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우리와 같은 역사적 아픔

평화로움과 한적함 이면에 아픔을 간직한 섬, 수오멘린나

by 방구석여행자

핀란드의 요새, 수오멘린나와의 첫 만남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현지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공간인 마켓광장. 그 공간을 지나서 선착장에 다다르면 페리를 타고 15분이면 갈 수 있는 섬이 있다. 바로 <수오멘린나>라는 섬. 수오멘린나는 '핀란드의 요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페리를 타면서 가는 길에 봤던 수오멘린나 섬은 곳곳에 둘러싸인 건물들에서 위압감이 들었다. 6개의 섬이 연결된 하나의 섬 수오멘린나. 페리가 섬에 다다르자 파스텔톤의 연한 분홍색 건물이 날 반겨주었고, 위압감이 들었던 겉보기와는 다르게 사랑스러웠다. 페리에서 내려 섬 안으로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섬을 둘러보았다.

사색을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던 수오멘린나

북유럽을 떠나오기 전 핀란드 여행 계획을 짤 때 사진을 보면서 이 섬을 가장 기대했었다. 혼자만의 생각이 필요했던 내게 한적하게 사색을 즐기기에 딱 안성맞춤인 곳 같았다. 일부러 사람이 붐비지 않을 시간인 이른 오전 시간에 페리에 올랐지만, 페리에 사람들은 제법 있었다. 섬에 도착했을 때 섬이 붐빌까 봐 걱정이 됐었다. 그러나 그건 나의 기우였다. 섬은 너무나 한적했고, 평화로웠고, 찬바람이 불던 가을의 어느 날이었지만 햇살이 비추는 곳곳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너무 고요해서 혼자서 사색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움츠러든 몸을 녹이러 찾아간 박물관

그러다가 보기에 너무 예뻐 보이던 한 카페를 발견했다. 그 카페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그전에 보였던 "CLOSED"라는 너무나 또렷했던 글씨. 조금 출출해진 배와 쌀쌀한 날씨로 인해 움츠러든 몸을 녹이기 위해 다른 카페를 찾아다녔고, 너무 서둘러서 왔던 탓에 카페들은 죄다 문이 닫혀있었다. 섬 곳곳을 계속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문이 열린 곳을 발견했다. 옆에 조그마한 카페와 기념품을 파는 박물관이었다. 간략하게 섬의 역사에 대해 둘러보고, 아침을 먹지 않아 배고팠던 나는 서둘러 카페로 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찜 해두었던 카페가 열리면 무언가를 먹을 생각이었기에 맛있어 보이는 쿠키와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간단하게 때웠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지 한국에서는 무조건 아이스음료만 마시던 내가 자꾸만 따뜻한 음료가 마시고 싶었다. 시간을 때우고 나서 ‘이제 좀 카페들이 문을 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길을 나섰다.

요새로서의 수오멘린나

헬싱키대성당과 비슷한 분위기의 수오멘린나교회였다. 잠시 들러 기도와 명상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는 지도를 보면서 섬을 찬찬히 돌아봤다. 평화롭고, 고요했던 섬, 휴식과 힐링을 바라는 이들이 찾으면 너무 좋을 이 섬을 돌아다니다 보니 오랫동안 헬싱키를 보호했던 포대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포대들을 보니까 비로소 실감이 났던 요새로서의 수오멘린나. 헬싱키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을까. 또한 스웨덴으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해,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하기 위해 맞서 싸워야만 했던 핀란드인들을 보면서 일제강점기 때의 우리 민족의 아픔과도 비슷하다는 점에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수오멘린나에서의 섬 투어를 마치고, 페리를 타려고 하는데 다리를 건너 또 다른 섬의 모습이 있다는 걸 알았다. 갈까 말까를 망설였다가 늦어진 시간에 다음에 기회가 되면 보자 라는 생각을 하고 돌아섰다. 그러고 나서 그 기회는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바로 다음 날, 여행 일정에 여유가 생겼고, 나는 주저 않고 다시 수오멘린나섬을 찾았다. 그리고 바로 궁금했던 곳으로 갔는데 그곳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더 꾸밈없었고, 조심스러웠다.

수오멘린나 그 후

수오멘린나섬에서의 일정은 다 끝이 났다. 첫날 찜 해두었던 분홍색 건물의 카페는 어김없이 "CLOSED"라는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아쉽게도 가볼 기회를 놓쳤다. 평화롭고 한적했던 그 이면 아래 아픔과 상처가 깃들어 있던 공간, 수오멘린나. 기대했던 대로 실제로 봤던 수오멘린나는 역시나 날 실망시키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치유하고, 치유받는 그런 소중한 곳이었기에 다녀온 지 몇 년이 지났더라도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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