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날다

Great(최고의 순간)

by 권동환

‘흐흐흐흐’

난감한 상황 속에서 그저 웃었다. 여기서 웃음의 의미는 어이가 없는 상황 때문이다. 이곳은 띠망비치. 띠망비치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었던 런닝맨에서 연예인들이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방영된 장소다. 위험천만한 수동 목재 곤돌라를 탑승하는 게 그들의 미션이었다. 이곳의 명물인 수동 목재 곤돌라는 랍스터잡이 어부들이 건너편 섬으로 건너가 낚시를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요즘은 관광객들의 용기를 시험하는 장소로써 이 마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곤돌라를 꼭 한 번 타고 싶은 마음에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며 찾아왔다. 하지만 막상 파도가 치는 바다에 둥둥 떠있는 수동 목재 곤돌라를 보니 배가 살살 아팠고

화장실로 직행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던 것 같다. 이내 곧 긴장감보다도 더 큰 문제와 마주하게 되었다. 이곳이 인도네시아라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인도네시아 화장실에는 휴지가 없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곤 수도꼭지와 바가지뿐이었다. 인도네시아는 볼일을 본 뒤 바가지로 물을 받아 왼손으로 밑을 닦는 문화가 있다. 왜 휴지도 없고 하필 왼손일까?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종교와 관련이 있다.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에게 왼손은 더럽고 부정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왼손은 항상 청소를 하거나 밑 닦기 등 더러운 일을 할 때 쓴다고 한다. 오른손의 역할은 악수를 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사용한다고 한다. 이 나라의 특이한 문화라는 사실을 알고 항상 휴지를 챙겼는데 하필이면 띠망을 오는 길이 너무 더워서 땀을 닦는데 전부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자아와의 처절한 싸움 끝에 결국 굴복했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진 다음, 화장실에서 나오는 발걸음은 굉장히 무거웠다. ‘아무도 모를 거야’라는 스스로의 위로와 함께 마주한 띠망의 케이블카는 다시 자아와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그 흔한 구명조끼부터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는 수동 목재 곤돌라를 타려니 너무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타야 하나? 말아야 하나?

"relex~relex"

내 목숨줄을 쥐고 있는 사람의 한마디였다. 오직 인력에 의해서 움직이는 곤돌라에서만큼은 그들의 손은 신의 손길이었다. 후덜 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킨 뒤, 용기를 내어 수동 목재 곤돌라로 향했다. 흔들거리는 곤돌라를 탑승하자 발아래의 거친 파도에 그저 아슬아슬한 마음뿐.


드디어 출발. 운명의 끈을 놓자 시속 200km의 체감과 함께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잠시 뒤, 중간 지점을 지나자 ‘덜컹’하며 곤돌라가 주춤했다. 문득, ‘어? 무슨 문제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는 놀이기구와는 달리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심이 마음속에 커져만 갔다. 무슨 상황인지 확인해야만 했다. 그래서 고개를 뒤로 돌려 어떤 일이 펼쳐지고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상황은 이랬다. 대개 가벼운 사람이 탑승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곤돌라가 무리 없이 가지만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은 곤돌라가 중간 너머에서 멈추는 것이었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터질 듯이 빨갛게 부풀어 오른 사내의 표정은 일그러져있었다. 미안한 마음과 무거운 체중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소녀처럼 ‘꺄아악’ 소리를 지른 부끄러움 또한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한 표정을 지은 채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낼수록 어떻게 파도가 이렇게 역동적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특히, 케이블카 이외에 이곳의 또 다른 이동수단인 흔들 다리는 자연이 살아있음을 실감케 해주었다. 흔들 다리에 한 발을 내딛자마자 발아래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금세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파도가 겁나서인지 띠망이 아름다워서인지 돌아가지 않고 한참을 그곳에서 머물렀다.

해가 질 무렵까지 말이다.



노을은 정말 수상한 녀석이란 생각을 했다. 언제 어디서 만나든 반갑지만 때로는 감정을 이리저리 흔들어놓기 때문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빨간 참숯불을 하늘에 부어놓은 듯한 노을을 바라봄으로 인해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상상하게 해 준다.

먼 훗날, 띠망해변에서의 시간이 생생하게 떠오를 날이 올 때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라는

사소한 넋두리 말이다.

여행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휴지가 없는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이거나 안전장치가 없는 수동 곤돌라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까지 말이다.

띠망의 노을 곁에서 그렇게 한참을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