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C등급인 미화 20달러는 A등급인 미화 100달러에 비해 낮은 등급의 환율로 적용되는 것이다.
덧붙여 지갑에 의해 구겨진 미화 100달러는 보존이 잘 된 미화 50달러와 같은 B등급으로 환전이 된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도네시아의 환전 체계를 환전소에서 벌이는 사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에 직원과 꽤나 긴 말다툼을 했지만 뒤에 있던 한 여성 덕분에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녀는 인도네시아 정부에서는 루피아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서 자국 내에서 외국 통화 사용을 금지하고 모든 거래를 루피아로만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외국인에게는 불리한 환전이 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래나 저래나 이미 기분이 상한 탓에 씩씩거리며 백화점 출입구로 향했다. 이미 이곳에서 시간을 보낼 마음도 돈을 쓰기도 싫어진 상태였기 때문. 스스로 진정시키기 위해 이어폰을 귀에 꽂은 후, 목적지 없이 걸었고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풴디가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는 굉장히 혼잡한 도시였다. 여기저기서 부릉부릉 오토바이가 달리고 거리 곳곳에서는 핸드폰을 판매하거나 음식을 판매하는 노점상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의 교통질서는 그야말로 천국일 정도였다. 여기서 어떻게 사람들은 살아갈까라는 생각을 하던 와중 굉장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풍경을 마주했다. 한쪽은 높고 멋진 고층건물로 즐비하는 도시, 다른 한쪽은 낮고 무너질듯한 집들로 이루어진 빈민촌이었다.
“저기에는 누가 살까? 어떤 곳일까?”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그 마을로 발걸음의 방향을 바꾸었다. 태어나 처음 보는 비둘기집, 아무렇게나 널어놓은 빨래, 페인트가 벗겨진 벽 그리고 비교적 하얀 피부의 동양인을 궁금해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눈빛으로 거리를 메웠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무겁지 않은 분위기였는데 막상 걷다 보니 뭔가 위협을 당할 것 같은 두려움이 살짝 샘솟았다.
태연한 척, 아무렇지 않은 척, 강을 하나 두고 완전히 다른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 속에 걷다가 보니 마을과 마을 사이에 위치한 철길이 나타났다. 지나치려는 그 순간, 10살 남짓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문득, 개발도상국에서 구걸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계속 녀석을 피해 철길을 지나려고 하니 자꾸만 따라와서 길을 막았다.
"What's wrong?"
영어로 소통이 가능했던 풴디가 떠올라 꼬맹이에게도 영어로 말을 걸었다. 그러자 내 말을 이해한 건지 손가락으로 철길을 가리켰고 그 순간 칙칙폭폭 기차 소리가 들렸다. 그랬다. 꼬맹이는 기차가 곧 오는 시간이라는 걸 알고 혹시나 위험할까 봐 길을 막아섰던 거였다. 이곳에는 기차가 온다고 신호를 주는 경고음이나 안전장치가 없어서 분명히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자에게는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편향된 시각과 편견에 대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꼭 전달하고 싶었다. 짧은 고심 끝에 여행용 크로스백에 간식으로 넣어둔 사탕과 과자를 꼬맹이에게 꺼내 주었다.
어찌나 그 미소가 해맑은지.
더욱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는 으슥한 분위기인 이곳이
굉장히 신선하고 활기찬 동네로 보이기 시작했다. 노려본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활짝 웃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