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에집에 도둑이 든 건 처음이라...
“넌 어린애가 무슨 아파트를 그렇게 좋아하니?”
아파트를 좋아해도 되는 나이가 따로 있는 것인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핀잔을 들었을 때 내 나이 28살이었다. 투 룸 빌라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한 지 1년 도 채 되지 않아서 아파트만 바라보는 20대가 된 데에는 나름대로의 비극적인 서사가 있었다.
2005년의 모처럼 일이 일찍 끝난 어느 봄 날이었다. 집으로 직행할 것 인가. 옆 길로 샐 것 인가. 퇴근길, 나는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망설였다. 당시 광고대행사 카피라이터였던 남편은 언제나처럼 야근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작은 방 거실에서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리모컨을 독점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도 있었는데 그날따라 어쩐지 집에 가기가 싫었다. 영화나 한 편 볼까. 혼자 신촌의 극장에 들러 <밀리언 달러 베이비>라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복싱에 도전하는 32살 매기의 가슴 벅찬 성장 드라마를 기대했는데, 결말이 예상과 달라 슬픈 영화였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주인공 매기는 가족 부양을 홀로 떠맡다가 32살이 되어서야 권투에 도전하기 위해 혼자 낡은 체육관을 운영하며 선수들을 키우는 프랭키를 찾아간다. 프랭키는 복싱을 시작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라며 매기를 거부하지만, 결국 포기를 모르는 매기의 트레이너가 되어 훈련을 하게 된다. 마침내 챔피언 쟁탈전에 나가지만 상대방 선수의 반칙으로 매기는 척추를 크게 다치게 되고, 매기의 가족들마저 등 돌리자 매기는 프랭키에게 가슴 아픈 부탁을 하게 되는데…
“싸움이란 질 때도 있는 거지, 그걸 극복해야 챔피언이 돼.”나 “자넨 매기에게 기회를 줬어. 그 앤 이렇게 생각할 걸. ‘난 정말 행복했다’” 등 감동적인 명대사의 감동과 충격을 안겨주는 영화였다. 영화가 아니라 내 주위의 누군가에게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날 현실 같아서 씁쓸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향했다. 터덜터덜 빌라 계단을 오르는데 아랫집이 소란스러웠다. 아랫집 부부는 불안한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열쇠수리공 아저씨는 문을 따고 있었다. 불길했다.
“무슨 일 있어요?”
“그 집도 문 안 열릴걸. 잠깐만 기다려요. 내가 얼른 따 줄게.”
처음 보는 열쇠수리공 아저씨는 친근한 반말을 하며 겁을 주는 것인지 안심시키는 것인지 모를 말을 했다. 후다닥 계단을 뛰어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철거덕철거덕. 문이 안 열렸다 대체 누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문이 안 열려요!”
“쯧쯧. 그 집도 털렸네. 털렸어. 같이 올라갑시다.”
나의 불행이 열쇠수리공 아저씨의 일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말도 안 돼. 아닐 거야. 제발 아니길. 나의 걱정은 문을 연 순간 현실이 되었다. 장롱 문과 화장대, 서랍장의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려 있고 바닥에는 물건이 쏟아져 있었다.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작은 방과 주방 심지어 침대 시트 위에도 낯선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소중한 내 삶의 한 페이지를 짓밟힌 기분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순식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만약에 내가 영화를 보지 않고 집에 와서 도둑과 마주쳤더라면, 그 도둑이 칼이라도 들고 있었다면.… 아찔했다. 도둑맞은 집안 한가운데 멍하니 서 있다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오늘따라 결혼반지도 시계도 차고 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찾아보니 집에도 없었다. 나는 없어진 물건을 확인하면서도 경찰이 와서 지문을 채취하려면 사건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야 되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 와중에 열쇠 수리비를 지불하고 나니, 열쇠수리공 아저씨는 윗집 문을 따러 갔고 남편이 어느새 곁에 도착해 있었다.
“베란다 창문이 열려 있었죠? 도둑이 배관을 타고 베란다로 들어와 세 집을 털고 갔어요."
자신을 사복 경찰이라고 소개하는 한 남자가 집으로 들어와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이 빌라 사람들이 언제 집에 들어오는지 관찰한 후 계획적인 범죄를 저질렀을 것이며, 이런 도둑들은 웬만해서는 잡기 어렵다고 했다. 다른 집을 털 다 현장에서 걸리거나 장물을 팔다 걸려야 꼬리가 밟힌다나. 나는 이 상황이 현실인지 악몽 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멍하게 사복 경찰의 말을 듣고 있다가 힘없이 물었다.
“그럼 지문 채취는 안 하나요? 현장에 단서가 있지 않을까요?”
수사를 기대했던 나에게 돌아온 답은 서에 나와서 조서를 쓰라는 것이었다. 피해자 조서라는 것이 있다고. 정신을 차려보니 남편과 나는 경찰서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경찰: 이름
남편: 김찬입니다.
경찰: 김찬희요?
남편: 아니요. 김찬입니다.
경찰: 아, 김찬이요?
남편: 아니요. 김 찬 외자예요.
경찰: 아 외자. 처음부터 그렇게 얘길 하시지.
남편 이름을 쓰는 데만 몇 분이 걸렸다.
경찰: 자 그럼, 없어진 물건을 얘기해 보세요.
남편: 결혼 예물을 다 가져갔어요. 태그호이어 시계랑 불가리 반지요.
경찰: 태, 탱크? 하나씩 얘기하세요.
남편: 태그호이어 시계요.
경찰: 태그호리 시계요?
남편: 태.그.호.이.어 시계입니다.
조서에 브랜드명을 쓰는 데는 또 몇 분이 더 걸렸는지 모르겠다. 길고 긴 하루였다.
그날 이후 나는 퇴근 후 집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워졌다. 누군가는 한 번 도둑이 든 집은 다시 도둑이 안 든다는 말로 위로를 해줬지만 계단을 오를 때도, 현관문을 열 때도 그날의 일이 떠올라 불안했다. 결국 나와 남편은 더 이상 훔쳐 갈 것 없는 18평 투 룸 빌라에 캡스를 달았다. 그제야
왜 조상님들이 소 잃고 외양관을 고쳤는지 그 뒷북치는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남편은 아랫집 남편이 담배 메이트가 됐다.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마주치면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곤 했다. 하루는 담배를 피우러 나갔던 남편이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아랫집 부인이 여행업계에서 일하는 데, 집에 두었던 엔화 500만 원 정도를 도둑맞았다고. 현금을 도둑맞은 부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를 간다고 했다. 도저히 이 집에서는 못 살겠다고. 아랫집 부부가 이사 가던 날 나는 격렬한 전투에 함께 참전했던 동지를 잃은 것 마냥 쓸쓸해졌다. 나 역시 이사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게 됐다.
계단을 올라올 때마다 도둑맞은 날의 일을 떠올리며 사는 것에 질려버린 나는, 경비실이 있는 아파트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물론, 경비실이 있는 고층 아파트라고 해서 도둑이 들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도둑이 든 빌라에 사는 것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여보, 우리 다음엔 꼭 아파트에 살자. 이제 도둑이 베란다로는 올라오기 힘든 고층 아파트에 살 거야.”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아파트에 사는 것은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었다. 도둑이 들기 전만 해도 나와 남편은 앞으로 몇 년은 더 투룸 빌라에 살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참. 성산동 빌라에 도둑이 들던 날 내가 본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는 이런 대사가 있다.
“접시를 닦으며, 걸레질을 하며, 삶을 연명하는 사람들은 많아. 그들의 변명이 뭔지 알아? 자긴 기회가 없었다고들 하지.”
매일같이 야근을 하며, 도둑을 당하며, 불안한 삶을 이어가던 나는 나에게는 더 나은 곳에서 살 기회가 없었다고 하는 대신 기회를 만들기로 했다.
어쩌면 다음 집에서의 삶은 도둑에게 결혼 예물을 탈탈 털리고 얻은 기회 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