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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동환 Jan 04. 2023

3번째 찾은 방콕

협상 무기

60개국을 여행하면서 3번 이상 방문한 도시는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 캐나다의 토론토, 프랑스의 파리, 체코의 프라하,  일본의 후쿠오카 그리고 2022년 7월에 도착한 태국의 방콕. 3번 이상 방문한 5번째 나라라는 것은 나에게 아주 큰 의미다. 두 번 다시 가기 싫은 도시도 있는 반면에 거리 혹은 상황 때문에 다시 갈 수 없는 그런 나라가 나에겐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방콕 공항에 도착은 반가움과 설렘이 동반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반가운 마음은  더위라는 잔혹한 녀석에게 삼켜져 갔다.

곧바로, 다음 문제가 생겼다. 도착시간이 새벽이었기 때문에 숙소로 갈 수 있는 교통은 유일하게 택시뿐이었다. 동남아 여행 경험자들이 잘 알다시피 그들은 미터기보다는 흥정을 유도했다. 그것도 2배 비싼 가격으로.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완벽한 진퇴양난.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이 여행가에서 협상가로 변신해야 했다.

"너무 비싸. 절반 가격에 가자"

50%의 할인을 요구하자 택시기사는 손사래를 치며 본인이 원하는 금액을 외쳤다. 그가 원하는 가격은 15% 할인된 금액이었다.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조금 더 많은 할인을. 그는 조금 더 작은 할인을 서로 제시하며 우리는 30% 할인된 가격에서 합의를 보았다. 사실, 할인된 금액이 한국에서는 큰 금액이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식사를 한 끼 할 수 있는 가치의 금액이었다.배낭과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은 뒤,  안락한 나의 집이 되어줄 숙소로 향하면서 언제나 여행은 '협상'의 연속이란 생각을 했다. 지금처럼 택시비를, 시장에서 제품값을, 때로는 투어 픽업 시간까지. 여행자의 일상 전체가 협상의 연속은 아닐까 싶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낯선 환경 속에서 문제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협상 무기가 필요했다.

 첫 번째 무기는 '상대방의 융통성 자극'이다. 처음 방콕을 방문했을 때의 나는 고집이 센 멍청이였다. 크고 작은 문제에 대해 협상을 시도하기보다는 짜증을 내거나 회피하기 바빴다. 하지만, 여행에도 짬밥이란 게 존재하는지 날이 갈수록 쌓이는 내공 덕분에 나름 협상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 내공은 숙소의 로비에서도 발휘했다.

"배정된 방은 시티뷰인가요? 리버뷰인가요?"

아주 중요한 질문이었다.

리버뷰의 방에서는 '왕들의 강'이라 불리는 태국 최장의 강, 짜오프라야강을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 너무 늦은 시간에 체크인을 하셔서 손님이 예약한 디럭스룸의 리버뷰객실은 이미 다른 고객들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초보 여행자 시절이었다면 짜증을 내며 원하는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하지만 융통성의 중요성을 깨우친 현재는 협상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판단했다.

"저는 방콕이 너무 좋아서 3번째 방문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짜오프라야강의 뷰를 가진 객실에서 투숙할 기회가 없었어요. 이곳에 숙박예약을 한 이유는 오직 짜오프라야강때문입니다. 괜찮다면 짜오프라야강을 볼 수 있는 객실로 업그레이드해주실 수 있을까요?"

프런트 직원의 융통성을 자극하기 위해 많은 호텔 중에서 이곳을 선택한 이유와 방콕에 대한 애정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협상은 일방적인 융통성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서로 간의 융통성으로 협상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박수도 손바닥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지 않는가?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음..."

프런트 직원은 작은 신음과 함께 망설이며 컴퓨터 모니터를 응시했다.

여기서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는 당신에게 권한이 있다는 것을 알아요. 리버뷰 객실을 배정해준다면 정말 고맙겠어요."

결과는 무료 객실 업그레이드로써 원하는 것을 말 몇 마디로 얻을 수 있었다.

어떻게 추가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가능할 수 있었을까?

과연, 리버뷰객실이 불가능하다고 고함을 지르면서 원하는 것을 요구했다면 프런트 직원이 냉큼 리버뷰객실 열쇠를 손에 쥐어줬을까? 절대 정답이 아니다.

어느 나라든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진상손님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므로 그들과 대화할 때는 감정을 동요할 수 있는 긍정이 담긴 작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만으로 그들은 자신의 나라에 방문한 이방인을 자신의 권한으로 환영해주기 때문이다.

두 번째 협상 무기는 '모든 상황은 다르다는 것은 스스로 인식할 것'이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프런트 직원과 새벽이 아닌 아주 바쁜 오후에 이야기했다면 무료 객실 업그레이드는 불가능했을 수 있다. 같은 사람이라도 시간대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날씨에 따라, 수많은 상황에 따라 같은 내용의 협상을 하더라도 결과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된다 라는 일반적인 심리 이론보다는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새롭게 분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협상 무기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다. 개인적으로 세 가지의 협상 무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말을 참는 바보가 되어라는 뜻이 아니다.  의사표현의 부재가 존중을 의미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종교, 정치, 생활, 문화를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쉽게 표현해서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나의 사고방식과 다르다고 해서 이들을 무시하는 행동은 협상의 확률을 매우 낮춘다.  또한, 이곳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도움을 주는 사람은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현지인이다. 그러므로 현지인들에 대한 다방면적인 존중이 협상 태도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자신만의 협상 무기는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기 위해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임을 오랜만에 떠난 여행 첫날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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