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깔 달빛을 훔쳐 먹은 날

by 피터C

색깔은 세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있다

–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은 색이라는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색을 본다. 그런데 색을 반드시 눈으로만 봐야 할까? 색은 맛으로도 볼 수 있다.

빨간색은 새콤한 석류 맛, 연두색은 고소하면서도 떫은 첫물차 맛, 검회색은 아궁이에 덜 마른 불쏘시개를 넣었을 때 나는 매캐한 연기 맛이다. 하얀색은 짜디짠 소금 맛인 동시에 달콤한 블루베리 과분 맛, 보라색은 씁쓸한 라일락꽃 맛, 노란색은 시큼한 레몬 맛이다. 또한 노란색은 아이가 여섯 살 여름에 훔쳤던 달맞이꽃의 어떤 맛이기도 하다.

불볕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8월 초, 우리는 노란색 달맞이꽃을 따러 동강 변에 자리 잡은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거북마을로 향했다. 여름이면 시골 어디서나 흔히 보이는 게 달맞이꽃인데 굳이 특정 장소를 정해서 갔던 까닭은 따로 있다. 들꽃으로 차를 만드는 이가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1년 전, 나는 모 잡지 기고문 인터뷰 차 그곳을 찾았었다. 하룻밤을 묵으면서 깊은 대화를 나눴고, 갖가지 꽃차를 함께 마셨다. 그날은 보름달이 강변에 흐드러진 달맞이꽃을 비추고 있었다. 교교한 달빛에 빛나는 선명한 노란색 꽃이 무척 아름다웠다. 대화의 한 조각이 자연스럽게 달맞이꽃에 할애됐고 그것을 말려서 우려낸 차도 맛보았다. 나는 그 밤이 행복해서, 내년에는 꼭 가족과 방문하겠다고 얘기해 두었다. 아마도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는 식의 의례적인 말로 들렸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밤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계절이 한 바퀴를 돌아 달맞이꽃 피는 여름이 다시 왔다.

사진3.jpg 실제비쑥
사진4.jpg 칡꽃. 거북마을 주변에는 꽃차의 재료로 삼을 만한 꽃들이 아주 많다.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일곱 가구가 모여 살던 거북마을에는 현재 꽃차를 만드는 정용화 씨 가족 하나만 남았다. 그는 동생과 더불어 노모를 모시며 산다. 1991년 홍수예방과 상수원확보를 위한 동강댐 건설이 고시 되면서 거북마을은 부침을 겪었다. 수몰예정지였기 때문이다. 댐 건설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갈렸다. 하루라도 빨리 타지에 가서 정착하는 편이 낫다며 일찌감치 보상금을 받아 떠나는 쪽, 한 푼이라도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해 여기저기서 빚을 끌어다가 가지고 있는 땅마다 모조리 과실수를 심는 쪽. 정씨네는 그런 모습들을 덤덤히 지켜보며 살아왔던 대로 살아갔다.

사실 동강댐 건설은 논란거리가 많았던 사업이다. 예정대로 댐이 건설되면 동강이 빚은 보석 같은 풍경뿐만 아니라 부지기수로 분포한 고생대 화석과 천여 종에 달하는 희귀동식물이 사라지게 될 운명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댐 건설은 환경운동가들의 반대에 부딪혀 2000년 6월 백지화 되었다.

횡재수를 노렸던 이웃들마저 엄청난 빚을 진 채 떠난 후, 거북마을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돌보는 사람 없이 남겨진 땅은 잡초로 뒤덮였다. 몇 년이 지나자 그 땅은 밭이 아니라 황무지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어디서 씨앗들이 날아왔는지 철마다 다른 들꽃들이 피었다. 금은화, 꽃향유, 고마리, 칡꽃, 구절초, 실제비쑥, 달맞이꽃……. 용화 씨는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꽃들을 정성 들여 따서 곱게 말렸다. 그는 찔레꽃, 생강나무꽃, 단풍나무꽃, 복숭아꽃, 아까시꽃, 들장미꽃, 보리수꽃 등 주변의 흔한 나무에서도 꽃을 따서 말렸다. 한의사였던 할아버지를 어려서부터 도왔던 덕분에 식물의 약성과 독성에 대해 훤했던 그는 현호색과 철쭉처럼 먹어서는 안 되는 종을 빼고 주변에 널린 꽃들로 계절을 박제했다. 꽃은 찻잔 속에서 거짓말처럼 되살아났다. 마치 봄인 것처럼, 여름인 것처럼, 가을인 것처럼 뜨거운 물을 부으면 꽃잎이 마르기 전의 상태로 돌아왔다. 동시에 잠자던 향기도 깨어났다.

사진6.jpg 용화 씨가 다실로 우리를 초대해 그가 말린 다양한 꽃들로 차를 내려 주었다.

거북마을에 도착하고 나서 잠시 쉬고 있을 때, 용화 씨가 차나 한잔 하자며 우리를 그의 다실로 초대했다. 제법 좀이 쑤셨을 텐데, 어쩐 일인지 아이는 가만히 앉아서 차를 마셨다. 용화 씨가 풀어놓는 꽃에 얽힌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듣는 듯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아이는 꽃들이 찻잔에서 다시금 알록달록 피는 게 그저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새로운 차가 나올 때마다 실실거리며 손가락으로 찻잔에 떠 있는 꽃을 살짝 눌러보는 둥 저 나름으로 그 시간을 즐겼다. 그러던 아이가 무심코 재미있는 말을 했다. “색이 참 맛있다”는 것이었다.

‘꽃향유의 달면서도 매운맛, 고마리의 약한 신맛, 실제비쑥의 쓴맛을 정말 맛있다고 여기는 걸까? 맛이 실제로 그렇게 느껴지는데도 좋다고? 그리고 색은 눈으로 봐야 하는데, 입으로 먹는 게 아닌데…….’

그러나 따져보면 누구나 매일 색을 먹고 있다. 맹물 말고는 모두 색을 지닌 음식이다. 그것들의 맛으로도 색은 충분히 표현되고 구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 색이 내는 맛은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다. 특정 미각세포의 많고 적음에 따라, 어떤 맛에 얼마나 길들여져 있느냐에 따라, 당시의 기분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연령대도 맛에 대한 민감성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어른에 비해 아이가 더 많은 미뢰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여럿이 동시에 동일한 음식을 먹더라도 맛의 느낌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는 비단 미각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감각에 해당하는 것으로써, 대상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는 전적으로 각자에게 달려 있다.

설령 아이가 전혀 엉뚱한 맛을 갖다 붙이더라도 무슨 상관이람? 맛의 표준을 찾거나 색 분별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색이 어떤 식으로 기억되고, 어떤 감성을 불러일으키며, 어떤 존재의미를 지니느냐가 아닐까? 나는 문득 아이에게 색과 관련된 확실한 추억 하나를 만들어주고 싶어졌다. 우리 손으로 직접 노란 달맞이꽃을 따서 차를 우려 마시기로 한 것이다.

사진7.jpg 해가 지고 달이 떠야 피는 달맞이꽃

달맞이꽃은 달이 뜨는 저녁이 되어야 비로소 개화를 한다. 그래서 달맞이꽃이다. ‘월견초’, ‘월하향’, ‘야래향’ 등의 한자이름으로도 불린다. 생물이 24시간 주기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일주기성이라고 한다. 달맞이꽃처럼 독특한 개화 생체리듬을 가진 꽃들은 많다. 나팔꽃은 새벽 4시경 피고, 민들레는 아침 8시경 핀다. 벼꽃은 오전 10시경, 제비꽃은 정오경, 도라지는 오후 2~3시경, 박꽃은 오후 5~6시경에 핀다. 분류학의 아버지 칼 폰 린네는 일찍이 거대한 꽃시계를 고안해낸 바 있다. 꽃의 개화시간을 이용한 시계다. 원형으로 만든 화단을 시계처럼 12등분해 각 시간대마다 개화하는 꽃을 심었다. 화단에 무슨 꽃이 피었는지를 보고 시간을 가늠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계는 현재까지도 린네의 고국인 스웨덴 웁살라에서 작동되고 있다.

우리는 달맞이꽃이 개화하는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똑똑히 보았다. 용화 씨 덕분이었다.

“이건 여기까지 먼 길을 와준 꼬마친구를 위한 환영의 선물! 이 화병의 꽃들을 잘 지켜봐야 해. 알았지?”

그는 이렇게 말하며 달맞이꽃대 다섯 개가 든 자그마한 화병을 아이에게 건넸다. 때는 해가 거의 질 무렵이었다. 꽃봉오리만 잔뜩 달린 화병이라니. 솔직히 그게 무슨 선물인가 싶었다. 그런데 해가 지고 저녁이 찾아오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마치 슬로모션으로 재생한 영상처럼 꽃받침이 떨어지고, 꽃봉오리가 터지고, 꽃잎이 펴지는 개화의 과정이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약 10분만에 모든 일이 끝났다. 우리는 그 광경에 놀라서 한동안 말을 잃었다. 마법의 시간이 지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꽃잎은 모두 4장이었고, 그 낱장은 하트 모양을 하고 있었다. 달맞이꽃의 꽃말은 ‘기다림’이다. 달과 하트와 기다림. 만약 로맨스 소설을 쓴다면 이처럼 매력적인 소재를 찾기도 힘들지 않을까?

사진8.jpg 보름달밤 달맞이꽃밭을 산책하는 아이.

달맞이꽃이 펼쳐 보인 한 편의 아름다운 공연을 감상한 이후로 우리는 그 꽃에 그만 홀딱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달맞이꽃이 가득 핀 강변으로 향했다. 좁은 오솔길이 그곳으로 안내했다. 가로등은 없었지만 전혀 어둡지 않았다. 혼자 거북마을을 방문했던 밤처럼 강변으로 이어진 오솔길을 아이와 걷던 그 밤도 보름달로 환했다.

강변을 차지한 달맞이꽃 군락의 면적은 1년 전보다 훨씬 더 넓어져 있었다. 달맞이꽃만 좋아하는 누군가가 일부러 꾸민 화원처럼 다른 꽃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사실 그 이유는 햇빛쟁탈전에서 패배한 키 작은 꽃들이 짐을 싸들고 그곳을 떠나서였다.

1m가 훌쩍 넘는 긴 꽃대에 달린 달맞이꽃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늘하늘 춤을 추었다. 그 모습이 마치 노란 나비떼가 일제히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달맞이꽃밭 옆으로는 강물이 크게 수런거리며 흘렀다. 아이는 그 소리가 달맞이꽃 때문에 나는 것이라고 했다. 달맞이꽃이 춤을 출 때마다 감탄한 강물이 박수를 치는 소리라는 것이었다.

사진9.jpg 아이는 새벽잠을 쫓으며 페도라 가득 달맞이꽃을 땄다. 그 꽃으로 우리는 차를 내려 마셨다.

우리는 이튿날 새벽같이 일어나 달맞이꽃을 따러 또다시 강변으로 갔다. 달맞이꽃은 하룻밤 지나고 나면 시들해지다가 떨어진다.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싱싱한 꽃을 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아이를 깨우기는 어렵지 않았다. 야행성 곤충들이 잠을 자러 떠난 꽃밭에는 호박벌이 날아와서 열심히 화밀을 따먹고 있었다. 살찐 돼지처럼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코를 박고 게걸스럽게 화밀을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며 아이는 한참을 깔깔거렸다. 아이는 쓰고 있던 페도라를 벗은 다음 거기에 꽃을 가득 땄다. 꽃밭에서 노란 물이 조금씩 사라졌다. 우리는 색 도둑이었다.

우리는 훔쳐온 노란색을 한지가 깔린 원두막 평상 위에 펼쳐 널었다. 꽃잎에 묻은 이슬을 다시 공기 중으로 날려 보내고, 혹시 붙어왔을지 모를 벌레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꽃차를 정식으로 만들려면 제대로 건조해서 수분을 완전히 빼야 한다. 하지만 보관해 두었다가 마실 것이 아닌 이상,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깨끗한 꽃을 골라 차를 마시기로 했다. 용화 씨에게 잠시 다실을 빌린 우리는 그곳에 있는 하얀 찻잔에 꽃을 두세 송이씩 넣은 후 뜨거운 물을 약간 식혀서 부었다. 물이 너무 뜨거우면 꽃잎이 익어서 흐물흐물해진다. 적당히 따뜻한 물을 사용하면 꽃잎의 모양을 유지한 채로 그 색과 향을 우려낼 수 있다. 1년 전 혼자 찾았을 때와는 차맛이 달랐다. 갓 딴 꽃이어서 그런지 향이 월등히 뛰어났다. 맛도 조금 더 단 듯 했다. 그렇다고 들큼한 정도는 아니었다. 아이가 말했다.

“노란색은 달맞이꽃의 달빛 맛이에요.”

아, 그렇구나. 왜 맛을 달고, 짜고, 맵고, 쓰고, 시고, 떫다고만 해야 할까? 왜 그런 단어로 달맞이꽃의 색과 맛을 대체하려고만 했을까? 색과 맛에 대해 규범화 된 나와 규범화 되지 않는 아이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났다.

아이는 아마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달맞이꽃의 노란색을. 보름달밤의 정취와 새벽의 싱그러움과 그 공간을 흐르던 은은한 향기를.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달빛 맛을.



여행 실행을 위한 간단 tip.

여행 목적은?/ 색깔은 단순히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먹을 수도 있다. 생각을 비틀면 세상이 새롭고 즐겁다는 사실 깨닫기.

어디로 갈까?/ 달맞이꽃은 시골 들녘 어디나 아주 흔하다. 그게 달맞이꽃이라는 걸 모르고 지나칠 뿐. 그럼에도 거북마을을 추천하고 싶다. 동강을 낀 마을의 풍경이 그림 같아서.

언제 떠날까?/ 그 이름처럼 ‘달을 맞이하는 꽃’을 보며 제대로 감상에 젖고 싶다면 아무래도 달이 가장 밝은 보름 즈음이 좋지 않을까?

어떻게 할까?/ 굳이 달맞이꽃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꽃들로 차를 내리며 그 색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단, 그 꽃이 식용 가능한지 반드시 미리 확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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