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는 집을 살까, 삶이 되는 집에 살까

도둑을 피하고 싶은 고층 아파트 이사 지망생의 고민

by 우지경

나는 한 때 이사 지망생이었다. (작가 지망생도 아니고 가수 지망생도 아니고 이사 지망생이 무슨 소리냐고요?) SF 소설가 지망생, 댄스 가수 지망생 등 작가와 가수 지망생에도 장르가 있듯 나는 고층 아파트 이사 지망생이었습니다만…. 그 시절 성산동 이사 지망생의 꿈은, 오직 경비실이 있는 고층 아파트로 이사하기였다. 이사의 명분은 분명했다. 도둑을 피하고 싶어서...


신혼집에 든 도둑의 트라우마는 생각보다 더 오래갔다. 도둑이 들 고 난 후 캡스를 달고, 집에는 늘 불을 켜 놓고 출근을 해도 불안한 마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이사 밖에는 답이 없어 보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남북 전쟁 통에 “다시는 굶주리지 않을 거야.”라고 분연히 일어서듯, 나도 “다시는 도둑이 배관을 타고 올라올 수 있는 집에 살지 않을 거야”라고 결연하게 선언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데,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굳건한 의지에 비해 가진 돈이 없다 는 것. 살고 있던 투룸 빌라 전세금은 7,500만이었고, 나와 남편의 통장은 얄팍했다. 둘 다 겨우 직장생활 4년 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층 아파트로의 이사를 희망했다. 도둑을 피하고 싶어서… 캡스도 그만 달고 싶어서…


어느 날 갑자기 고층 아파트로 이사 갈 기회가 주어질 리 만무했다. 그러니 기회는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반드시 내 집을 사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영 끌 대출로 2억 초반대의 아파트는 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전세와 매매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면 매매도 고려해 보기로 했다. (2006년만 해도 전세와 매매 가격차가 크지 않는 아파트가 있었다. 원하는 집의 조건은 심플했다. 도둑이 베란다로 들어오기 힘든 고층 아파트일 것. 전망까지 좋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어느 동네로 아파트를 보러 가볼까?"


처음엔 아파트를 보러 간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상수역, 광흥창역 근처로 출동했다. 남편과 좋아하는 홍대 옆인 데다 남편(서울역)과 나의 직장(광화문)과도 멀지 않은 동네이기에 스스럼없이 부동산 문을 두드렸다가 비싼 가격에 놀라 시무룩해져 돌아왔다. 공덕까지 집을 보러 갔다가 더 기운이 빠졌다. 마포구에는 우리가 살 아파트는 없는 듯했다. 아직 좌절하긴 일렀다. 서울은 넓고 아파트는 많으니까.


마포구를 벗어나 보자. 한강 건너 영등포구는 어떨까. 지하철이 개통되면 주변 아파트값이 오른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얘기는 있어서 9호선이 생길 곳의 아파트를 보러 다녔다. 그렇게 우리의 영혼을 끌어 모아 살만한 아파트를 찾아 발품을 팔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낡아 보이는 아파트는 '재개발'을 노리고 몇 년 들어가 살면 시세 차익을 벌 수 있다고 했다. 그런 것이 바로 몸 테크라고. 말로만 들었을 때는 이 참에 재테크를 해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아파트로 향하는 어둑한 골목을 걷다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매일 밤, 어두컴컴한 골목을 거쳐 퇴근할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아파트 단지가 모여 있는 동네는 어떨까. 조금 더 서쪽으로 가보자. 언젠가는 개통될 9호선 라인을 따라 한강의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했다. 염창동과 등촌동 일대의 아파트를 샅샅이 훑었다. 염창동에선 베란다 창 너머로 한강이 보이는 예쁜 아파트에 반해 덥석 계약하려고 했지만, 주인이 매매로 내놓은 물건을 거두어들였다. 영혼을 팔아도 아파트를 살 수가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그 후로 둘러보는 아파트는 하나같이 짐이 너무 많아서 집이 좁아 보이거나, 짐이 많은데 곰팡이까지 피어있거나, 아파트 외관만 봐도 칙칙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차라리 익숙한 동네 아파트 전세를 알아볼까?"

하지만 성산동에는 신축 아파트가 없었다. 찾아보니 마포구청 역 앞에 아파트 같은 오피스텔 '이안'의 전세 매물이 있었다. 오피스텔이긴 해도 내가 그토록 원하는 고층이었다. 한 번 보기나 하자 하는 마음으로 이안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나는 통창 너머로 보이는 파란 하늘에 반하고 말았다. 그때 깨달았다. 그동안 8년 간 서울에 살면서 하늘이 보이는 집에 산 적이 없다는 것을.


오피스텔이라 발코니는 없지만 거실 하나, 욕실이 2개, 방은 3개나 됐다. 20평대 아파트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욕실 2개! 1분 1초가 아쉬운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남편과 내가 각각 다른 욕실에서 샤워를 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디귿자 부엌의 아일랜드 식탁에는 식기세척기가 빌트인으로 설치돼 있었다. 게다가 6호선 마포구청역 과 도보 1분인 데다 월드컵공원과 멀티플렉스 영화관 그리고 마트가 도보 10분 거리였다. 그러니까 초역세권에 공세권, 영세권, 마세권이 아닌가. 아, 1층 편의점까지 치면 편세권도! 무엇보다도 도둑이 배관을 타고 올라오기는 힘든 고층은 분명했다. 그동안 그렇게 집을 보러 다닌 게 무색하게 내 귓가에 마음의 소리가 울렸다.


‘재테크고 뭐고 나는 여기서 살아야겠다.’

남편은 그렇게 아파트에 살고 싶다고 하더니 웬 오피스텔이냐고 핀잔을 주지 않았다.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살아도 괜찮은지 물었고, 난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저 더 나은 공간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랬기에 한 번쯤은 하늘이 보이고 쾌적한 오피스텔에서 살아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2년 후에 다른 집으로 이사 가면 되니까.


그때는 우리가 어떤 결정은 하는지도 모르고 결정했지만, 돌이켜보면 우리는 돈이 되는 집을 사는(Buy) 대신, 생활이 나아질 집에 살기로(Live) 했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라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때는 집=자산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지금은 집이 자산이라는 걸 뼈저리게 알지만, 그래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전망 좋은 오피스텔에서 생활이 집에 대한 취향을 조금은 만들어 주었기에. 그 집에 살기 전만 해도 나는 집에 대한 취향조차 가지지 못했던 세입자였으므로.


아파트는 아니지만 고층 오피스텔로 이사하기로 마음먹었으니, 이사 지망생의 모든 고민이 종결되면 좋으련만 돈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 당시 뭉게구름이 떠 있는 하늘이 보이는 이안 2차의 가격은 1억 1천만 원이었다. 우리에게는 3천5백만 원 + a(복비 외 기타 등등)가 필요했다.


남편과 나는 그때도 전세자금 대출이 있는지도 몰랐다. 알아볼 생각도 못했다. 그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지 않겠다, 신용대출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퇴직금을 중간 정산받고 그동안 저축한 돈을 10원까지 박박 긁어모았지만 딱 천만 원이 부족했다. 엄마에게 전화로 고민을 털어놓았다.


“마미론 몰라? 이럴 땐 마미론이지.”

대출은 리드코프(참고로 네이밍 회사에 다니던 시절 내가 네이밍 했다.) 아니었나? 아니면 산와머니. 그나저나 엄마가 딸에게 대부업체를 권한다고?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싶어 멍하니 있는 내게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동안 찬이랑 네가 보내준 용돈 한 푼도 안 쓰고 모아 놨어. 그 돈 보태 줄게.”


결혼 후 엄마에게 보낸 용돈으로는 천만 원이 될 리가 없는데도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안 갚아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용돈은 용돈이고 마미론은 마미론이니 한 달에 50만 원씩 꼬박꼬박 갚겠다는 단서를 달고 엄마에게 천만 원을 빌렸다. 엄마가 딸에게 건네는 응원 같은 돈이었다. 같이 살고 싶은 사람과 결혼했으니, 이번에는 살고 싶은 집에 한번 살아 보라는 힘찬 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