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향하는 곳은 족자카르타의 보로부두르이다. 풴디의 추천으로 결심한 족자카르타 여행의 이유 9할은 이 보로부두르 사원이었다. 둥근 종 모양의 스투파 속에 단아하게 가부좌를 맺고 앉아 계시는 부처님을 SNS를 통해 봤기 때문이다. 2억 5000만 명에 달하는 인구의 대부분이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 국가인데 불교 유적지라.. 하루 다섯 번의 예배와 기도를 무슬림 속에서 피어난 불교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세계 7대 불가사의’.‘아시아 최초의 유네스코 등재’,‘세계 3대 불교 유적지’라는 거창한 호칭도 여행을 자극하는 요소가 되어줬다.
여느 사람 사는 곳과 특별히 다르지 않게 가게 오픈을 준비하는 사람, 신문을 배달하는 사람, 출근을 하는 사람들을 지나치며 도착한 보로부두르는 짙은 안갯속에 가려져 신비스러움이 가득했다. 오토바이를 주차한 뒤 매표소로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표를 구입했지만 입장 시간까지 조금 기다려야 했다. 마땅히 할 것도 없었기에 그냥 매표소에서 가져온 팸플릿을 펼쳤다. ‘언덕 위의 불탑’이라는 뜻을 가진 보로부두르는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다만, 750~860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조사되어 10세기까지 존재했었다. 그런데, 이 사원이 800년 동안 자취를 감췄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했던 활화산으로 알려진 므라피 화산이 분화해서 화산재가 보로부두르를 덮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세기 무렵, 보로부두르가 다시 뜨거운 햇살에 등장한 것은 한 영국인 덕분이었다. 바로 당시 인도네시아를 통치했던 싱가포르의 아버지이자 영국 총독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 경이다. 말레이 문화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던 그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보로부두루를 발굴한 것이었다.
보로부두르에 대한 과거를 조금이라도 알 때 즈음 사람들이 줄을 서서 출입을 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곤 후다닥 뛰어갔다. 매표소에서는 허리에 두르는 사롱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현지인과 외국인 간의 색깔에 차이가 있었다. 하나씩 무료로 제공되는 사롱은 떠나기 전에 반환해야 한다고 했다. 힌두사원이 아닌 불교사원임에도 사롱을 나눠주는 문화는 아마도 어떠한 신이든 항상 경건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그들만의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을 한 뒤, 길을 따라 걷자 안개에 서서히 걷혀가는 보로부두르를 마주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희미한 가운데 점점 갈수록 선명해져 가는 보로부두르는 웅장하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었다. 걸어 올라가는 것도 꽤 힘이 들었다. 규모가 엄청났기 때문에 가파른 계단을 한 발짝씩 내딛을 때마다 숨이 차올랐다. 계단에서 바라보는 조각들은 섬세함을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규모로 인해 풍기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만난 조각들은 정체 속의 아름다움으로 조화를 이루었다. 드디어 꼭대기에 도달해서 뒤를 돌아보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햇살이 퍼지는 가운데 피어오르는 아침 안개와 어우러진 종탑 속의 부처님을 바라보니 시선을 온통 빼앗겨버렸기 때문이다.
여행의 설렘으로 쿵쾅거리는 심장이 진정되자 두상이 절단되거나 코가 없는 부처님이 눈에 띄었다. 보로부두로에 있는 504개의 불상 중에서 35센트가량의 두상이 절단되었는데 이런 광경은 동남아로 진출을 시도한 네덜란드가 불상의 머리 부분을 불교 왕국인 태국의 왕에게 선물하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순레자들은 이곳에 찾아와서 스투파에 모셔진 부처님의 몸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고 있었다. 보로부두르에서 소원하는 기도는 언젠가 꼭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순례자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속세의 모든 허물이 정화되는 극락의 공간에서 나 역시 소원을 빌어보며 하루를 알리는 햇살을 만끽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