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글로 반말로 진행되어 읽기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로 가장 적나라하고 솔직한 글을 위해 별도의 퇴고 없이 쓸 예정이며
그로 인해 불편한 소재나, 어휘, 어투가 있을 수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이어진 사건을 적기 전에도 놀랍게도 회피형 인간답게 앞선 첫 번째 사건을 회피하기 위해 제대로 적지 않으려 몇 차례 고민했다.
하지만 사실 알고 있다.
내가 고개를 돌린다고 해서 그것이 실존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결국 나는 내 첫 번째 회피의 역사를 마주했다.
사실 저 회피로 인해 좋았던 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다시없을 고등학생 때의 추억을 만들었고 좋은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마냥 내성적이었던 내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회피라는 건 다른 길로 가는 것이기에 무작정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문제는 이게 익숙해지면 꾸준히 하는 것의 성취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회피해서 좋았던 점만 바라보고 계속 미로를 방황하게 되니까. 출구가 바로 저 앞에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그 한 걸음을 못 견디고 그저 방황하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꾸준히 해본 뒤에 회피라는 선택지를 택해야 하는데 나는 늘 회피라는 선택지 하나만을 선택해 왔기에 아쉬운 점도 있다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이 아쉬운 점을 남은 삶동안은 좀 덜 남겨두고 싶어서 이 글을 쓰면서 직면하고 있는 것도 있다.
아무튼 이 회피의 역사에 불을 붙이게 된 계기는 바로 "친구의 죽음"이었다. 수능을 며칠 앞둔 날, 우연히 집 전화로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중학교 때 같이 학원을 다니고 중간, 기말을 준비하던 친구의 부고.
내가 직접적으로 아는 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그때 처음 들었다. 엄청 절친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간간이 소식은 듣던 친구였다. 사인은 질병으로 인한 사망. 서둘러 간 장례식장의 영정사진의 그 친구는 여전히 변함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듣게 된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내 휴대폰으로 그 친구가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도 보냈는데 받지 못했냐는 이야기.
그 당시 나는 이별의 후유증과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휴대폰을 과감히 없앴었다. 문제는 그 선택으로 나는 그 친구가 나에게 보낸 이젠 마지막이 되어버린 생일 축하 메시지를 영영 열어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수능날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친구도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을 텐데.'
'금방 나을 거라고 생각했던 질병이 악화되어 이렇게 될 줄 몰랐을 텐데.'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마냥 노력하는 게 맞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아직 어렸던 나는 그때 극단적인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다 부질없어. 중요한 건 현재야.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걸 하자.'
사실 이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막연한 미래를 위해 현재의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경계해야 하니까.
문제는 내가 이 생각을 회피하고 싶을 때마다 방패로 삼았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싫으면 '아, 내가 하고 싶은 거 아니라 그래.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러 가자.'라면서 사실은 견뎌야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지점에서 계단을 내려가길 반복했다.
그 덕이라고 해야할지 지금의 나는 다양한 분야에서 얕게 넓게 경험이나 지식을 갖게 되었지만 깊이있게 탐구하는 자세는 잃어버리게 되었다.
(너무 슬프지만 이게 사실이다. 이젠 숏츠와 릴스에 점철된 삶이 되어버렸다.)
무조건적으로 안좋은 이야기만 하면 나자신을 싫어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 다음 이야기는 회피해서 좋았던 점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