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술주정 센티멘털

엄마난중일기

by 김정은

마감에 마감을 넘기며 질질 끌던 보고서 하나를 오늘에야 겨우 넘겼습니다. 마침 남편은 저녁 약속이 있어 늦는대고 아들은 학원으로 나가 집안이 조용합니다. 여유를 부려볼 황금 같은 기회지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감 기념 자축파티 삼아 와인을 한 잔 따랐습니다. 냉장고를


음식도 찾아봅니다. 뭐 대단한 걸 차릴 생각은 아니에요. 더 두면 변색해서 아예 못 먹을 샐러드 한 접시와 먹다 남은 생선전을 꺼냈습니다. 이런 게 바로 아줌마들 전문 용어로 ‘주부 뷔페’입니다. 기회만 되면 이런 식으로라도 남은 음식을 해치워야 가정 식단이 돌아가니까요.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내 집에서 혼자 기분 내는데 누가 구질구질하다고 뭐라 할 것도 아니고요.


주부 뷔페에 와인 한 잔을 곁들여 놓고 지난주에 놓쳤던 음악프로그램을 다시보기로 보려고 텔레비전 앞에 앉았습니다. 왜 남녀 연구를 하면 흔히 나오는 결과 있잖아요? 여자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한다고. 저도 그래요. 멀거니 앉아 TV만 보기에는 시간이 조금 아까웠습니다. 할 일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요 며칠 우리 집 강아지 똘비를 길들이기 위해 개 트레이너에게 배워 두었던 ‘이리 와’ 훈련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놈이 요즘 들어 혼자 있기만 하면 짖어댄대요. 이웃에게 주의를 듣고 나서 동물병원에 교육을 신청했거든요. 선생님 말씀이 ‘이리 와’는 주인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도록 하는 개 훈련의 기초 명령어랍니다. 배운 것은 꼭 다시 연습해보라던 트레이너 말이 기억나 가벼운 숙제 해치우듯이 생각난 김에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설마 개 훈련의 첫 단계라는 ‘이리 와’ 정도를 똘비가 못하는 건 아니겠지요.


모든 동물 훈련에는 반드시 보상이 따라야 한답니다. 마침 냉장고에서 꺼내 온 샐러드 안주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위에 아들이 먹다 남겨 놓은 닭백숙 가슴살을 찢어 올리고 나름 근사하게 기분을 내던 참이었지요. 그 고기를 조금 뜯어 손에 감추고 강아지를 불렀습니다.

“똘비야~ 똘비야~”

허참, 그런데 이놈이 웬일인지 귀를 쫑긋거리며 보기만 하고 제 근처에 올 생각을 않습니다. 드나들 때마다 반갑게 쫒아와 짖어대던 녀석이라 그런 반응이 의외였습니다.


하긴 제가 소파에 앉아 쉬면서 강아지를 불렀던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좀 편히 앉아 있을 때마다 제 무릎으로 올라오려는 녀석을 밀어내기에 바빴지요. 가끔 귀 청소나 빗질을 해주려고 부르면 귀신같이 눈치를 채고 소파 밑이나 테이블 아래로 숨어버렸고요. 부엌에서 고기를 썰 때나 접시에 남은 음식을 치우면서 부를 때만 쏜살같이 달려오던 녀석인데, ‘우리집 강아지 똘비는 내가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온다.’는 식으로 착각했나 봅니다.


개 좋아하는 남편과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하는 수 없이 키우기 시작했지만 내키지 않는 식구였던 만큼 저는 늘 그놈에게 ‘B사감’처럼 야박하게 굴었죠. 그럼에도 이 녀석은 언제나 저에게 변함없는 짝사랑을 보내 왔습니다. 가족이 다같이 귀가할 때도 유독 저만 쫓아다니며 겅중겅중 반겨주는 바람에 다른 식구들이 불평할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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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놈이 막상 먹이까지 들고 부르는데 멀뚱멀뚱 쳐다만 보면서 영 가까이 오지를 않는 겁니다. ‘갑자기 왜 저러나?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하는 표정입니다. 다시 불러도 멈칫거리며 1m 전방까지는 오는데 더 이상은 다가오질 않고 극히 경계하는 태도입니다. 나중에는 아예 손에 있는 먹이까지 내보이면서 꾀었지만 그냥 째려보기만 했어요. 아니, 이럴 수가! 이 녀석은 여태 날 좋아했던 게 아니란 말입니까?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1인자라고 느껴서 할 수 없이 충성을 바친 걸까요? 그것도 모르고 이놈은 언제나 저를 사랑하다 못해 흠모까지 한다고 착각해왔다니 이게 무슨 망신이랍니까?


텔레비전에서는 가슴으로 뿜어내는 사랑의 열창이 클라이맥스로 치달으면서 방청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센티멘털 범벅인데, 그 음악을 들으며 제 앞에 서 있는 강아지는 무미건조하기만 합니다. 닭고기를 미끼로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지 저울질하기 바쁩니다. 와인으로 보통 때보다 감성적이 된 주인의 다정한 부름마저 외면하고 도통 움직일 생각조차 안 합니다. 흑.


혹시 나머지 가족도 다들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요? 갑자기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식사가, 포근한 잠자리가, 평안한 일상이 날아갈까 봐 겉으로만 좋아하는 척해줬던 것뿐일 수도 있잖아요. 속사포 같은 잔소리를 엄마의 노랫소리로 여겨보자고 겨우겨우 참아내면서 겉으로만 웃어준 건 아니었을까요? 남편도 괜히 마음에 있는 소리를 내놓았다가 당할 보복이 두려워 매번 스리슬쩍 넘어갔던 게 아니었을까요?


믿었던 강아지에게서 받은 배신의 충격 때문에 갑자기 외로운 마음이 촉발되고 연이어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똘비를 데려다 무릎에 당겨 앉히고 쓰다듬으면서 목을 간질거려줍니다. “그랬니? 그랬니?” 하고 물어봐도 이놈은 아예 저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듭니다. 늘 쌀쌀맞던 주인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별스럽게 구는지 미심쩍은 모양입니다.


그래요. 어쩌면 저는 그동안 이 개를 사랑한 게 아니라 돌봐주기만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가족에게도 마찬가지로요. 그들과 나 사이에 ‘보살핌’이란 매개가 없었더라도 우리는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정말 사랑이라는 걸 했을까요? 그들은 또 저를 사랑했을까요? 아, 오늘 저는 한 잔의 와인과 TV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와 강아지 한 마리로 인해 급격하게 감정의 파도를 타고 있습니다. 이건 누가 뭐래도 알코올의 효능입니다. 한밤의 고독한 술주정 센티멘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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