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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을 떠나 영국으로.

역마살에 발동을 걸다.

by 순일

전공은 ‘음향’, 나고 자란 곳은 대한민국에서도 아는 사람만 안다는 남쪽 저쪽 아래의 ‘경상남도 진주시’. 굳이 경상남도라고 콕 짚어주지 않으면 전라북도 ‘전주시’로 잘못 알아듣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해외에서 “Where are you from?”이라는 질문에 “I am from Korea.”라고 대답을 할 때면 공식처럼 따라오는 “North? or South?”라는 꼬리 질문을 피하기 위해 한 번에 ‘South Korea’라고 대답하는 것처럼 나에겐 애초에 정형화된 고향을 말하는 방식이다.

대학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취업을 하면서 10대 때부터 꿈꿔오던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3년 5개월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치열하고도 재미나게 살았던 날들. 2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감독님’이라는 호칭을 받아봤고, 속을 다 버릴 만큼 술도 마셔봤고, 양질의 문화생활도 즐겨봤고, 악착같이 학자금 대출도 다 갚았다.

10년 계획도 세워봤다. 경력을 쌓고 자격증도 따서 KBS, MBC, SBS와 같은 지상파 방송국으로 이직하기. 내 명의의 자동차를 갖고 한강뷰를 가진 오피스텔에서 살기 등등.


물론, 지금은 다 지워진 계획들.


워킹홀리데이를 가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나에겐 유럽 배낭여행, 코이카 봉사 단원으로서 아프리카에서 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큰 언니와 호주 워킹홀리데이 경험이 있는 작은 언니가 있고, 그 둘이 대한민국 안의 개구리였던 나에게 해외에 한 번쯤은 살아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에 걸쳐해 줬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영국이었을까? 영어 말고는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일어 약간, 당시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여행객들 조차 발길이 뜸해진 상태, 미국은 총기 소지 가능 국가라 무섭고, 호주는 땅이 너무 넓어서, 뉴질랜드는 관심이 없어서, 캐나다는 너무 추워서 갈 마음이 하나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영국이 나를 이끌었던 것은 문화적인 매력이었다.


첫 번째, ‘해리포터’.

내 나이 또래의 사람이라면 해리포터와 함께 성장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해리포터 덕후까지는 아니더라도 해리포터의 오랜 팬이다. 초등학생 시절 엄마께서 사들고 오신 해리포터 1권에 매료되어 그 후로도 모든 시리즈가 나오는 족족 읽었고, 영화로 제작된다는 사실에 몹시 들떠있던 아이 중의 하나.


두 번째, 10대 때 본 후로 나의 인생 영화로 꼽히는 ‘노팅힐’.

이 영화를 본 후 영국과 미국의 영어 차이도 모르면서 휴 그랜트의 섹시한 억양에 매료되었더랬다.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의 사랑이야기는 그 후로도 여러 해가 지나 다시 감상할 때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와 가슴을 울렸다.


마지막으로는 비틀스.

음악 감상을 즐겨하시던 부모님 밑에 자라나 어린 시절부터 옛 음악에서 최신 음악까지 감상의 폭이 넓었던 나는 대학생 시절 대중음악 비평과 이론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던 당시 블루스와 락앤롤 장르에 푹 빠졌고, 롤링 스톤스와 비틀스의 고장인 영국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영국 워킹홀리데이는 당시 2기를 모집하는 기간이었고, 이전에 1기로 간 사람들의 많지 않은 후기가 드문드문 인터넷 상으로 공유되던 때였다.


‘되면 가고 안되면 말지 뭐.’ 마인드로 지원한 나를 영국은 받아들였고, 어렵지 않게 워킹홀리데이의 세계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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