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딸 부잣집 추석날 반란

엄마난중일기

by 김정은

그 누가 말했던가요? 아들은 ‘명분’이요, 딸은 ‘실리’라고. 그런데 명절은 늘 ‘명분’이 앞서는 날입니다. 키울 때는 오글보글 다섯 자식과 함께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건만 딸 넷이 다 시집가버린 우리 친정집은 명분이 앞서는 명절엔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합니다. 그나마 지방 사는 아들 내외가 부모님과 명절을 같이 쇠러 올 수 있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지만 아무래도 다 모였을 때만은 못해요.


우리 엄마는 현대식 교육을 받고, 평생 직장 생활을 하셨지만 명분에서만큼은 아직 고리타분한 데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페미니즘과 고리타분의 간극은 어쩔 수 없이 몸으로 때우면서 사셨지요. 그 시대의 여자로서 사회가 요구하는 일은 다 완수하되, 끝까지 개인의 자존감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는 걸로요.


엄마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딸들아, 명절 당일엔 친정 찾아오지 마라. 다른 집 보니까 친척들 모인 자리에서 자기도 빨리 친정집에 가야 한다고 서두르면 모인 이들에게도 민폐요, 괜히 분위기만 어수선해지더라. 기왕 노릇을 하려거든 제대로 해라. 아직도 우리나라는 여자의 짐이 더 큰 법이니라. 그 날 하루는 온전히 시댁에서 며느리 노릇 잘하고 마음 편하게 다음 날 만나자.”


친정 식구 명절 모임은 그래서 늘 오락가락했습니다. 아버지는 그새 검은 머리카락 한 올이 안 남은 백발노인이 되었고, 한 번도 자식 찾는 눈치를 안 보이던 씩씩한 엄마도 가끔 외롭다는 전화를 합니다. 그런 모습을 머릿속에 지닌 채, 명절날 시댁 조상 모시느라 진을 빼다 보면 어찌 한스러운 마음이 쌓이지 않겠습니까? 시집에서 일을 많이 하거나 심하게 구박받아서가 아니라 저절로 심사가 사나워집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왔다는 그 유교적 전통이란 게 평등 교육을 받고 자란 여자들에게는 가부장적 잔재가 올올이 박힌 시대적 폭력사태나 다름없으니까요. 조용히 참고는 있지만 누가 불씨만 하나 건드려도 울컥 성깔 부릴 준비가 됩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빈 명절에도 여전히 종갓집 장손 노릇을 해야 했던 아버지는 그동안 선산을 두루 정리하면서 가족 납골묘를 만드셨습니다. 자식들이 어릴 적엔 고향 언덕마다 ‘몇 대조 누구시다’라고 역사책 줄줄이 읊어대는 게 낙이셨으나 이제 그 많던 ‘실리’들이 명절마다 남의 집 조상모시기에 바쁘고, 달랑 남은 ‘명분’마저 교회에 다니고 있으니 이 모든 형식을 아버지 대에서 정리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셨나 봅니다. 마음만 있으면 되었지, 무슨 방법으로 제를 올리든 뭔 상관이냐는 백발 아버지의 큰 결심이 존경스러우면서도 약간은 안쓰러웠어요.


시끌벅적한 딸들을 남에게 곶감 빼주듯 하나씩 시집보내고, 명절 당일 헛헛함이 당연해진 지 이십오 년 넘은 즈음, 마침내 시집간 딸들의 명절 대반란이 벌어졌습니다. 딸 부잣집 친정 식구들이 명절 당일에 거창한 추석파티를 해보자고 작당을 한 거지요. 셋째 언니가 자기 아들이 무슨 상을 받아서 상금을 탔다는 핑계로 이번에 모이면 한턱 쏘겠다고 한 말이 발단이었습니다. 이래저래 시간을 맞춰 보는데 추석 다음 날은 두 집이나 선약이 있다는 거예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서 안 했을 뿐이지, 이미 시댁 눈치 보면서 사는 군번이 아닌 오십 대 아줌마들 네 명이 급기야 중대 결정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럼 할 수 없다. 이번 추석엔 당일에 모이자! 스케줄 먼저 정리해 놔!!”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남의 집 며느리 노릇 선배인 시누이들은 우리 집 며느리 눈치부터 살핍니다.

“괜찮겠니? 너도 명절 저녁에는 혼자 계신 바깥사돈께 가려던 거 아니냐?”

‘아니요.’ 하기도 어려운 질문인 줄 알지만 양해부터 얻는 게 순서입니다.

“괜찮아요. 아버지는 옆집에 사셔서 언제라도 뵐 수 있는 걸요. 우리 애들도 사촌형제들 보고 싶어 하니까 그날 저녁에 다 같이 만나도록 해요.”


에헤라디야. 며느리 재가까지 떨어지고 나선 빠르게 모임을 추진했습니다. 셋째 언니는 원래 자기 집으로 조촐히 부르려던 생각이었는데 일이 점점 커지자 호기롭게 외식도 불사하겠다며 모임 장소만 찾아보랍니다. 어차피 명절에는 다들 음식 하느라 바쁠 텐데 아무리 아줌마들 일손이 신의 경지에 이르렀기로서니 친정집에 모여서까지 또 잔칫상 차리자는 건 무리였습니다.

“밖에서 먹자, 밖에서!”

“친정식구들 모임이야 우리가 편한 게 최고 아니겠냐?”

“모여서 밥상 차리다 보면 마주 보고 웃을 새도 없겠다.”

“그래그래.”


앞으로 2년간 총무 임기를 수행해야 하는 제가 장소 섭외에 나섰습니다. 중국집 룸을 빌리자니 너무 구태의연하고, 뷔페 음식점을 가자니 왔다갔다 드나드는 게 귀찮고, 한정식은 젊은 아이들이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고, 일식집은 호불호가 갈리는 데다 가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동네를 헤매다가 우연히 고깃집을 발견했지요. 수입고기를 굽는 집이라서 값도 저렴했습니다. 레스토랑처럼 생겼는데 작은 안마당에 따로 테이블이 총총히 놓여 운치도 있었고요. 스무 명이 넘는 우리 가족이 마당을 통째로 빌리면 야외파티 기분이라도 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수입고기가 무슨 문제겠어요? 친정식구끼리 재미있게 놀다보면 고무타이어라도 신나게 씹을 판인데요.


문을 빼꼼 열고 물어봤습니다.

“저, 여기 추석날 저녁에도 영업하시나요?”

“네네, 추석날까지 하고 그 다음 날부터는 쉽니다.”

아이구 하느님, 고맙기도 하시지. 착한 일도 별로 안 한 거 같은데 이렇게 우리를 위해 미리 딱 맞는 음식점까지 점지해 놓으시다니, 에헤라디야 얼씨구나 노래를 부르며 잽싸게 예약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합니다. 가족 카톡을 띄워 장소와 시간을 공지하고, 가족회비 주무르는 총무 권한으로 의논도 없이 제 맘대로 규칙을 발사합니다.


“여러분, 셋째 언니가 전부 다 내면 고기 추가할 때마다 다들 눈치가 보일 테니 언니는 상금 50만 원만 내십시오. 비용이 더 추가되면 그건 가족회비에서 지원하겠습니다. 부모님께 명절 떡값을 드리고 싶으신 분은 각자 알아서 건네시기 바랍니다.”

“오, 그려. 우리 동상! 수고했어. 이 참에 우리 아들 그동안 갈고 닦은 기타 실력도 한번 보여줄게. 내 기타도 들고 갈 거야. 니네 딸 우쿨렐레도 들고 나와서 한 번 뽐내보라고 해.”

시댁에서 얌전하게 질서를 지키던 모습과 달리 딸 많은 집 잔치는 언제나 이렇게 중구난방 시끌벅적 혼이 다 쏙 빠집니다. 아줌마들은 속도가 모자란 문자 실력을 화려한 이모티콘으로 때워가며 다들 ‘오케이’ ‘그날 봐’ ‘수고해’ 등으로 한바탕 카톡 회의를 끝냅니다.


명절날의 파격을 위해 우리 집 딸들은 시댁에서 미리 며느리 노릇 하면서도 신바람이 났습니다. 큰 언니는 갑상선 치료를 받는 와중에서도 갈비찜과 빈대떡을 한 통 만들어 시부모님께 보냈고, 둘째 언니는 시부모님과 미리 일박이일 여행을 다녀왔대요. 셋째 언니는 성묘 다녀오는 시댁 식구들에게 점심상을 차려냈고, 넷째인 저는 이틀이나 연거푸 시댁에 들렀습니다. 막내 동생은 당일 새벽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성묘를 다녀오는 것으로 명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오로지 추석날 저녁 찜찜한 기분 없이 옹골차게 놀아보려는 속셈이 빚어낸 즐거운 충성입니다.



고깃집 안마당에 우리 가족 스무 명이 꽉 들어차게 모였습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열 명의 조카들에게는 ‘어른들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니들끼리 마음대로 먹고 놀라며 자유방임을 선언했습니다. 다들 모인 자리에서 어른 눈치 보고 예의범절 차리다 보면 젊은이들이 싫어할까 봐 배려해주었죠. 여러 세대가 모이는 자리에는 진행자가 적당한 기준을 잡아 모든 사람이 두루 편안하도록 판을 짜는 일이 중요합니다. 물론 아버지 기분도 살려 드릴 겸 오프닝과 엔딩에는 마이크를 넘겨 드려야 하고말고요.


언제나 우리 집 축제를 이끌어 왔던 만능 엔터테이너 셋째 언니는 그새 기타를 둘러매고 흥을 돋웁니다. 생일이 가까운 사람들 코앞으로 다가가 짓궂은 축하 노래도 불러주고, 군인 조카는 나와서 우렁찬 군가를 고래고래, 우리 집 딸도 어설픈 우쿨렐레 연주를 선보입니다. 바로 옆 아파트에서 시끄럽다고 항의 전화가 왔다며 주인아저씨가 혼비백산 뛰어나와 서둘러 마당에 차양막을 쳐댑니다. “에이~ 우는 소리도 아니고 노랫소리와 웃음소리 가지고 뭐 그리 깐깐하게 그러실까.” 은근히 엉기면서도 혹시나 경찰까지 출동할까 봐 목소리를 낮춰보지만 역부족입니다.


옛날부터 우리 집 식구들은 목청이 크고 별것 아닌 일에도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려 남에게 핀잔 꽤나 듣던 사람들인데 그 성정이 어디 가겠어요. 갑자기 조절될 리가 없습니다. 우리도 매번 이렇게 모여 놀지 않으니까 한번만 봐주십사 통사정을 하는 수밖에요. 우리 같은 손님이 매일 찾아온다면 이 집은 아마 조만간 장사를 접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미안해서라도 많이 팔아줘야지 어쩌겠습니까. 권커니 자커니 두둥실 추석 밤이 깊어 갔습니다. 모처럼 떠들썩하게 옛날 분위기를 되살렸던 부모님의 올 추석은 정말 보름달 같았을 겁니다.


이번 명절은 ‘실리’들이 ‘명분’까지 해치워버렸습니다. 과연 우리나라 암탉의 힘이 세지긴 세졌나 봅니다. 위로는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로는 아직 어린 자식들을 거느리고 때마다 이렇게 각종 경조사 인사치레로 쌍코피 터지는 우리 중늙은이들. 그래도 우리가 움직이고 버티는 통에 조금이나마 흐뭇해진 사람들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위안을 삼습니다. 어느새 환갑을 향해 달려가는 언니들, 형부들, 동생과 올케가 서로 파이팅을 외쳐줍니다. 어쨌든 지금의 행복을 만들 수 있는 건 바로 우리들의 파워입니다.


자주는 못 그러겠지만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시간을 몇 번은 더 만들고 싶습니다. 심심하게 보내야만 했던 일요일, 허전해진 명절을 가끔은 이렇게 보상해 드리고 싶어서요. 그냥 보내드리면 이 딸 마음이 너무너무 아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