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너머 어딘가
하늘은 푸르고
당신이 감히 꿈꾸는 것들이
이루어지는 곳
- 영화 <오즈의 마법사> o.s.t. ‘Over the Rainbow’.
워즈워스의 시처럼 나는 아직도 무지개만 보면 가슴이 뛴다. 어른인 내가 그럴진대 하물며 어린 내 딸은 어떨까? 그런데 아이는 여태 무지개를 직접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단지 그림책에서 보아 그 존재를 알 뿐이었다. 아, 불쌍하기도 하지. 나는 그런 아이에게 ‘진짜’ 무지개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다고 해도 말만은 함부로 하면 안 되는데 어쩌자고 그랬을까? 기상청에서 장마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예보하던 초여름의 어느 날, 나는 아이에게 한 가지 약속을 덜컥 하고 말았다.
“아빠가 이번 여름에 반드시 무지개를 보여줄게.”
말을 하고 나니 눈앞이 캄캄했다. 과연 무지개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가뜩이나 근래에는 미세먼지 탓에 무지개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무지개는 햇빛이 공기 중의 물방울을 투과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비온 뒤 반짝 갠 하늘에서 무지개가 자주 관측되는 이유다. 그런데 대기가 탁하면 무지개 또한 그 색깔의 선명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하늘에 무지개가 떠 있다 한들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기상청이 1974년부터 2009년까지 36년 동안 전국 13개 지역의 무지개 발생 횟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갈수록 무지개를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80년대 256회 발생했던 무지개가 2000년대에는 171회로 줄었다.
상황이 이런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약속을 했을까? 그렇지만 뭐라도 해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나는 아이에게 무지개는 비가 내리다가 홀연히 하늘이 맑게 갤 때 자주 나타나니 그런 날을 노려야 한다고 일러두었다. 우리는 잠시 장마가 소강상태를 보일라치면 습관처럼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살폈다.
그러나 집밖은 빌딩숲, 보이는 하늘보다 가려진 하늘이 훨씬 더 넓었다. 자신이 지금 서 있는 바로 그곳이 하늘의 크기를 결정하는 법. 빌딩숲에서는 공터의 크기가 하늘의 크기다. 나를 둘러싼 빌딩들이 딱 그만큼만 하늘을 오려서 보여준다. 빌딩숲에 있으면 내가 갖지 못한 타인의 하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 겨우 손바닥만 한 하늘의 그물에 눈 먼 물고기처럼 운 좋게 걸려들지 않는 이상, 무지개를 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물에서 나가야 우물 밖이 보이겠지? 여길 벗어나서 어디든 탁 트인 곳으로 가보자.”
“그 사이에 무지개가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해요?”
생각해보니 그렇다. 해결해야 할 숙제만 하나 더 늘었다. 궁리 끝에 우리는 비가 그치기 전에 무지개를 관측하기 좋은 곳으로 먼저 이동하자고 뜻을 모았다. 우리는 하늘을 유심히 관찰했다. 곧 그칠 비인지 하늘을 보며 판단했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하늘이 환하고 햇빛이 언뜻언뜻 비추면 얼마 안 있어 갤 확률이 크다는 걸 우리는 알게 됐다. 스칸디나비아 지역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나쁜 옷차림이 있을 뿐, 나쁜 날씨란 없다.” 우리는 자동차 트렁크에 우산과 우의, 장화, 보온을 위한 점퍼, 젖으면 갈아입을 여벌의 옷 등을 항상 비치해놓고 비를 기다렸다.
일기예보가 맞지 않을 때도 있었고 하늘을 읽는 우리의 능력이 선무당 같아서 헛걸음을 할 때도 많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우중여행도 충분히 운치가 있었다. 비 내리는 한적한 바다, 촉촉이 젖어서 더욱 선명한 초록으로 빛나는 들판, 고고한 연꽃조차 처량하게 고개를 늘어뜨린 연밭 등 저마다 매력이 있었다. 아이는 빗방울이 바닷물에 그리는 그림을 좋아했다. 발목이 겨우 잠길락 말락 한 얕고 투명하고 고요한 수면에 빗방울들이 그림을 그릴 때면 발이 시리지도 않은지 그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벼가 쑥쑥 자라는 초록 들판에서는 둑방을 오가며 벼 이파리에 매달린 물방울 털기 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아이는 특히 연밭을 맘에 들어 했다. 우리는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에 자리한 관곡지를 자주 찾았다. 조선 세조 때 만들어진 연밭으로 무려 22만㎡에 이를 정도로 광활했다. 아이는 빗방울이 연잎을 악기 삼아서 연주하는 음악을 사랑했다. 연잎 우산을 쓰고 방죽에서 놀며 행복해 했다. 아이는 방죽에서 발레리나가 되어 우아한 춤을 추기도 했다. 연잎우산과 방죽은 훌륭한 소품과 무대가 되어 주었다.
사실 우리는 조금 의기소침해 있었다. 장마가 끝날 때까지 최소한 10번은 무지개를 찾아 떠났는데,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기가 부끄러웠다. 장마가 끝나자 불볕더위가 찾아왔고, 온 나라가 찜통이 되었다. 무지개는 고사하고 더위라도 식혀줄 한줄기 소나기가 그리웠다. 그 힘든 시간을 견디자 게릴라성호우가 쏟아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우리로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 긴장을 하며 날씨를 챙겼다. 그런데 게릴라성호우라는 게 문제였다. 예고를 하고 비를 뿌리지 않았다. 기상캐스터들은 이미 벌어진 공연을 리뷰하기에 바빴다. 운명의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비소식이라고는 듣지도 못 했는데, 인천과 시흥 방면에 한 차례 큰 비가 내렸다고 했다. 뒤늦은 예보 탓을 하며 실망하고 있는데, 아이가 그래도 한 번 가보자고 오히려 제안했다. 하늘이 수상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빠, 연꽃밭 있는 데가 저쪽 맞죠? 비가 오는 것 아닐까요? 구름이 까매요.”
“가봐야 별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벌써 그 쪽에는 비가 그쳤다던데.”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한 번 가 봐요. 네?”
나는 아이의 성화에 마지못해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웬걸 날씨가 정말로 심상찮았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구름이 흘렀다. 한순간 하늘이 파래졌다가 어느 한순간 구름으로 뒤덮였다. 구름을 순식간에 이동시키는 그 거센 바람으로 인해 지상에 뿌리를 박은 풀과 나무들이 금방이라도 뽑힐 것처럼 흔들거렸다. 그렇지만 제법 오랫동안 기다렸음에도 비는 내리지 않았다.
“괜한 기대감을 품었네. 오늘도 헛걸음이구나.”
그런데 시무룩해진 아이를 다독이며 다시금 집으로 돌아가려던 바로 그때,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점점 굵어졌다. 바람이 그 빗방울을 종잡을 수 없게 흩뿌렸다. 한 방향으로 내려야 우산으로 비를 가릴 텐데, 그런 바람 속에서는 우산을 쓰나 안 쓰나 똑같았다. 우리는 우의마저 꺼내 입었다. 놀라운 점은 그렇게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서쪽 하늘에서 해가 비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속으로 ‘혹시 오늘이라면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무지개가 나타날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내리는 비와 햇빛, 그리고 이미 내린 비로 청정해진 공기까지 완벽 그 자체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날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무지개를 만났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개짜리 쌍무지개.
“와, 저게 무지개예요? 진짜 무지개? 그런데 두 개네? 어디 숨었다가 나타난 걸까요?”
생애 처음으로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본 아이는 숨도 쉬지 않고 질문보따리를 풀었다. 나는 아이에게 무지개가 무엇이며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꾸밈없이 말해주었다. 어떤 이는 동심을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끔하게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과학이 동심을 파괴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어설피 아는 사람만이 경외감을 섣불리 지워버린다. 깊이 파고드는 사람은 자연의 자그마한 변화 하나까지도 경외감을 가지고 바라본다. 그것이 불러올 나비효과 또는 그것을 불러온 나비의 첫 날갯짓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과학적 경외감은 동심이 품었던 경외감의 자리를 대체한다.
나는 무지개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을 해주면서도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전쟁과 굶주림, 차별, 기만, 부패 따위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사랑만이 가득한 아름다운 세계가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노라 아이에게 말했다. 나는 환상에 의지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무지개 너머를 꿈꾸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 세계를 꿈꿀 수조차 없다면 마음이 얼마나 삭막할까. 은폐된 저 침묵의 바다에서 힘 모아 진실을 건져 올릴 용기인들 날까. 언젠가 아이가 불러준 동요 중에 이런 소절이 있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마음으로 없는 길 가려하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
무지개 너머를 꿈꾸며 작은 힘이나마 보태다 보면 그런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 기적처럼 찾아올 거라고 확신한다.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살아갈 세계는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만약 때가 일러서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쌍무지개를 처음 본 날을 떠올리며, 아이가 또한 그 자녀와 무지개 너머를 꿈꾸길 진심으로 바란다.
여행 실행을 위한 간단 tip.
여행 목적은?/ 무지개가 보고 싶다면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뭔가를 원한다면 그걸 얻기 위해 움직여야만 한다는 사실 깨닫기.
어떻게 할까?/ 비가 내리다가 화창하게 갠 직후, 해가 비치는 반대편 하늘에 무지개가 뜬다. 게릴라성 호우가 빈번히 내리는 여름은 무지개를 관찰할 적기다. 대신 말 그대로 게릴라처럼 비를 잠깐 흩뿌리기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늘을 관찰해야 한다. 주변 지역에 비가 올 것 같으면 잽싸게 달려가야 한다. 일기예보는 비보다 늦기 일쑤다.
필요한 것은?/ 언제든 무지개를 찾아 떠날 수 있도록 우산, 우의, 장화, 보온을 위한 점퍼, 젖으면 갈아입을 여벌의 옷 등을 항상 자동차에 비치해놓고 비를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