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비가 아까워서 집을 사기로 했다.
누구나 살고 싶은 집의 조건이 있을 것이다. 아침 햇살이 깊숙이 스며드는 채광 좋은 집, 계단과 테라스가 있는 이층 집, 강이나 바다가 보이는 집 등. 누군가는 OO권에 살고 싶다고 말한다. 녹음이 우거진 공원이 앞마당 같은 숲세권 이라거나, 아이가 다닐 학교가 가까운 학세권 이라거나.
순전히 내 기준으로 일곱 번째 전셋집(동거인인 남편 기준으로 두 번째 전셋집)에 이사를 하고서야 두 가지를 깨달았다. 내겐 살고 싶은 집에 대한 조건이 거의 전무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O세권을 4개나 갖춘 집에 살게 되었음을.(만세!!) 살기 좋은 집을 골랐을 뿐인데 살기 좋은 동네가 1+1처럼 따라온 것은 더없는 행운이었다.
1. 역세권
아침밥이냐 잠이냐 선택하라면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맞는 한이 있어도 잠을 더 자고 싶었던 내게 감지덕지한 초 역세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오피스텔 밖을 나서면 바로 앞에 지하철역이 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보다 버스가 좋아서 굳이 버스를 타고 출근했지만 버스 정류장도 그리 멀지 않았다.
2. 편세권
편의점이 가까우면 편세권, 슬리퍼 신고 편의점을 갈 만한 거리면 슬세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치면 일곱 번째 전셋집은 제대로 슬세권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리면 편의점이 24시간 불을 반짝이며 손님을 반겼다. 그 덕에 출퇴근 길 편의점에 들러 커피도 사고 맥주와 과자도 사다 보니 어느새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훗날 아르바이트생은 내게 친절한 인사를 건넨 것을 후회하게 된다.)
3. 몰세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영화관, 마트, 쇼핑몰, 수영장, 찜질방을 갖춘 상암 월드컵 경기장 몰이 있었다. 스타필드도 더 현대도 없던 그 시절 너무도 반가운 몰이었다.
4. 팍세권
월드컵 공원역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월드컵 공원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무려 한강이 넘실댔다.
역세권, 편세권, 몰세권, 팍세권을 두루 갖춘 마포구청역 동네 생활은 행복했다. 그 행복을 누리면 누릴수록 좋았다. 좋은 만큼 불편한 감정도 밀려왔다. 세상에는 이렇게 살기 좋은 동네가 많은데 왜 나는 살고 싶은 집의 조건 하나 없이 살았을까. 결혼 전까지 내가 살던 집은 학교 앞, 회사 앞 빌라의 원룸 투룸이었다. 그랬기에 늘 내가 살 수 있는 집을 지하철에서 먼 주택가 골목 안 다세대 빌라로만 한정 지었던 걸까. 경험이 없다고 해서 바람이 없을 필요는 없었는데. 너무 많은 것을 단념하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이직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대학원을 가겠다고 호기롭게 다니던 홍보대행사를 그만뒀건만, 대학원에 똑떨어져 버린 나는 다급한 마음에 마포구청역에서 머나먼 야탑역에 있는 IT회사 홍보팀에 덜컥 취직을 해버렸다. 합격통보를 받고 기뻐하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정말 거기까지 다닐 수 있겠어?”
“응.”
“왕복 세 시간은 걸릴 텐데? 괜찮겠어?”
“안 괜찮지만 할 수 있어!”
첫 출근한 날, 팀장이 자신이 친한 옆 팀장과 함께 입사 환영주를 사겠다고 했다. 두 분은 부어라 멀쩡했는데 출근을 하느라 피곤했던 나는 맥주만 마셨는데 잔뜩 취해버리고 말았다. 다음날은 수많은 알람을 일일이 다 끄고 다시 곤란 잠을 잤다. 쌔한 기분에 눈을 떴을 땐 이미 늦잠을 잔 후 였다. 세수만 하고 허겁지겁 콜 택시를 불러 탔다. 택시 아저씨는 운이 좋은 날이라고 했다. 출근시간에 장거리를 뛰는 일은 드물다며. 나는 운 좋은 택시 아저씨 덕(?)에 지각은 면랬지만 택시비는 무려 5만 원이 넘게 나왔다.
퇴근길에 생각했다. 이렇게 출근할 때 택시를 길에 뿌리고 다니다가는 월급 탕진은 시간문제라고. 다시는 출근길에 택시를 타지 않겠노라 맹렬히 다짐했다.
그 다짐은 예정된 일처럼 지켜지지 않았다. 아니 어기고 다시 다짐하길 반복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핑계를 대자면 퇴근 후 회식이 많았다. 홍보팀 특성상 주로 기자들과 술자리가 대부분이었다. 술 마신 다음 날 새벽같이 일어나 지하철을 1시간 반 타고 출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며 콜택시를 불렀다. 카카오 택시가 없던 시절의 일이다.
이래도 계속 택시를 타고 출근하다간 월급이 아니라 아니라 재산을 탕진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직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아서 남편에게 얘기했다.
“여보, 우리 이사 가자.”
남편이 혀를 차며 대꾸했다. 그럴 줄 알았다고. 이왕 이사 갈 거라면 이번엔 집을 사자고.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우리도 집을 살 수 있어? 역세권은 아니겠지?
아, 그러니까 택시비가 아까워서 집을 사는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