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난중일기
우리 동네 골목 어귀에는 24시간 열려있는 조그만 편의점이 있습니다. 살림하는 주부는 별로 갈 일이 없는 곳입니다. 젊을 때는 사야 할 게 많아서 대형 할인매장을 쫓아다녔고, 나이 들어서는 동네 마트나 시장에서 조금씩 사오니까요. 편의점은 가격 면에서는 그다지 경쟁력이 없잖아요. 가끔 늦게 오는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콜라나 과자 한 봉지, 라면 정도를 사들고 올 때를 제외하고 그 곳은 우리 가족과 상관없는 장소라고 여겼습니다. 어느 날 밤 울려온 남편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어디야?”
남편은 집으로 전화를 걸어놓고도 저에게 그렇게 물었습니다. 취했다는 얘기지요.
“집이야. 그러는 당신은 어딘데?”
시계는 벌써 열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나? 나는 집 앞 편의점! 너 나올래?”
남편의 발음이 살짝 어눌해진 걸로 보아 이미 알코올 섭취가 중반기를 넘어간 모양입니다. 이럴 땐 불안하게 집에서 기다리느니 차라리 데리러 나가는 게 속이 편합니다. 주섬주섬 스웨터를 걸치고 편의점으로 달려갔습니다. 편의점 앞 파라솔 의자에 남편이 혼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너도 마실래?”
“응.”
‘싫어, 됐어’, ‘들어 가’, ‘그만 마셔’와 같은 대답 대신 ‘응’이라고 할 수 있기까지 미련한 이 아내는 이십 년의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도로에 지나다니는 자동차를 보면서 우리는 나란히 앉아 말없이 맥주를 한 캔씩 비웠습니다. 그랬어요. 우리 가족 누구와도 각별해질 것 같지 않던 집 앞 편의점은 그렇게 남편의 은밀한 DMZ(비무장지대)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젠 저도 어렴풋이 압니다. 대범한 척 넘어가는 남편 마음속에 차마 하소연하지 못하는 수많은 상처가 날마다 쌓인다는 걸. 그리고 그걸 모르는 천진난만한 가족은 때로 그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요.
남편은 ‘사회’라는 현장에서 다시 ‘가정’이라는 또 다른 현장에 투입되기 직전, 국면 전환을 위해서라도 그만의 쉼터가 필요했나 봅니다. 한 갑의 담배와 한 캔의 맥주만으로 완벽하게 자신의 필요충분조건을 꽉 채워주는 만만한 천국 같은 곳 말이지요. 가정을 최상의 보금자리로 여겨 주리라 착각했던 저에게는 약간 섭섭한 일이지만 뭐 어쩌겠어요. 아내마저 부담스럽다는데요.
주인아저씨와 익숙한 눈빛을 주고받는 걸로 봐서 이 동네로 이사 온 다음부터 남편이 여길 꽤 자주 드나들었겠구나 하는 심증이 생깁니다. 아저씨는 밤마다 들르던 양복쟁이 아내가 드디어 출현하셨나 싶었는지 활짝 웃으며 저에게도 인사를 건넵니다. 낯이 다 뜨거웠어요. ‘네가 남편을 그렇게 자주 외롭게 만드는 여자냐’라고 하는 것 같아서. 아마 오늘 그는 혼자 맥주를 마시다가 못 견디게 외로워서 전화로 저를 불렀겠지요. 마침 집 앞이었으니 저였지, 다른 곳이었으면 아마 또 다른 사람이었을 겁니다.
오늘은 이 남자의 외로움이 어둠 속에 출렁거리면서 저에게까지 넘쳐흐릅니다.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 그렇게 담배 연기 사이로 흩어지는 남편의 한숨을 바라보며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내 적당한 시간이 흐른 후에 제가 한 마디를 내뱉습니다.
“일어나. 이제 그만 집으로 가자!”
“그래그래, 알았어.”
앞으로는 이 편의점이 예사롭게만 보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나다닐 때마다 어둠속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남편의 모습이 자꾸 어른거려 마음이 스산해질 테지요. 아스팔트 대로변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편의점 앞 남편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