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 덕분에 Buen Camino
그놈의 배낭 덕에 돈독해진 까미노 인연
그 날은 아침부터 유난히도 발목과 무릎이 시큰거렸다. 전부터 말썽이긴 했지만 밑창이 딱딱한 싸구려 등산화와 하중을 전혀 분산시키지 못하는 배낭 탓에 상태가 악화된 것이다. 걷기 시작한 날부터 길 위에서 자주 마주치고 때론 함께 걸으며 같은 숙소에서 묵던 한국인 무리의 친구들은 다음 알베르게까지 배낭을 부치라고 당부했다. 알베르게는 산티아고 길 위에 있는 순례자 숙소로 하루에 10유로 안팎의 저렴한 금액에 이용이 가능한 곳이다. 숙소에서는 나처럼 배낭을 메고 걷기 힘든 사람을 위해 소액을 지불하면 본인이 지정한 다음 숙소까지 배낭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아직 500km가 넘게 남아있었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을 위해 무리하지 않고 딱 하루만 가볍게 걷기로 마음먹었다. 워낙 많은 소도시와 마을을 거쳐 간 터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날 묵은 마을은 벨로라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 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목적지인 아게스의 어느 숙소까지 배낭 배송을 맡겼다.
“오늘 거기까지 걷는 건 좀 무리 아니야?”
“에이, 오늘은 배낭도 없는데 뭐~ 그 정돈 거뜬하지.”
“그럼 알베르게에서 봐!”
“그전에 밥 먹다가 볼 것 같은데?”
“다치지 말고!”
“부엔 까미노!(Buen Camino!)”
걱정해주는 길동무들과 인사를 나눈 뒤 아직 어스름이 가시지 않은 길을 핸드폰 손전등에 의지하며 걷기 시작했다. 저마다 걷는 속도와 보폭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걷는다. 산티아고 길을 떠난 이래로 가볍게 걷는 것은 처음이었다. 몸에 지닌 거라곤 등산스틱, 핸드폰, 생명수가 담긴 물통 그리고 가로질러 멘 크로스백뿐이었다. 아담한 크로스백에는 가장 중요한 지갑과 여권 그리고 순례자 여권이 담겨있었다. 배낭을 부치길 정말 잘했다. 한껏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팔랑팔랑 걸었다. 해가 중전에 뜰 때쯤 발목의 통증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몸이 가벼운 탓에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속도를 빨리했던 모양이다. ‘거뜬하긴 개뿔. 입이 방정이지.’ 그날따라 오르막길은 왜 이리도 많은지 결국 한쪽 발을 절뚝거리는 지경이 되었다. 걷다 쉬다 수십 번, 시야에는 출발을 함께 했던 길동무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목적지까지 절반쯤 걸었을까.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화장실 이용을 위해 한 알베르게에 들어서자 길 위에서 자주 마주치던 다른 한국인 무리가 짐을 풀고 있었다. 성치 않은 내 걸음걸이를 본 어르신 한 분이 호랑이 연고를 건네셨다. 아픈 부위에 연고를 바르며 잠시 쉬는 동안 오늘은 이만 걷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아, 짐만 아니었으면...’ 부친 배낭에는 갈아입을 옷가지와 샤워용품 그리고 침낭까지 모두 들어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르신께 허리 굽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었다. 혼자 걷는 길은 내레이션 한마디 없이 내내 엇비슷한 풍경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보다 지루했다. 도착해서 얼른 쉬고 싶은 마음과 느린 발걸음은 보폭이 맞지 않았다.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아게스의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미리 부쳐둔 배낭을 찾으려 기웃거렸다. 배송된 배낭을 모아둔 곳에는 아무리 살펴보아도 내 것이 없었다. 스페인어를 못하는 나와 영어를 못하는 주인은 서로에게 손짓 발짓을 해봤지만 전혀 소통이 되지 않았다. 우선 위층에 있는 방으로 갔다. 널찍한 방에는 20개 정도 되는 벙커침대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놓여있었다. 예상대로 같은 무리의 사람들은 모두 도착해서 침대를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다. 배낭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다는 나의 말에 무리 중 스페인어에 능통한 동생, 지수가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와 대화를 나누던 주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정적인 신호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주인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 한참 대화를 하던 동생은 어두운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누나, 배송업체에 전화를 해봤는데, 아무래도 누나 배낭은 배송이 누락된 것 같대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방을 잃어버린 사실에 대한 충격과 막막함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힘겨운 발걸음에도 배낭 하나만 생각하며 목적지까지 왔건만, 허탈한 마음이 동시에 일었다. 그 모습에 당황한 지수는 이전 숙소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연락한 뒤 나를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너무 걱정 말아요. 누나. 이전에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 연락해보니까 누나 가방이 아직 거기에 있대요. 오늘 배송은 이미 끝났고 내일 우리가 갈 숙소로 짐을 보내주기로 했어요.”
“고마워, 지수야.. 근데 나 당장 갈아입을 옷도 없어. 진짜 어떡해..”
다른 일행 몇몇이 걱정되어 내려왔다가 울고 있는 나를 보더니 덩달아 당황해하며 다독였다.
“다행히 짐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네. 울지 마~”
“그래그래. 일단 씻고 저녁부터 먹자.”
세상에 벌거벗고 서있는 건 딱 이런 기분일까. 나에겐 갈아입을 옷이 없다. 평소대로라면 반나절을 걸어와 땀에 전 몸을 개운하게 씻고, 보송보송한 잠옷으로 갈아입은 후, 빨래가 마르길 기다리며 맛있는 스페인 와인을 곁들인 저녁을 먹는 게 순서였다. 침대 옆에 우두커니 서있는 나에게 같은 침대를 쓰게 된 언니가 말했다. “혜선아, 내가 여벌 옷은 없지만 세면도구는 다 빌려줄게. 이거 써~.” 그러자 옆에서 지켜보던 동생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언니, 저 여분 수건 하나 있는데 이거 써요!”
“누나, 딴 건 없고 내 후드 집업 빌려줄게요.”
“나 바지 하나 남는 거 있는데, 이거라도 입을래?”
“내 양말 신을래? 아직 한 번도 안 신었어 새 거야. 냄새 안 나.”
약 한 달여간 자신이 쓸 모든 짐을 짊어지고 걸어야 하는 여정. 그 특성상 10kg 내외의 최소한의 짐만 지닌 사람들은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듯 자신들이 가진 것을 하나씩 내어주었다. 그렇게 소중한 구조물품들을 손에 들고 샤워실로 들어간 나는 무사히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었다.
모두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자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몸에 비해 한참 큰 새빨간 후드 집업과 무릎을 덮는 남색 운동복 반바지를 입고 방실방실 웃으며 맛있게 저녁을 해치웠다. 짐을 찾을 수 있게 힘써준 지수에게는 감사의 표시로 맥주를 샀다. 길동무들은 금세 미소를 되찾은 나를 보며 단순하다고 놀려댔다. 다음 날 아침, 밤새 다 마른 옷으로 갑아 입고 빌렸던 것들을 반납했다. “덕분에 살았다. 세탁 못하고 줘서 미안~ 근데 내가 당장 넣어갈 가방이 없다야.” 빙그레 웃는 나에게 동생들은 빌려줬던 옷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질타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그대들 덕분에 지난밤 내가 알몸으로 지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을.
산티아고 길을 걷기 전, 오롯이 홀로 걸으며 생각을 정리할 참이었다. 혼자였다면 외로웠을 800km 길 위에서 첫날부터 만난 인연들 덕에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마다 웃음꽃이 피었다. 함께였기에 절박한 상황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혼자 시작했지만 여럿이 되어 끝맺음을 한 길에서 소중한 인연을 얻었다. 낙오자 없이 무사히 완주를 하고 여러 해가 지난 지금도 길동무 13명 모두가 함께인 단체 카톡방은 건제하다. 무리 중에 리더십이 가장 돋보이던 한 살 어린 동생이 한 말이 있다.
“까미노 인연. 걸었던 길만큼 오래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