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의 만남

Day(어느 하루)

by 권동환



“5시 정도에 만날까?”

인도네시아 여행의 출발점과도 같았던 풴디에게 연락을 했다. 태국에서의 짧은 인연이 SNS를 통해 이어져왔다. 특별히 관광요소가 없었던 자카르타가 지루했던 무렵에 연락한 터라 점심에 만나기를 원했지만 선약이 있다는 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숙소 주변에 있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자카르타의 번화가는 한국 못지않게 많이 발전해서 생활을 하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백화점에는 CGV부터 최신 오락시설 그리고 맛있는 한국 음식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런 익숙함때문에 자카르타의 생활이 지루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였을까? 길 건너편 ‘Nasi Goreng'이란 글자와 볶음밥 사진이 그려진 입간판이 갑자기 눈에 띄었다. 이미 여러 차례 갔었던 백화점보다는 길 건너의 입간판이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오토바이와 자동차를 피해 무사히 도착한 그곳은 허름한 식당이었다. 야외 정원에 놓인 의자에 앉은 뒤, 나시고랭을 핸드폰으로 검색해보았다. 풍기는 분위기에 이끌려 왔지만 막상 나시고랭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주문하기는 조금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시고랭이란 음식 후기는 어느 식당을 가든 실패하는 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메뉴판의 나시고랭 가격도 3000원 정도라 부담 없이 주문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시고랭을 주문한 뒤 나시고랭에 대해 검색했다. 놀랍게도 나시고랭은 천 년의 역사를 품고 있었다. 10세기 이후 인도네시아로 이주한 중국인들이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금세 쉬어버리는 밥을 보존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되는 요리였기 때문이다.

때마침 주문했던 나시고랭이 나왔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어느 동남아 국가의 볶음밥과 비슷했다. 각종 채소를 센 불에 볶은 뒤 익은 재료 속으로 찰기가 없는 쌀을 넣어 볶고 그 위에 반숙 계란, ‘크루푹’이라 불리는 새우칩, 채 썬 오이 그리고 토마토를 곁들여 먹기 때문이다. 허기졌던 만큼 듬뿍 숟가락으로 퍼서 한 입에 볶음밥을 넣자 약간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이 맛을 표현하는 케첩 마니스라는 소스가 나시고랭만이 가진 특별한 비법이었다. 나시고랭 속에 있는 육고기는 닭고기였는데 여기에도 인도네시아만의 문화가 담겨 있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로 볶음밥을 해 먹는 한국과 달리

이슬람 신자가 많은 인도네시아에서는

닭고기를 넣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었다.


나시고랭의 맛을 음미하던 도중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풴디에게 온 메시지였다.

“어디야? 나 지금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얼른 식사를 마친 뒤 그가 남긴 주소를 향해 택시를 타고 찾아갔다. 그곳은 아기자기한 카페였다.

“풴디!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당연하지! 너도 잘 지냈어? 인도네시아로 정말 여행 올 줄 몰랐는데, 이렇게 만나니까 반갑다!”

보름 만에 만난 사이지만 인도네시아라서 그런지 더욱 반가운 마음이 컸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땅에 친구가 있다는 것도 괜히 든든하기도 했다.

“그나저나 약속이 있다더니 어떻게 된 거야?”

“아~친구한테 핸드폰 공기계 받으려고 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이 늦는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다음에 만나자고 했지. 걔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지만 너는 자카르타를 떠나면 만나기 쉽지 않잖아.”

짜증 날 법도 한 상황인데 그의 얼굴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응? 약속 시간에 친구가 안 나왔다고?

무슨 일이 있대?”

“아니. 늘 있는 일이야. 원래 인도네시아에서는 약속 시간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 ”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으로서 굉장히 이해가 가지 않는 고무줄 문화였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문화구나. 신기하다. 한국에서는 약속에 늦는다는 건 무례한 행동이거든.”

“나도 알아. 한국 드라마를 보면 공통점이 약속 시간에 늦으면 사과를 하더라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늦더라도 사과하는 일이 없어.”


우리는 그렇게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의 문화 차이 그리고 그의 부대찌개 사업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대뜸 “배고프지? 밥 먹으러 가자.”라고 말했다.

디의 검은 승용차를 타고 어느 식당으로 향했다.

“내가 태국에서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을 맛 보여준다고 했지? 여기서 레이스타 펄을 주문해서 식사하자”

“레이스타펄? 그게 뭐야?”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잖아.

그때 네덜란드 사람들이 먹을 만한 것을 골라서 식사했는데 그 한 상차림을 레이스타펄이라고 불러.”


300개 이상의 민족이 모여 살다 보니 매일 다른 음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을 만큼 종류가 다양한 인도네시아에서는 레이스타펄이 가장 전통적인 식사였다. 아니나 다를까 흰 밥, 해산물 요리, 튀김 요리, 채소 그리고 다양한 소스가 테이블을 채웠다. 어떻게 이걸 먹을지 고민하다가 풴디의 행동을 관찰했다. 중앙에 놓인 요리를 개인 숟가락이 아닌 전용 숟가락을 사용해서 개인 접시에 덜었다. 인도네시아의 식사 예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와 마찬가지로 전용 숟가락을 통해 반찬을 덜고 식사를 했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야?”

식사를 마친 뒤 물 한 모금 마시며 풴디가 말했다.

“아직 계획이 없어. 인도네시아에 너무 아무런 계획이 없이 여행 온 것 같아. 보통 나는 여행을 와서 여기저기 둘러보는 걸 선호하는데, 자카르타는 쇼핑몰 이외에는 딱히 갈만한 곳이 없는 것 같아. 혹시 추천해줄 만한 여행지가 있어?”

자카르타에 대한 지루함을 솔직하게 표현한 뒤 진심 어린 추천을 그에게 물었다.

“음.. 족자카르타 어때?

그곳에는 세계 3대 불교 유적지인 보로부두르가 있어”

“오.. 세계 3대 불교 유적지.. 멋지겠다! 자카르타에서 많이 멀어?”

“기차 타고 10시간 정도 가면 도착해.”

“잉? 10시간이나? 굉장히 멀구나?”

“10시간이면 꽤 오랜 시간이지. 하지만 족자카르타 가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꼭 여행해봐.”

풴디와의 저녁 식사가 끝난 뒤 그는 자신의 승용차로 숙소까지 데려다주었다. 정말 착한 친구라는 게 느껴졌다. 연락을 무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단 하루의 우정이었는데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을 맛 보여주겠다는 약속까지 지키고 말이다. 그가 추천해준 족자카르타의 숙소를 예약하고 풴디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다.

“오늘 식사 너무 고마워. 한국에 놀러 온다면 꼭 부산 놀러 와. 그때는 내가 대접할게. 그리고 족자카르타로 떠나기로 결심했어. 가서 연락할게.

정말 고마웠어.”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에게 답장이 왔다.

“친구. 좋은 만남이었어. 나의 말 한마디로 인도네시아까지 여행 와줘서 고마웠어. 안전한 여행을 하길 바라. 그리고 잊지 마. 기차표 예약은 에어컨 있는 객실로 해.”



끝까지 친구를 걱정해주는 풴디의 마음은

포근한 잠자리의 따뜻함 같았다.


'맛있는 음식, 새로운 문화, 좋은 친구, 벅찬 결심'


의미 있는 시간은 오늘을 완벽하게 해 줬다.

하루를 안녕하며

시 떠날 설레는 내일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