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평생이 걸린다.
– 어네스트 헤밍웨이.
“난 요즘 마릴라 아줌마가 된 기분이에요. 친구 얘기, 엉뚱한 공상 얘기, 내 일에 참견하는 얘기……. 어휴, 애가 끊임없이 조잘조잘 대는 게 영락없는 빨간 머리 앤이라니까요. 그 얘기를 듣고 있자면 어떤 때는 기운이 남김없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곤 해요.”
어느 날 아내가 말했다. 아, 정말이지 아이는 대단한 수다쟁이였다. 조잘조잘조잘조잘…….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남의 말을 들을 시간이 없었다. 그런 아이가 일곱 살이 저물던 어느 초겨울 한나절을 꼬박 침묵해야 했다. 나는 그 곁에서 아이가 제대로 침묵하는지 사나운 매의 눈으로 감시했다.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어찌 된 사정이었을까?
우리는 ‘침묵여행’ 중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아이만 침묵하는 여행이었다.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여기서의 침묵은 ‘강제적 침묵’이 아니라 ‘자발적 침묵’인 까닭이다. 물론 숨은 의도야 있었다. 나는 이 여행을 통해 아이가 말의 소중함과 올바른 대화자세의 필요성에 대해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길 바랐다. 아이를 여행에 동참시키기 위해 그다지 애를 쓸 필요는 없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충분했다.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고 얼마나 오랫동안 지낼 수 있을까? 그리고 말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생각을 전할 수 있을까?”
미끼를 덥석 문 아이는 일주일도 문제없이 지낼 수 있으며 표정이나 손짓, 발짓, 몸짓으로 대화가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나는 그렇다면 단 하루만이라도 그럴 수 있는지 확인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아이는 좋다고 승낙을 했고, 이 괴상한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단풍 성수기가 끝나 호젓하기 짝이 없는 강원도 횡성의 청태산자연휴양림에서 1박2일 동안 이 실험을 진행하기로 했다.
침묵여행의 규칙은 간단했다. 단 하나만 지키면 됐다. ‘절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이는 검은색 테이프를 잘라 'X'자로 붙인 하얀색 마스크를 착용했다. 말 할 수 없는 처지라는 점을 이 여행 내내 잊지 말라는 의미였다. 가을을 떠나보내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입실시간에 맞춰 휴양림에 도착한 우리는 간단히 짐을 풀고 곧바로 실험을 개시했다. 나는 관찰일지를 쓰기 위해 수첩을 펼쳤다.
처음만 하더라도 아이에게는 이 또한 즐거운 놀이에 불과한 듯 보였다. 아주 신이 나 있었다. 다락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 중간쯤에 걸터앉아 책을 읽던 아이는 물어볼 게 생겼는지 발뒤꿈치로 계단을 쿵쿵 구르며 신호를 보냈다. 나는 눈길도 주지 않다가 도무지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기에 아이에게 다가가서 확실히 말해두었다.
“이야기를 할 때는 용무를 가진 사람이 움직이는 거야. 누군가를 오라 가라 불러선 안 돼. 알겠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다락에서 놀아도 되는지를 물어보려 했다. 집게손가락으로 다락을 가리키며 두 발로 폴짝 뛰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왜 그랬을까? 아이는 자신이 표현했듯 정말로 다락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놀았다. 그럴 때마다 집이 쿵쿵 울렸다. 목조주택이라서 우리가 묵는 곳뿐만 아니라 건물 전체에 충격이 전달됐다. 나는 황급히 다락으로 올라가 아이를 제지했다. 나는 다락에서 놀아도 상관없다고 허락했다가 이내 그만하라고 할 수밖에 없는 점을 조근조근 설명한 후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아이는 실망이 컸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위로할 목적으로 나는 숲 산책을 가자고 꼬드겼다. 어느새 비는 멎어 있었다.
우리는 숲으로 나갔다. 아이는 숲에서 자주 가슴을 치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산책하다가 만나게 되는 나무들의 이름도 알고 싶고, 그것에 둥지를 튼 새들의 이름도 알고 싶은데 그때마다 나를 부를 수 없으니 오죽 했을까. 아이는 손짓 발짓 다 동원하다가 급기야는 나무막대기를 주워든 후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생각을 표현했다.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으로 정확히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아이는 무던히 애를 썼다.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을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벌이던 어제의 아이가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놀랄만한 변화 한 가지가 눈에 띄었다. 대화를 할 때 서로의 눈을 보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아이는 자신의 표현을 이해하는지 내 눈을 보면서 확인했다. 그리고 내 말을 끝까지 듣고 나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소통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화 하나하나가 참으로 귀하게 오갔다.
한참을 숲에서 놀던 우리는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쉴 겸 TV를 켰다. 가면을 쓰고서 노래대결을 하는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혹시 농인들이 말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듣지도 못 하는 것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농인들의 심정을 함께 느껴보는 의미에서 소리를 완전히 소거해보는 것은 어떠냐고 동의를 구했다. 아이는 두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였다. ‘목소리만으로 승부하는 편견과의 전쟁’을 우리는 자막만으로 보았다. 소리를 살려서 TV를 시청할 때는 몰랐는데, 소리를 없애자 평소 자막에 너무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막은 결코 진실하게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다. 감탄사와 자극적인 말이 난무했으며, 완전히 의도된 방향으로 시청자들을 이끌고 있었다. 노래를 들을 수 없음에도 자막이 시키는 대로 환호하며 감동하게 될 지경이었다. 그로 인한 거북함과는 별개로 노랫소리가 정말로 궁금하긴 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음성과 선율이기에 그걸 듣는 관객들의 표정이 저리도 행복해 보일까?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었던 우리는 진심으로 관객들이 부러웠다.
우리의 실험은 저녁식사 후 함께 한 보드게임 도중 잠시 중단되었다. 게임 중에 빨리빨리 의사를 전달하고 싶은데 맘처럼 안 되자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입이 봉인 된 아이를 배려하면서 게임의 속도를 느리게 조절했어야 했는데, 생각이 부족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은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일어난다.
게임이 끝난 후 우리는 밤 10시가 다 되어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하늘로 뚫린 창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그 아래 나란히 누웠다. 별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달이 너무 밝아서 별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달빛이 우련하게 비치는 천장을 무대 삼아서 그림자놀이를 했다. 그림자놀이에는 말이 필요치 않았다. 그림자의 움직임과 모양으로 상황을 전하면 되기 때문이다. 각자의 손을 이용해 아이는 토끼를 만들고 나는 그 토끼를 사냥하는 개를 만들었다. 평화롭게 놀던 토끼는 갑자기 나타난 개 때문에 화들짝 놀랐다. 축 늘어뜨렸던 귀를 쫑긋 세우더니 개가 슬며시 조금씩 다가가자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쳤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졌다. 그렇게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달빛이 갑자기 사라졌다.
“달이 저물었나보다. 그렇다면 이제 별의 시간이 열릴 거야.”
하지만 웬걸 달이 진 게 아니라 바람이 비구름을 몰고 와서 덮어버린 것이었다. 창밖을 보니 나무들이 격렬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후드득’ 빗방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작은 빗방울들이 지붕을 때리며 들려주는 음악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빗방울들은 이따금씩 여유롭게 지붕을 노크하다가 느닷없이 우르르 달려들어 사정없이 두드려대는 등 다채롭게 곡을 연주했다.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이 객원 연주자로 찬조출연해서 긴장감을 불어넣는 등 곡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내 팔을 베고 누워있던 아이는 그 연주를 자장가 삼아 새근새근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아이는 굉장히 낯선 상황 속에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말을 하느라 무척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그런 아이를 보니 대견스러운 한편으로 안쓰러웠다. 이쯤이면 이 실험을 종료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팔을 가슴 쪽으로 당겨 아이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리고 자고 있는 아이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고생했다. 얘야.”
곤히 자는 아이가 듣지는 못 했겠지만, 내 마음만은 서로 맞닿은 가슴에서 가슴으로 충분히 전해졌으리라.
이튿날 아이는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마법에서 풀린 신데렐라처럼 예의 그 수다쟁이의 옷을 다시 입었다. 하지만 전날 그랬던 것처럼 할 이야기가 생기면 꼭 앞에 와서 얼굴을 마주한 상태로 했고, 상대방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말의 무게도 달라졌다. 꼭 필요한 말을 알아듣기 쉽게 했다. 대화의 기본 예의를 누가 교육하지 않아도 터득하게 된 것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아이는 농인과 수화에 대해 궁금해 했다. 나는 그 개념을 이해하기 쉽도록 말해 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수화교습서도 한 권 구입했다.
사람들은 보통 보지 못 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불행하게 여기면서도 듣지 못 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 듣지 못 하는 것은 보지 못 하는 것 이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선천적인 농인은 특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는 이상 대여섯 살 때까지 겨우 50~60개의 단어밖에 배우지 못 하는 반면 귀가 들리는 아이들은 평균적으로 3,000개의 단어를 습득한다(올리버 색스, 『목소리를 보았네』, 알마, 김승욱 옮김(2012), p.105)고 한다. 한 번 벌어진 차이는 줄어들기보다 갈수록 벌어지게 된다. 세상과의 교류는 언어를 통해서 이루어는 법이다. 그런데 이처럼 언어적으로 취약한 농인들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자신의 지적능력과 무관하게 바보 취급을 당해왔다. 이 같은 사정을 이야기해주자 아이는 그것이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 했다. 동시에 아이는 자신이 듣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을 정말로 감사하게 여겼다.
침묵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몇 달 후 아내와 나는 아이로부터 깜짝 선물을 받았다. 아이는 내가 사준 책으로 혼자서 수화표현을 익히며 관심이 일회적이지 않음을 보여주더니, 어느 날 인터넷상에서 수화노래를 배워서는 아내와 나를 앉혀두고 공연을 했다. 서툴기는 해도 그걸 준비하기까지 들였을 노력을 생각하니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문득 외롭다고 느낄 땐 하늘을 봐요. 같은 태양 아래 있어요. 우린 하나예요. ……혼자선 이룰 수 없죠. 세상 무엇도. 마주 잡은 두 손으로 사랑을 키워요. 함께 있기에 아름다운 안개꽃처럼 서로를 곱게 감싸줘요 모두 여기 모여…….”
여행 실행을 위한 간단 tip.
여행 목적은?/ 말하기에 앞서 듣는 것의 중요성과 말하고 듣는 것의 고마움 깨우치기.
어디로 갈까?/ 굳이 집을 떠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실험이지만, 가능하면 익숙하지 않은 어딘가에서 실험을 해보자.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더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완벽히 낯선 곳에서 아무에게도 의지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그것이다.
어떻게 할까?/ 장난처럼 웃으며 시작하지만 결코 지키기 쉽지 않은 게 침묵하기다. 그러나 침묵의 의미를 제대로 가르쳐주고 싶다면 엄격하게 실험을 진행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