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적인 지우펀, 소녀가 된 나

Great(최고의 순간)

by 권동환

어린 시절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한 때는 만화가를 꿈꿀 정도였다.

그림 그리는 게 좋았고 주인공들이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이 너무 흥미진진했다.

그런 마음을 휘어잡은 만화가 존재했다.

지브리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다.

성인이 돼서도 지브리에 대한 사랑은 포기할 수 없었다.

감성을 자극한다고 해야 하나?

만화 속 풍경에 매료되어서 그런가?

한 번씩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이 만화를 좋아하냐는 곱지 못한 시선들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만화를 좋아하는 감정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어딘가 이 마음을 풀어야만 했다.

바로,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실제 배경지를 여행하는 것이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지였던 프랑스의 콜마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도고 온천,

‘모노노케 히메’의 야쿠시마 섬,

‘마녀 배달부 키키’의 스웨덴 스톡홀름까지.

지브리에 대한 사랑을 여행으로 표현했다.

그런 이유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지 중 하나인 대만의 지우펀으로 향하는 길은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타이페이에서 지우펀으로 향하는 길은 지하철과 버스를 환승해야 했다.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창밖의 햇살이 동화 속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막상 도착한 지우펀은 사람들로 너무 가득했고 한가롭게 여행하고 싶은

나에게는 지치는 이유가 되었다.

동화 속 감정을 유지하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인파가 많은 지우펀 골목길이 아닌 한산한 마을로 방향을 바꿨다.

선택이 옳았다.

담쟁이넝쿨에 안겨있는 계단과 푸른 바다와 하늘이 한눈에 보이는 낡은 주택가는

온도 99도만큼 동심을 끓게 해 줬다.

얼마나 머물렀는지 모르겠다.

이어폰을 꽂고 지브리의 주제곡들을 들으며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무렵은 늦은 오후였다.

“아!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돼”

속으로 외쳤다.

지우펀의 붉은 홍등과 노을을 봐야 했기 때문에 전망 좋은 어느 카페로 급하게 이동했다.

테라스에 앉아 크로스백에 넣어둔 책을 꺼내었다.

책의 제목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노을이 지기 전까지 조금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간만의 독서지만 이 시간 자체가 굉장히 감성적이었다. 순수해지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지, 낭만적인 기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뭔가 설레는 감정이 지속적으로 느껴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공통점이다.

소녀들이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 속에서 신비로운 매일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예스러움이 가득한 지우펀을 바라볼 수 있는 카페에서 머무는 시간이 그러했다.

저물어가는 노을과 피어오르는 달빛 속에서 나는 신비로움 속의 소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훗날, 맑은 감성의 싹을 틔어준 지우펀을 떠올리는 순간마다 다시 소녀가 되고 싶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