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을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루브르 박물관과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5대 박물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대만의 고궁 박물관이 대표적이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이곳은 중국 모든 역사를 품고 있다. 약 70만 점의 엄청난 양의 유물은 3~6개월마다 순환되고 있는데, 모든 유물을 보려면 20년이란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어떻게 중국이 아닌 대만에 수많은 문화재가 있을 수 있었을까? 그건 대만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제스의 역할이 아주 컸다. 그는 외국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사람인만큼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아주 깊은 위인이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지원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고궁 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 추이위바이차이
그가 대륙에서 바다 건너 가지고 온 문화재들이 보관된 고궁 박물관은 얼핏 보면 화려한 궁궐처럼 보인다. 하지만, 타이페이에는 왕조의 수도가 없었기 때문에 궁궐이 없다는 신기한 사실!
그렇다면, 전통 있는 중국 본토의 역사와 달리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타이페이에서 도대체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걸까?
17세기부터 유입된 한족들이 강을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하며 무역항으로 타이페이는 번성했지만 대만의 제1의 도시가 된 것은 150년도 되지 않았다.
14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곳의 100년 전 모습은 어땠을까? 그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서는 ‘싼샤 라오제’를 찾아가야 했다.
무려, 청나라 시절에 조성된 싼샤 라오제는 대만을 대표하는 옛날 거리 풍경을 품고 있다. 싼샤 라오제는 바로크 양식의 지붕을 얹은 붉은 벽돌 건물들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질서 있게 건물이 늘어선 풍경이 아주 고풍스럽다. 이색적인 분위기 덕분에 이곳은 대만의 영화와 드라마 단골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을 걷다 보면 특이한 점을 찾을 수 있었다. 활처럼 길이 곡선으로 뻗었기 때문이다. 청나라 시절, 도둑을 방지하기 위해 번화가와 시장 거리는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100여 개의 상점들은 여전히 바쁘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전통 소품과 전통차, 기념품, 먹거리들이 판매되고 있는데 ‘찐니우자오’라는 황소 뿔 모양의 빵이 눈에 띄었다.
‘찐니우자오’와 함께 이동한 곳은 5km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잉꺼라는 도자기 마을이다. 이곳도 대만의 전통과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옛 거리 중 하나다. 한국인에게 덜 알려진 이곳은 중국과 일본의 중간 언저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야자수 나무들이 길게 늘어선 잉꺼 도자기 마을은 1920년에 형성된 마을이다. 양질의 점토가 많이 생산되어 가마를 만들어 도기를 만들기 좋았기 때문에 현재 도자기 관련된 공장과 상점이 2000개가 넘는다.
중국을 넘어 전 세계의 도자기 문화를 이끌고 있는 잉꺼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싼샤 라오제 그리고 고궁 박물관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것보다는 옛 것을 존중하는 대만 사람들의 자세였다. 대만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물론, 일본의 영향도 받았다. 하지만,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만의 전통과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었다. 유명 관광지 속에서 살펴본 ‘옛 것을 존중하는 자세’는 문화유산에 가치를 부여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