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작가 홋타 요시에가 쓴 <고야>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책을 읽다가 고야의 아내 호세파 바예우에게 관심이 갔다. 고야의 사라고사 시절 동문이자 고야보다 먼저 마드리드에서 궁정화가로 자리 잡았던 프란시스코 바예우의 여동생. 고야와의 39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무려 20명의 아이를 출산한, 홋타 요시에의 말을 빌리자면, 결혼 생활 내내 뱃속이 비어있지 않았던 여인이다.
고야가 그린 호세파의 초상화는 딱 두 점 남아있는데, 그중 한 점이 프라도 미술관에 있다. 오며 가며 여러 번 지나쳤던 낯익은 그림이기는 하지만, 자세히 본 적이 없어 오늘 일부러 다시 보러 갔다. 홋타 요시에에 의하면, 고야에 대한 글을 쓰면서 호세파의 초상화에 대해 다룬 작가들은 많지 않으며 심지어 1790년에 그린 초상화는 호세파 바예우라 '추정'되는 그림으로 미술관 제목 뒤에도 물음표가 붙어있다 했다. 하지만 요시에는 그 그림은 호세파가 아닐 수 없다 했고, 호세파의 삶을 설명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그림이라 덧붙였다.
페파(호세파의 애칭)는 어떤 마음으로 고야와 결혼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고야는 출세를 위해 프란시스코 바예우의 여동생을 배우자로 선택했고, 모르긴 몰라도 그 결혼이 썩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아이를 무려 20명이나 낳았지만 그중 19명이 어릴 때 사망했고, 기계처럼 아이를 생산하게 만든 장본인인 남편은 궁정화가로 승승장구하며 집안일엔 관심이 없었을 테고. 그래서일까. 15년 뒤에 그려진 페파의 두 번째 초상화는 간단한 데생인데, 삶에 짓눌린 듯한 중년 여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홋타 요시에가 말한 페파의 초상화는 고야 그림을 볼 때 항상 지날 수밖에 없는 자리에 걸려있었다. <마하> 연작 바로 다음 방 출구 옆. 그런데, 그림의 제목이 <호세파 바예우>가 아닌 <레오카디아 소리야(?)> 라 되어있는 것. 페파의 초상화라 여겨졌던 그림은 여러 가지로 페파가 사망한 이후(1814-1816) 그려진 그림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프라도 미술관의 결론. 이 여인은 페파라 믿고 그림을 보러 갔기 때문에 누가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생각해봐도 일단, 페파가 아니라고 하기에는 그녀의 오빠인 프란시스코 바예우나 그녀의 중년 모습의 초상화와 느낌은 다르지만 너무 닮았고, 고야의 블랙페인팅 방에 있는 소리야의 모습과는 너무 안 닮았다. 그리고 - 이 그림이 페파가 아니라면 - 평생 스무 명의 아이를 낳은 아내의 초상화가 중년의 삶의 찌들어있는 여인의 모습을 한 데생 단 한 작품이 되는 건데, 그건 너무 슬프지 않나. 프라도 미술관에는 엄청나게 많은 고야의 작품들이 남아있는데. 그리고 무엇보다 그 눈빛이 페파의 삶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에 이제 와서 아니라고 무를 순 없다.
당분간 마하를 보고 아래층으로 내려갈 때마다 페파의 눈빛이 자꾸 눈에 걸릴 것 같다. 홋타 요시에는 책에서 "페파는 그 초상화가 미술관에 걸려 있는 지금도 <호세파 바예우(?)>로 '물음표'가 붙은 채, 고야의 아내로 공인받게 될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아내로 공인받기는커녕 다른 여인의 이름이 붙어있는 걸 알면 그는 뭐라 말할까. 그녀의 이야기를 더 찾아봐야겠다
페파의 오빠인 프란시스코 바예우. 위 초상화의 여인과 닮지 않았나. 특히 코.
소리야의 또 다른 초상화. 이걸 보면 위 초상화의 여인과 안 닮지 않았나.
참고로 이 작품도 프라도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