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있는 게 어디니, 빚이나 갚자.
“우대리는 어느 동네 살아?”
“청림동 살아요.”
“청림동이 어디지?”
“아... 청림동 모르세요?”
“처음 들어보는데. 그게 어디야?
“봉천동이 청림동으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아! 봉천동 사는구나.”
관악구에서 동작구로 넘어가는 언덕 위 아파트에 입주한 지 1년 만에 동네 이름이 달라졌다. 관악구가 2008년 ‘달동네’라는 이미지를 세탁, 아니 쇄신하기 위해 봉천동을 청림동, 행운동, 낙성대동 등 9개의 행정동으로 개편한 것. 그 결과 나 같은 관악구 주민들은 어디 사냐는 질문에 대답만 여러 번 하는 신세가 됐다. 당당히 개명한 이름을 말했을 뿐인데 어쩐지 촌스러운 본명을 숨기고 가명으로 미팅에 나온 사람처럼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집 값은 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이제 더 이상 2년에 한 번 이사할 일은 없을 테니까. 남편과 나는 그저 부지런히 빚을 갚았다.
이듬해 내가 이직을 했다. 마포구청역에서 야탑역이 멀어서 관악구까지 이사를 왔건만 뻑 하면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며 혼내는 미혼 여성 직장상사와 야근을 견디지 못해 야탑역에 있는 회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다행히 이직한 회사는 여의도 63 빌딩 3층으로 집에서 제법 가까웠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지만, 택시로 가면 금방이었다. 택시비도 6천 원 남짓이라 부담이 없었다. 그 핑계로 하루가 멀다 하고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모기지론과 택시비를 벌기 위해 출근하는 나날이었다.
택시를 타고 63 빌딩 1층에 도착하면 도어맨들이 친절하게도 택시 문을 매끄럽게 열어주었는데, 왠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 회사의 중요한 사람이 되지는 못했다. 과장 승진에 연거푸 고배를 마신 나는 다른 회사 과장으로 회사를 옮기며 그 회사에서 페이드 아웃했다.
다음 회사의 좌표는 강남역이었다. 서울대입구역에서 강남역까지는 지하철로 고작 14분. 지하철역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 데만 최소 15분은 걸렸다. 매일같이 지옥철에 시달려야 했지만 따박따박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 모기지론과 점심 & 식후 커피 값을 벌기 위해 출근하는 나날이었다.
어느새 내 집을 장만한 지 6년이 흘렀다. 집은 점점 새 아파트에서 헌 아파트로 변해 가는데 집값은 그리 오르지 않았다. 서울에 아파트를 사서 묻어두면 오른다고 들었는데 예외도 있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청림동이 어디 있는지 잘 몰랐다. 청림동이 구 봉천동인지 모르는 게 사람들 잘못은 아니지만 서운했다. 서운한 감정과는 상관없이 나와 남편은 부지런이 빚을 갚았다. 종종 '우리 이제 빚 얼마나 갚았어?'라고 물으면 '지난번에 알려줬잖아. 뭘 또 물어봐.' '근데, 우리 집값은 왜 안 오를까? 강남이 이렇게 가까운데.' '우리 집 팔아서 다른 동네 갈 수 있을까?' '아니!' 같은 대화를 나누며.
*이 글의 배경은 2008년에서 2013년입니다. 지금 관악구의 아파트 값은 많이 올랐어요. 특히 제가 집을 판 후로 급 상승했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