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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우리의 라라 랜드(LA-LA-LAND)

by 순일

“Are you from Germany?”




휴게실의 야외 테이블에서 아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있던 그에게 건넨 나의 첫마디였다.




단정하게 정리한 스포츠형 금발 머리에 뽀얀 피부, 회색빛이 섞인 깊은 하늘색 눈동자와 190cm에서 딱 2cm모자란 늘씬한 체구는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그가 독일인임을 가늠할 수 있게 했다. 독일 남부 지방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온 그의 이름은 라스. 옆으로 기다란 쌍꺼풀 진 눈의 양쪽 끝은 아래로 쳐져 순한 인상을 줬고,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듣는 사람을 안정시키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를 만난 건 워킹홀리데이로 머물던 뉴질랜드에서 맞이한 네 번째 계절, 가을. 북섬의 헤이스팅스에 위치한 어느 사과 팩 하우스에서 시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였다.




우리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틈틈이 휴식시간 마다 무한대로 제공되는 사과와 인스턴트커피를 먹으며 둘러앉아 시덥지않은 잡답을 나눴다. 그렇게 조금씩 친분을 쌓아가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지내는 호스텔에서 곧 떠나는 프랑스 친구 두 명의 송별회에 나를 포함한 몇몇 동료들을 초대했다. 송별회가 있던 저녁 찾아간 호스텔에는 늙고 거동이 불편해 피둥피둥 살이 찐 고양이 토미가 있었다. 평소 고양이를 좋아하던 나는 토미를 보는 빌미로 그 후로도 자주 호스텔을 드나들게 되었다. 하루는 그가 나에게 요리를 대접했다. 치즈를 듬뿍 얹은 오븐 파스타였다. 스파게티 면을 포크로 돌돌 말아 죽죽 늘어나는 치즈와 함께 입 속으로 넣자 혀가 황홀했다. 한 시간이 훨씬 넘게 걸린 조리시간 탓에 배가 너무 고팠던 것일까? 정성스레 준비한 마음까지 담겨서였을까? 지금까지 먹어 본 파스타 중에 최고의 맛이었다. 먹는 내내 감탄사를 연발하는 나를 보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처음으로 단 둘이 드라이브를 갔던 날, 그는 친히 내가 살던 집 앞으로 와 픽업을 했다. 준비를 하느라 늦어진 나를 기다려 준 그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표하자 그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사람좋게 웃었다. 차 안에는 그의 취향대로 선곡한 느린 템포의 독일 힙합 노래가 흘렀고, 가사의 의미도 모르는 낯선 노래가 감미로웠다. 노을을 보기 위해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도착한 산 끝자락에는 칼바람이 불었다. 그는 벌벌 떠는 내 겉옷의 지퍼를 잠그고 옷에 달린 후드를 씌우더니 널찍한 품에 안아주었다. 붉어진 하늘빛처럼 내 얼굴도 달아오름을 느꼈다.




한국과 독일의 월드컵 예선전을 함께 관람하기로 했던 날, 이른 새벽에 있는 경기를 보기 전에 시간도 때울 겸 내가 인생영화로 꼽는 ‘라라 랜드’를 보게 되었다. 영화를 함께 보고 감상평을 나누며 다시 한 번 내용을 곱씹는 시간이 다정했다.




사과 시즌이 끝나고 한 달 뒤 귀국 예정이던 나는 그와의 상의 끝에 끊어두었던 비행기 표를 취소하고 3개월의 비자연장을 감행했다. 그 후로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구름 위를 걷는 듯 행복했다. 잠에 덜 깬 채 억지로 출근하던 길이, 요리를 좋아하는 그와 매일 같이 메뉴를 정해 장을 보고 음식을 하는 시간이, 함께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보던 저녁이, 늦잠 자는 그를 깨우는 게으른 주말아침이 모두 다 좋았다. 매일 나누는 시시콜콜한 대화 속에 사랑을 듬뿍 느꼈다. 그는 항상 내 말에 귀를 기울였고, 나의 의견을 존중했고, 내 표정이 조금만 좋지 않아도 무슨 일이냐고 물을 만큼 세심했다. 성격이 정반대인데도 종종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 신기했다. 그럴 때면 “우린 아무래도 천생연분인가 봐. 나중에 꼭 결혼하자?”하며 진담 섞인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눈 깜짝할 사이 5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비자가 끝나는 날에 맞춰 호주로 여행을 가는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그는 함께 따라 나섰다. 미리 계획되어 있던 가족여행을 위해 뉴질랜드로 돌아가기 전날 밤, 그는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한국과 독일 간의 장거리 연애를 하는 중에도 그는 성실히 다정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영상 통화를 했고, 떨어져 지낸지 반년이 지날 무렵에는 한국에 방문해서 2주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런 그의 마음에 보답하고자 마지막 워킹홀리데이를 호주로 계획하고 있던 나는 독일을 택했다. 그의 부모님은 당장 직장도 거주지도 없던 나를 본인들의 집에서 지낼 수 있게 해주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퍼져 발이 묶여버린 나는 의도치 않게 그 곳에서 몇 개월을 지내게 되었다.




아버지 사업을 도우며 따로 창업 계획을 세우던 그는 무척 바빴다. 아침에는 내 눈이 아닌 신문에 눈을 맞추며 밥을 먹었다. 즐겨하는 줄만 알았던 요리를 귀찮아했고, 함께 영화를 보자는 제안에 로맨스 영화는 취향이 아니라는 말만 했다. 주말에 어디라도 나갈 때면 그에 비해 준비가 오래 걸리는 나를 채근했다. 코로나 상황이 조금 나아지고 함께 장을 보러간 날에는 얼른 끝내고 집에 가고 싶어 했다. 저녁에 산책을 가자는 내 요청은 그의 피로에 종종 묵살되었다. 그의 부모님 집에서 지내기가 불편해 함께 방을 구해 나가자는 나의 말은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말로 되받아졌다. 밝은 갈색 장판 위 유난히 잘 보이는 내 까만 머리카락에 대해 잔소리를 아끼지 않았고, 등록한 직후 락다운으로 문을 닫은 어학원 탓에 집에만 있는 내게 청소의 의무를 묻기도 했다. 그는 더 이상 뉴질랜드에서 내가 반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본인의 목표를 좇느라 여념이 없는 그와 당장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싸우는 날이 늘었다. 각자 인생을 바라보는 가치관과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름에 끌렸던 서로는 다름 때문에 답답해하기 시작했다.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시선에는 언젠가부터 날이 서있었고, 서로를 탐구하며 끝없이 나누던 대화는 사라져갔다. 결국 특별할 것만 같았던 우리의 관계가 이전 연애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끝을 맞았다. 이미 여러 번의 이별을 겪어본 나는 알고 있었다. 연애의 끝에 일방적인 잘못만은 없다는 것을. 나빠지는 관계에 나뿐만이 아니라 그도 지쳐있었다. 그리고 그가 바라보는 나 또한 예전의 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별 후, 혼자 시간을 가지며 뉴질랜드에서 그와 함께한 나날들을 떠올렸다. 마치 라라 랜드처럼 느껴졌다. 언젠가 그와 함께 감상했던 영화 제목인 라라 랜드가 가진 의미는 '꿈의 나라, 비현실적인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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