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피형 인간입니다.

1. 회피의 역사-1

by 아르몽

*개인적인 글로 반말로 진행되어 읽기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로 가장 적나라하고 솔직한 글을 위해 별도의 퇴고 없이 쓸 예정이며

그로 인해 불편한 소재나, 어휘, 어투가 있을 수 있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내가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내가 지독히도 회피형 인간이라는 걸 깨달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나는 내가 회피형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은 해야지 직성에 풀리는 성격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은 계기는 내가 한 회사에서 근무했을 당시였다.

나는 당시 한 회사를 다니며 프로젝트를 하나 진행중이었다. 그 당시 자발적으로 무수당 야근까지 자처할정도로 일 자체에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문제는 해당 프로젝트가 마무리 될 무렵 , 계약서상 특정 사유로 일부 금액을 거래처에 배상해야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다. 그 배상금을 피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때 무수당 야근 및 과도한 업무에 지친 두 신입이 회사를 그만두는 상황이 생겼다. 심지어 한 직원은 대표의 말도 안되는 폭언으로 너무 상처를 받았다며 그만두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 폭언의 내용은 듣자마자 나조차도 이것이 한 회사의 대표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싶었고 그런 사람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적고 나니 이전 브런치 글인 퇴사기록과 매우 비슷하네...참고로 전혀 다른 회사이다.)


주변에는 그 폭언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정의감에 찬 모습을 보였지만, 마음 한켠에 배상금을 무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없었다고 할 수 없었다. 물론 그 마저도 회피하려했지만 유난히도 짙은 그림자가 계속 마음 한 구석에 드리워져있었다.


눈에 밟히는 그 그림자는 결국 내가 회피형 성향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처음 알게된 나의 회피형 성향은 사실 내 인생 전반에 걸쳐 있었다.


나의 첫 회피의 역사는 고등학교 때이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2000년대에는 소위 말해 특목고 열풍이 불고 있었다.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은 모두 특목고를 지원하려했었고 그에 따라 초, 중학교때부터 내신을 준비하는 친구들, 각종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 영재원에 들어가 자소서를 채우려는 친구들도 많았다.

(물론 이제는 이보다도 더 일찍 준비를 해 7세고시 이런 것도 있다곤 하지만 나때는 저정도만 해도 조기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집의 다른 형제자매들에 비해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공부도 곧잘 쫓아갔던 나에게 특목고에 대한 기대가 몰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거기다가 형제가 많은 집에서 자란 나에겐 기대어린 시선과 관심이 기뻤기에 나는 기꺼이 특목고 입시를 위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나는 타고난 천재도 아니었고, 꾸준히 노력하는 범재도 아니었고 그저 관심이 좋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것이다.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당시 지역 내 유명 학원의 특목고 준비반까지 들어간 나였으나 진짜는 이길 수 없었다. 점차 벌어지는 친구들과의 격차에 학업에 대한 나의 흥미는 바닥까지 뚫고 갔고 그렇게 뚫은 굴은 다른 방향으로 넓게 퍼져나갔다.


그렇게 중3이 되고 그 당시의 성적이나 실력으로는 지원하려고 했던 특목고에 입학하기 어려워지자 다른 방향으로 파낸 굴들에 유난히 밝게 빛나는 보석이 숨어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다른 방향에 재능이 있을지 몰라."

"이것 봐. 이거는 이만큼이나 하잖아."

(그 굴들에서 이런 말을 속삭이는 기분이었다.)


물론 심리적으로 가장 예민한 청소년기이니 내가 남들만큼 노력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내가 전혀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리라. 게다가 그 당시 집안의 사정으로 인해 깊은 자기혐오가 깔려있어서 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나는 내가 파낸 다른 굴들 중 하나를 선택했고 그렇게 특목고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학을 결심했다.


이렇게 회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심지어 이 회피에 불을 붙이는 사건이 하나 발생하게 되는데...



작가의 이전글나는 회피형 인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