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사는 나의 취향과 성향을 알아가는 과정
일곱 번째 전셋집으로 이사를 준비하던 날들이 기억난다. 지난한 세입자의 역사를 청산하고 내 집을 산 것도 아닌데, 난생처음 우주여행을 떠나는 지구인 마냥 들떠 있었다.
서울 살이 내내 원룸과 투 룸을 전전하던 내가 쓰리 룸에 입성하다니! 사촌 언니와 투 룸 빌라, 나 홀로 원룸, 동생 대학 언저리 작은 투룸 아파트, 나의 첫 회사 근처 투 룸 빌라, 동생과 내 회사 중간쯤의 투 룸 빌라, 신혼살림을 시작한 투 룸 빌라를 거처 남편과 함께 얻은 쓰리 룸 오피스텔이었다. 번번이 좁은 이코노미 클래스 비행기만 타다가 운 좋게 비즈니스 클래스로 업그레이 된 기분이 이럴까. 룰루랄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탑승하고 싶어 안달이 난 승객 마냥 나는 이사 준비에 열을 올렸다.
아파트는 아니지만 그토록 원하던 고층 아파트와(신혼집에 도둑이 든 이래로 주야장천 ‘고층 아파트에 살어리랏다.’ 노래를 부른 게 나였다.) 얼추 비슷했다. 약 24평 형(81.44㎡) 주거용 오피스텔로 거실과 주방은 기본이고 침실로 쓸 안 방 말고도 현관 옆에 방이 2개나 더 있었다.
내 집은 아니어도 새 집이라 더 설렜다. 우선 도배를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문과 몰드 걸레받이도 자작나무 색에 가까운 연한 우드 톤이라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어서어서 가구 배치를 해서 공간을 착착 채우고 싶었다. 경쾌하게 착착!
그래서, 노트에 손수 오피스텔 도면을 그려 가구 배치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1. 거실
드디어 내게도 원래부터 거실이었던 공간이 생겼다.
한쪽 벽에는 소파를 두고 소파 위에는 창 밖 풍경과 잘 어울리는 하늘색 그림 액자를 걸어야지.
2. 부엌
트롬 세탁기와 식기세척기가 빌트인 된 아일랜드 식탁이 놓인 주방이라니. 아일랜드 식탁에 어울리는 바 의자 구매가 시급하다.
3. 큰 방 (침실)
침실과 화장대만 둔 미니멀한 공간으로 연출하자. 아늑한 침실을 위해서 커튼은 달아볼까?
포인트는 침대 배치! 호텔식으로 방 가운데 두어 좌우 양쪽에서 진입할 수 있도록 한다.
침대가 한쪽 벽에 붙어있으면 안쪽에 잠든 사람이 밖으로 나올 때 바깥쪽에 잠든 사람을 깨워야 할 수도 있으므로.
4. 작은 방 1
책을 읽고 컴퓨터를 쓰는 서재로 꾸민다.
부엌에 아일랜드 식탁이 있으니 식탁을 작은 방에 두어 책상으로 쓰고 책을 꽂을 만한 책장을 장만하자.
5. 작은 방 2
TV에서만 보던 드레스룸을 만들어 볼까. 일단 시스템 옷장을 검색하자.
여행 계획을 세울 때만큼이나 이사 계획은 즐거웠다. 계획을 실천하기 전 까지는.
소파에 어울리는 액자를 찾아 고속터미널 지하를 헤맸건만(오늘의 집이 없던 2006년의 일이다.) 마음에 드는 액자를 찾기란 마음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가게 주인은 원하는 색 그림이 있는지 묻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럴 거면 물감 사서 직접 그려요."
아일랜드 식탁에 어울리는 흰색 의자 찾기 또한 어려웠다. 의자 2개 사겠다고 이 매장 저 매장 발품을 팔아도 맘에 드는 의자가 없어 아무 의자나 살 뻔했다. (당근 마켓이 없던 시절의 일이다.) 서재에 놓을 책장 역시 맘에 드는 높이와 크기를 구하기 힘들었다. 책상으로 쓸 식탁과 책장의 색을 다크 브라운으로 맞추고 나서 창에는 커튼 대신 우드 블라인드가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기승전 깔맞춤을 위하여! 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또 발품을 팔아야 했다. 시스템 옷장 역시 가격이 만만하지 않아 결정이 어려웠다. 아, 시작은 창대했으나 그 과정은 피곤한 이사였다.
그래도 나는 이사를 통해 내가 몰랐던 나를 발견하게 됐다. 발 품 팔아 집을 보러 다니는 사이 내가 어떤 공간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고, 그 공간을 어떤 색과 물건으로 채울지(혹은 비울지) 궁리하다 보면 내 취향과 성향을 하나씩 알아갔다. 공간에 가구와 소품을 배치하며 나는 정형화된 틀에 맞춰 행동하는 사람인지, 자유분방하게 공간을 재 창조하는 사람인지도. 결국 이사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리하여 서울에 산 지 10년 만에 가장 큰 집에서 가장 많은 가구와 소품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 그러니까 그 시절 나는 비우기보다는 채우고 또 채우는 인간이었다. 비우기란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아니던가. 아직 가진 것이 많지 않은 나는 채울 것이 많아 행복했다.
한편으로는 집은 꾸미기 만큼 가꾸기가 중요하단 것을 깨닫는 날이 이어졌다. 아무리 예쁘게 꾸민 집도 청소기를 돌리고, 물 걸레질을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빨래를 걷어서 차곡차곡 개고, 설거지를 하는 등 집을 돌보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속으로는 회사에서 열 일했는데, 집에서도 열 집안일해야 돼?라고 투덜대며. (청소연구소가 없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