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인테리어였다.
“여보, 우리도 이렇게 인테리어 하면 어때?”
언제부터 인가 남편이 한 인테리어 업체가 블로그에 올린 같은 아파트 같은 평수 인테리어 포스팅을 쓱 보여줬다. ‘일자 주방을 ㄷ자 주방으로 바꾸니 괜찮지?’라고 다정한 목소리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 부엌이 달라지면 자기도 요리를 해보겠다고. 밥과 찌게, 반찬 말고 스테이크를 굽고 파스타를 만드는 요리라니 내 귀엔 캔디보다 달콤하면서도 낯설었다.
결혼 후 내 귀에 환청처럼 익숙한 단어는 밥이었다. “밥은 먹었니?” “뭐 해 먹었니?” “빵이 무슨 밥이냐.” “ 네가 밥을 난 안 해 먹어서 그렇지.” “김치는 있니?” “그래 오늘은 뭐 해 먹을 거냐?” “어묵탕 말고 또 뭐 할 줄 아니?” “더덕 구울 줄 아니?” “삼계탕 해 먹어라. 삼계탕이 얼마나 쉬운데.” “이까짓 김장이 뭐가 힘들다고 그러냐.” 시모와 전화 통화를 하거나 시댁에 갈 때마다 줄기차게 들어온 말들은 대부분 ‘밥’에 관한 핀잔과 간섭이었다.
장르가 한식이건 양식이건 요리는 내게 안 하면 죄책감을 안겨주는 의무인데, 남편에게는 새로운 취미이자 도전이 되겠구나 싶었다. 남편이 장모에게 “그래, 뭐 해 먹었니?” “네가 밥을 안 해 먹어서 그렇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을 일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한 글자 단어가 ‘밥’인 나도 일자형 부엌이 불편하긴 했다. 몇 년 사이 나는 프리랜서로 전향해 집에서 일하는 재택 근무자였다. 말이 재택근무지 어수선한 집이 싫어서 늘 이 카페 저 카페를 전전했다. 서울대입구 역 근처에 샤로수길이 생겨 갈만 한 카페가 늘 긴 했지만 집에 작업실을 갖추고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10년 가까이 산 아파트 인테리어를 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싱크대만 바꿀 게 아니라 색이 바랜 벽지도 바꿔야 하고, 바닥도 바꾸면 좋을 텐데 그러려면 가구를 다 빼고 공사를 해야 된다는 말 아닌가. 게다가 같은 아파트에 10년 사는 동안 물건은 또 얼마나 늘었는지. 싱크대는 그릇으로 그득하고, 옷방은 옷으로 그득하고 책장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 집이 물건들에 점령당한 지 오래였다.
“차라리 이사를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새 집을 사서 인테리어를 싹 하고, 가구도 바꾸자.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렸을 때 포맷하고 프로그램을 다시 깔 듯. 맥시멀리즘 바이러스에 걸린 집을 포맷하고 인테리어 프로그램을 다시 까는 거지. 말처럼 된다면 인생이 리셋되는 기분마저 들 것 같았다. 그러자 남편은 같은 아파트 단지 30평대 아파트를 알아보자고 했다. 이 참에 평수를 늘려보자고. 짐을 줄이는 것보다 평수를 늘리는 게 쉬운 방법일 것 같았다.
“언니, 같은 돈 내고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요. 더 멀리 이사 비용은 똑같은데.”
마침 같은 아파트에서 전세로 신혼살림을 시작한 후배에게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가성비라는 단어도 모르냐는 듯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후배가 말했다. 이사비용만 내요. 부동산 복비도 내야 하는데. 여기보다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를 동네로 가야죠.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후배는 같이 임장을 다녀 주겠다고 했고 나는 후배에게 물었다. “근데, 임장이 뭐야? “김장은 알았는데 임장은 처음 들어봐서 라는 아재 개그 멘트는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소위 부동산 전문용어인 임장은 ‘현장에 임한다’의 줄임말로, 관심 지역 단지와 부동산 조사하는 현장 답사를 뜻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럼, 용산부터 한번 가볼까? 이태원도 가깝고 나는 열정도가 좋더라.”
동네 단골 술집에 로망이 있는 나는 열정도가 얼마나 재미있는 골목인지 얘기를 했지만 후배는 임장을 가면 학군과 교통, 상권을 봐야 한다고 했다. 2016년 여름 나와 후배와 품위 있고 우아하게 차려 입고 부동산 투어에 나섰다. 일단 후배가 추천하는 동네 부동산에 내가 사는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았다. 2억 3천에 산 아파트는 년 만에 9년 만에 3억 5~6천 선에 거래되고 되어 있었다. 그동안 모아 놓은 1억이 조금 넘었고, 3억 이하로 대출을 받으면 6억 후반대의 아파트를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그 희망은 용산의 부동산에 가자마자 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부동산에서는 래퍼 도끼가 살고 있는 전망 좋은 주상복합이나 용산역 초 역세권 고층 아파트를 권했고, 나는 그러려면 대출받아야 하는 돈이 얼마인지 헤아려보다 머리가 아득해졌다. 지금 8억, 9억짜리 아파트를 사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부동산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나와 이름이 같은 지경 부동산에서는 잘 왔다며 이럴 때일수록 분양권을 사야 한다고 했다. 나보다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후배가 옆에 있어 다행이었다. 분양권이 뭔 지도 모르는 내게 부동산에서 하는 이야기를 내게 번역해주었으니. 용산은 포기하고 집에서 가까운 동네를 알아보기로 했다.
“오늘은 흑석동에 가보자!”
관악구 청림동에서 가까운 동네는 동작구 상도동과 흑석동 나는 그중 반포와 여의도가 가깝고 9호선 라인에 중앙대학교 병원이 가깝다는 이유에서 흑성동을 골랐다. 중앙대학교 언덕 위 아파트에는 마음에 드는 전망 좋은 고층 아파트는 7억대였지만 저층은 6억 중후 반대의 매물이 몇 개 있었다. 부동산 실장은 홈쇼핑 쇼 호스트의 톤과 속도로 이런 가격은 이제 없다며 오늘이라도 계약을 하라고 했다. 아직 살고 있는 집이 안 팔렸다고 하자, 근처이니 자기가 팔아주겠다고 했다. 주말에 남편과 함께 집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나서야 겨우 부동산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며칠 뒤 남편과 아파트를 다시 보러 갔더니 그 사이 한 집은 이미 팔리고 또 한 집은 집값을 올리겠다고 했다. 며칠 사이 보던 6억대 매물이 하나 둘 품절이 됐다. 세 번째로 다시 후배와 흑석동을 찾았을 때, 부동산 실장은 나처럼 우유부단하면 집을 못 산다며 나무라듯 다그쳤다. 후배는 차라리 흑석동 다른 아파트를 알아보자고 했다. 자기가 먼저 다녀왔는데 훨씬 괜찮다고. 9호선 지하철 역에서 훨씬 더 가까운 아파트였다. 어떻게 혼자 거길 가볼 생각을 했냐고 물었더니,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언니 저 사시 공부하는 동안 엄마가 뒷바라지 다 해줬잖아요. 저 이제 엄마 돈 벌게 해주고 싶어
요. 나는 언니랑 집 보러 다니면서 부천에 사는 엄마 이사할 집 사는 게 목표예요.”
“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후배가 알아본 아파트는 한강 뷰는 8억대가 넘었지만 저층은 7억 중반 가격대의 매물이 있었다.
시작은 6억 후반대의 아파트를 구하는 것이었는데, 집을 보러 다닐수록 점점 비싼 아파트를 보고 있었다. 현금은 1억 남짓밖에 없는데, 8억대의 아파트를 보고 나니 이제 7억 초반은 비싸게 보이지도 않았다. 7억 3천~4천이면 사도 되지 않을까? 내 표정을 읽었는데 부동산 대표가 7억 5천만원에 물건을 내놓은 집주인을 설득해서 천만 원을 깎아 보겠다고 했다. 지금 사야 한다고. 흑석동은 앞으로 동작구의 잠실이 될 거라고 했다. 홀린 듯이 부동산 대표의 이야기를 듣다가 덜컥 겁이 났다. 나는 프리랜서라 대출이 거의 안되고, 남편은 대출을 두려워하는데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아파트를 사면 인테리어 할 돈은 없겠다고 했고 남편은 이 아파트는 전세를 주고 우리는 계속 관악구에 살자고 했다. 내 집은 전세 주고 나는 전세 사는 사람들도 많다며.
전략을 바꿔 분당의 아파트들을 보러 가기도 했지만 나는 서울을 벗어나 살 자신이 없었다. 이번엔 또 어떤 동네를 알아볼까 하다 남편의 선배에게 금호동을 추천받았다. 강남 접근성이 좋아 남편이 출근하기 나쁘지 않고 서울숲도 가까우며 신금호역에서 5호선을 타면 종로 광화문도 가까
뒀다.
“조금만 일찍 오지. 이제 6억 9천은 매물이 없어요. 7억은 줘야 돼.”
그런데 그 집은 당장 입주할 수 있는 집은 아니라고 했다. 전세를 안고 고 사서, 2018년 3월에 세입자 계약이 끝나니 그때 들어가 살면 된다고. 전문용어로 이런 걸 ‘갭 투자’라고 한다고 했다. 시작은 인테리어였으나 그 끝은 갭 투자라니. 당장 집을 팔고 대출받을 필요는 없지만, 삶을 리셋
할 만큼 집을 꾸미고 살려면 1년 반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었다.
남편과 내가 고민하는 사이 집주인은 7억 천으로 집 값을 천만 원 더 올렸고, 부동산 대표는 집은 보지도 못했는데. 얼른 계약금을 쏘라고 했다. 돈을 먼저 보내는 사람이 임자라며. 같은 동 다른 집을 보긴 했지만 내가 살 집을 보지도 않고 살 수는 없다고 했더니, 몇 달 전 대구에서 단체로
임장 온 보험설계사들은 집을 보지도 않고 샀다고 했다. 게다가 세입자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집을 보여주지 않겠다.
“돈이 한 두 푼도 아닌데 어떻게 안 보고 사요.”
남편의 말에 그러면 어떻게든 보여주겠다고 했다. 나와 남편과 후배는 잠복근무하는 형사들처럼 금호동에서 세입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잠복 끝에 본 집은 물건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방 하나는 아예 물건으로 가득 찬 창고로 쓰고 있었다. 더 깨끗한 집을 사고 싶었지만 두 달 가까이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하루가 다르게 집값이 오르는 걸 실시간을 봐온 나는 사고 싶었다. 지금 안 사면 더 오를 것 같아서.
2016년 10월 남편과 나는 우리의 두 번째 집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남편이 회사에 가서 집을 샀다고 했더니 부동산 좀 아는 선후배들이 놀라며 이렇게 말했단다.
“야. (부동산에 관심 없던) 네가 집을 샀으니 이제 대한민국 집값 떨어지겠다!”
긴 마라톤 경기를 끝내고 축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전해 듣자 위로주를 마셔야 하나 헷갈렸다. 일단은 축하주든 위로주든 실컷 마시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