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작은 가게에 가는 이유

by 우지경

여행을 가면 수없이 많은 가게에 들른다.

물건 구경이 여행의 50% 이상을 차지할 때도 있다.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아야 진정한 여행이라며

현지 가게를 섭렵한다.

문구점은 문구점이라서 들어가 봐야 하고,

쇼핑몰은 쇼핑몰이라서 들어가 봐야 한다.

볼만큼 봤다고 재래시장을 빼놓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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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물건>, 모호연, 지콜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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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핑계는 참 유용하다. 일상에서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를 나누고 물건을 고르기엔 여행만큼 잘 어울리는 배경이 또 있을까. 제주에 온 둘째 날 세화 오일장에 갔다. 말로만 듣던 구좌 당근도 보고, 한라봉, 천혜향, 수라 향, 레몬의 상큼함에 반해 과일가게 앞을 서성이다 레몬을 샀다. 과일가게 아저씨는 40년간 과일 감별사를 해 온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과일을 판다고 했다. 이왕이면 레몬 한 박스 사서 청을 담그는 게 어떠냐는 아저씨의 말에, 제주에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자라 한 박스는 너무 많다고 사양했더니 그가 되물었다.

“그럼, 레몬은 사서 뭐 하게요?”

“레몬 사서 한라 토닉 마시려고요.”

소주는 한라산이 최고지만, 한라 토닉은 단 한 번도 마셔 본 적 없다는 아저씨에게 한라 토닉 만드는 법을 알려드렸다. 아저씨는 언젠가 하루를 마무리하며 레몬 한 봉지를 사던 두 여자를 떠올리며 한라 토닉을 만들어 드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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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었던 여름 문구사에 가는 길, 우연히 발견한 방앗간 겸 떡 가게 ‘라이스 나이스’에서는 할머니 방앗간 옆에서 떡을 정성스레 만들어 파는 손녀를 만났다. 빨간색 노란색으로 칠한 방앗간이 예쁘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또 놀러 오라고 했고 나는 그러겠다고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지키고 싶은 약속을 하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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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문구사가 문을 열지 않아 아쉬운 마음으로 세화 해변을 걷다 후배가 발견한 ‘세화 씨 문구점’에선 그림엽서를 다 섯 장 샀다. 엽서를 그린 작가의 동백꽃 그림이 마리메꼬의 우니꼬(양귀비)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계산을 하며 물으니 마리메꼬가 좋아사 핀란드 여행을 다녀온 그림 작가가 주인장이었다. 제주에 온 지 5년이 되었다는 그녀는 세화가 참 살기 좋은 동네라고 했다. 따뜻한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그렇게 말하니 세화리가 한결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여행을 할 때마다 어슬렁어슬렁 동네 구경을 하고 가게란 가게는 다 들어가 보는 이유는 아무래도 그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고 싶어서 인 것 같다. 짧은 대화에서 묻어나는 생활인의 시선을 기억하고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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