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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동환 Jan 04. 2023

여기는 어딜까?

속전속결

여행을 너무 많이 다녔는지 가끔 여행 중 잠에서 깨어나면  "도대체 이곳이 어디였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했다. 나의 여행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속전속결'이었다. 마치 나라를 점령하기 위한 장군처럼 도시 하나하나를 빠르게 정복하며 여행을 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수박 겉핥기식 여행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핑계를 대보자면 3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7년간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에서 살았던 경험이다. 학창 시절을 온타리오에서 거주했다 보니 한 곳에 머무는 여행방식을 기피했다. 아마도 어린 나이에 혼자 외국 생활을 버티며 살았던 기억 때문이었던 것 같다.  두 번째는 어린 시절 버킷리스트가 자전거 타고 유럽일주였다. 그래서, 얼마나 멋질지도 모를 다음 여행지를 미뤄두며 주저앉고 싶지 않았다. 그런 마음가짐 덕분에 유럽을 넘어,  60개국을 여행할 수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두 번째 이유와 연관이 깊다. 그것은 '도서'를 통해 나만의 기록을 꼭 남기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여행 사진과 여행 콘텐츠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기 때문에 항상 나의 여행은 '속전속결'일 수밖에 없었다.


뜨거웠던 여행에 대한 열정이 식기 시작한 것은 점차 건강이 나빠지면서였다. 겨우 서른 초반이지만 통풍과 고혈압 그리고 허리디스크를 품은 질병덩어리가 되었다. 코로나도 한몫했다. 애초에 계획하고 있던 아메리카 대륙 일주를 잠정 보류하게 했고 덕분에 회사생활과 기고문 같은 부업을 하며 살이 포동포동 쪘고 건강은 악화되었다. 참을 수 없었다. 여전히 여행에 대한 애착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던 업무들을 하나씩 포기하며 건강을 되찾기로 결심했다.

포기한 업무 중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경북문화관광공사에 기고하던 에세이도 회사생활도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활동했던 라디오방송이었다.  당시, 매주 경남교통방송에서 세계 여행지와 문화를 소개하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방송을 그만두기로 협의한 2022년 4월 무렵, 태국의 송크란이란 문화와 음식 그리고 관광지를 소개한 기억이 떠오른다. 청취자의 따뜻한 응원메시지와 진행자님 그리고 피디님과의 작별인사는 다시 돌이켜봐도 아쉬움과 고마움 때문이다. 그 후, 점차 건강은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다이어트로 30킬로가량 살을 뺀 것도 컸지만 무엇보다 느긋한 생활 덕분에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예전처럼 여행에 대한 열정의 불꽃이 다시 활활 타오르지 않았다. '속전속결'보다는 그저 한 나라에 머무르며 구석구석 둘러보고 싶었다.  예전처럼 미친 듯이 질주하는 여행보다는 느긋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여행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현실은 코로나 때문에 출국을 하기 쉽지 않았다. 정말 떠나고 싶지만 갈 수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때마침,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2022년 7월 1일부터 외국인에 대한 타일랜드 패스 등록 제도와 1만 달러의 의료 보험 요건 없이 백신 접종 완료 증명서 혹은 72시간 이내의 pcr 음성결과 확인서만으로도 입국이 가능해진 것이다. 2년 이상 미뤄진 세계 여행을 다시 떠날 타이밍이 지금이라는 판단과 함께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그렇게 나는 4년 만에 다시 태국으로 향했고 나의 아침은 방콕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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