 없어서 무릎에 밥을 올려놓고 먹는다는 익살스런 실황중계까지 하더랍니다.


결혼 삼십 년 만에 그 집 부부도 각자의 텔레비전을 차지하고 조용히 누워 쉬거나 할 일 없을 때는 동네 산책을 다니고, 강냉이 한 봉지와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리면서 비어있는 날의 행복을 만끽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아직은 외로움보다 자유와 평화가 더 크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언젠가는 한 번은 꼭 누리고 싶던 중년 이후의 일상이라 그 집을 넘겨다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마음이 설렜습니다. 앞서 가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래서 늘 좋습니다. 그렇게 자식들과 헤어질 나의 앞날을 생각하니까 지지고 볶으면서 함께 보내는 지금의 일상 또한 어찌나 소중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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