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어떻게 하고 다녀요?”
거의 매달 해외 출장을 다니던 시절 하면 자주 듣던 질문이다. 그 문장에는 남편의 ‘밥’은 어떻게 하고 다니느냐는 단어가 생략되어 있는 듯했다. 사생활에 대해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저 “남편은 회사 가죠.”라고 짧게 답하곤 했다. '남편도 여느 직장인들처럼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퇴근 후엔 저녁 약속이 있거나 팀원들 이랑 한잔하겠죠.'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째 비슷한 질문을 자주 듣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비슷한 질문으로는 이런 질문이 있다.
"남편이 뭐라고 안 해요?") 과연 남자 여행 작가들도 이런 질문을받을까?
"아내는 어떻게 하고 다녀요?"
"와이프가 뭐라고 안 해요?"
똑같이 ‘일’로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여행작가라도 성별과 결혼 유무에 따라 질문이 다르지 않을까. 직업이 여행작가여도 이런 질문을 받는데, 출장이 아닌 여행을 간다고 하면 어떤 질문을 받을까.
“밥은 먹었어?”라는 질문이 인사말이고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이 때로 따뜻한 호의인 한국 사회라지만 그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내 존재 가치가 여행작가라는 내 일이 아니라 밥, 설거지, 빨래 등등의 집안일에 있는 것 같아 씁쓸했다.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 <당신의 주말을 몇 개입니까> 중 ‘밥’이라는 꼭지에는 작가와 남편의 이런 대화가 나온다. 한 동안 홀로 여행을 하지 못한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가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그날 밤,
회사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대뜸 말을 꺼낸다.
“나 9월에 여행할 거야.”
양복과 넥타이 와이셔츠와 양말을 여기저기 벗어던지던 남편이 옷을 벗다 말고 어안이 벙벙한 표
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럼 밥은?”
“밥? 첫마디가 그거야?”
지금 외출을 하는 거라면 몰라도 앞으로 몇 달 후에 여행을 간다는데, 그 말을 듣고 처음 하는
소리가 어디? 가 아니고, 며칠 동안이나? 도 아니고, 밥은? 이라니.
나는 이 대목에서 에쿠니 가오리와 그녀의 남편의 표정이 상상이 되어 피식 웃고 말았다.
밥.
밥.
밥.
결혼을 하고 나면 듣게 되는 그놈의 밥 타령을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도 듣고 있구나.
만약 내가 평생 밥을 짓지 않겠다고 하면, 당신 나하고 이혼할 거야?라고 남편에게 물을 정도로.
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평생 같이 밥을 함께 먹을 사람이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밥도 술도 뭐든 나눠 먹을 때 더 맛있게 느껴지므로.
다만 한솥밥을 먹는 가족이 여행을 떠날 땐 외식을 해도 좋지 않을까.
요즘 같은 시대에 배달 음식을 시켜도 되고 이 참에 요리 실력을 좀 연마해도 되고.
그 상대가 아내이건 남편이건.
여행을 떠난 사람이 어느 쪽이건 여행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땐
남편이나 아내의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 같이 먹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떠오르는 얼굴이 사랑하는 이의 얼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