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고장,보르도를 여행하다 2
사고 수습하며 같이 투어듣는 사람들끼리 통성명을 하는데 여기에도 한국분이! 싱가포르 친구분과 함께 오셨다고 했다. 이 여행으로 느낀건 생각보다 한국사람들이 정말 예상치 못한 곳까지 여행한다는 점이었다. 생떼밀리옹지역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포함되어 있어 와이너리뿐만아니라 수도원으로도 유명하다고 설명해주시면서 잠깐 자유시간을 주기도 했다.
내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와이너리는 굉장히 큰 통에 포도를 넣어두고 와인으로 숙성시키는데 놀랍게도 포도껍질을 벗기거나 으깨지도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둔다고 했다. (그당시 영어로 설명을 들었기에 나는 내가 들은게 맞는지 놀라서 몇번이고 문법을 파괴한 영어로 질문했었다.) 그랬더니 보통은 포도를 으깨고 압착해서 와인으로 만들지만 자신들의 와이너리에서는 있는 그대로 놔둠으로서 자연스럽게 포도가 가라앉으며 압착되는 형태로 와인을 만든다고 굉장히 자부심을 갖고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그 와이너리에서 나오는 와인들 중에 1등급 그랑 크뤼의 와인부터 보급형 와인들까지 쭉 다양하게 먹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알았다. 왜 ‘신의 물방울’에서 와인에서 초콜릿향이난다거나 꽃향기가난다거나 하는 와닿지도 않는 표현을 썼는지... 사실 만화 속 표현이다보니 당연히 과장이 좀 있겠지 라는 생각이었는데 가장 좋은 등급의 그랑크뤼 와인을 먹어보고 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정말 그 한모금에서 느껴지는 풍미가 너무 달랐다. (내심 그때 그 와인을 사오지 못한 가난한 내 지갑이 안타까울정도이다.) 그때 처음으로 와인에서 느껴지는 바닐라향과 과일향을 복합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감기때문에 코가 막힌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게 그 향을 느낄 수 있어서 굉장히 놀랐다.)이래서 이 와인이 비싼 값을 하는구나 하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말 소규모의 가족사업으로 소소하게 운영하는 와이너리에 갔다. 이 곳도 그랑크뤼급 와이너리인데 가족끼리 소규모로 운영중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와이너리를 소개하는 작은 공간으로 우리를 데려갔는데 마치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에 나오는 것처럼 정말 작은 와이너리였다. 옆에는 마구간이 있고 뒤에 뒷마당에는 작은 꽃들이 펴있는 아늑하고 포근한 공간이어서 이런 곳에서 나오는 와인은 따뜻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되는 그런 분위기였다. (실제로 이곳은 매해 적은 양의 와인만 생성되는데 그때 가장 좋은 등급의 와인은 코르크마개를 대신해 유리로 마개를 제작해 봉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 유리마개는 세상에 딱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간단하게 와이너리 소개를 마치고 시음하고 난 뒤 와이너리에서 기념품처럼 판매하는 100ml짜리와인이 있었는데 가이드분이 아까 사고로 너무 미안하다고 기념품이라며 사비로 하나씩 사주셨다. 우린 정말 괜찮았는데 가이드분이 더 놀라셨을테고 다치셨음에도 끝까지 우리가 혹시나 이 투어로 안좋은 추억을 가져갈까 걱정하시는 모습이 느껴졌다. (참고로 이 와인은...아까워서 마시지도 못하고 낑낑 앓다가 내가 어느날 와인이 너무 마시고 싶어서 열어서 마셨다;;아 그렇게 마시는게 아니었는데 ㅠㅠ) 암튼 작은 병에 담긴 소중한 와인을 끌어안고서 그렇게 투어는 종료되었다.
투어를 마치고 나는 이대로 숙소에 들어가기 아쉬워 의회광장 주변을 빙돌며 구경하다가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강변에 앉아 무작정 시간을 보냈다. 의회광장 앞에 분수가 있어서 시간대별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고 조금만 더 해가 지면 더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에 주저앉아 일기를 쓰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바로 앞에 흐르는 가논강에 강변을 따라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기에 치안또한 안전했었다. (그당시 쓴 일기장을 보면 약 3시간가량을 사진을 찍기위해 기다렸었다.) 그 다음날 보르도 기차역으로 이동하며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가논강을 보았는데 다음에 또 보르도에 가게된다면 며칠씩 시간을 보내고 싶을정도로 눈부셨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예약해둔 기차시간이 있기에 다음 장소로 이동을 위해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