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오로라
사람은 살아가면서 한 가지 이상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사는 것 같다. 그게 내가 살아가는 삶을 지치게도 하지만, 다르게는 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내게도 그런 게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2016년.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을 보면서 우리나라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인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을 보면서 출연진들의 티키타카 케미도 재밌었지만 그보다도 더 관심이 갔던 건 화면 속에 보이는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의 대자연. 그 나라가 너무 궁금했고,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런데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신혼여행은 꼭 아이슬란드로 가리라.
그로부터 몇 년 후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약속하고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지 결정해야 할 때가 왔었다. 나는 신혼여행지로 다른 후보지는 없었다. 오직 아이슬란드. 남편은 그 먼 나라를 어떻게 가냐고, 좀 남들이 신혼여행으로 가는 평범한 나라로 가면 안 되겠냐고 했었지만 내게 두 손 두발 다 들었다. 결국 우리의 신혼여행지는 아이슬란드로 낙점되었다. 쾅쾅쾅.
내가 아이슬란드의 광활한 자연경관 말고도 아이슬란드를 선택했던 또 다른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오로라. 물론 오로라는 꼭 아이슬란드가 아닌 극지방의 다른 나라를 가도 볼 수 있는 신비한 자연현상이었지만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을 너무나 인상 깊게 봤던 내 머릿속에는 '아이슬란드를 가야 오로라를 볼 수 있다'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냥 무조건 아이슬란드였다. 그리고 오로라를 보기 위해 우리의 결혼은 오로라가 잘 나타난다는 겨울로 정했다.
드디어 식이 끝나고, 신혼여행을 떠났다. 우리의 비행 일정은 역시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에서처럼 한국에서 새벽에 출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하여 경유지인 암스테르담을 가볍게 둘러보고 아이슬란드 수도인 레이캬비크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도 그들처럼 오로라를 볼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아이슬란드에 도착해서 숙소에 체크인을 한 후 가볍게 레이캬비크를 탐방할 겸 요기할 음식들을 사 왔다. 아이슬란드에 무사히 도착한 것을 기념하며, 바로 다음날 있을 오로라를 꼭 보길 고대하며 우린 축배를 들었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아이슬란드에 도착하기 전 다운로드하였던 오로라 지수를 측정하는 어플을 켰다. 오로라를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오로라 지수는 낮았지만, 오로라 지수가 낮더라도 종종 오로라가 출몰하는 경우가 있다는 정보도 들어서 침대에서 내려와 총총걸음으로 창문의 커튼을 젖혔다. 빛이 감도는 레이캬비크였어서 그랬는지 오로라를 구경할 수 없었다. 레이캬비크에서도 오로라가 종종 나온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첫날에는 별 수확이 없었다. 그렇게 밤을 지새우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우리는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두었던 오로라 투어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투어버스를 기다렸다. 오로라 투어 하러 가는 곳은 레이캬비크보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날씨가 레이캬비크보다 더 춥다고 했었다. 핫팩과 옷을 단단히 중무장하고 떠났다. 버스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달렸나. 오로라가 자주 나온다는 지역에 도착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오로라였고, 깜깜무소식인 오로라를 기다리는 동안 너무 추웠었다. 그렇게 2-3시간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오로라를 밤새 기다릴 순 없었다. 이제 버스에 올라타고 레이캬비크로 다시 돌아갈 시간이 됐었다.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 출연진들은 오로라를 그렇게나 잘만 보던데. 우린 왜 못 본 것일까. 3대가 덕을 쌓아야 오로라를 볼 수 있다던데 우린 아직 3대가 덕을 쌓지 못한 것일까. 숙소로 돌아온 나는 오로라를 보지 못해 아쉬웠던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또다시 창문의 커튼을 열어젖히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끝내 오로라는 답이 없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오로라에 별 감흥이 없던 남편도 지난밤에 오로라를 보지 못했던 건 꽤나 아쉬웠었나 보다. 한국에서는 아이슬란드 현지에서도 오로라 투어 예약이 가능하다길래 한 번만 예약을 했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예약했던 날짜에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면 현지에서 예약을 하라고도 했었다. 우리는 아이슬란드에 오기 전에는 '설마 그 흔하디 흔한 오로라를 못 보겠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막상 아이슬란드에 도착해서 오로라를 못 보니 오로라 보러 여기까지 온 거였는데 한국 갈 때까지 오로라를 못 보면 어쩌나 불안했고, 온통 머릿속에는 오로라뿐이었다. 다른 여행 일정을 소화하다가도 전단지에 오로라 투어라는 단어만 보면 무조건 예약을 했다.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면서.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오로라에 대한 끈을 놓지 말자고 했었다. 오로라 보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말자고 남편과 이야기를 했다. 오로라는 결코 흔한 녀석이 아니었다.
다른 투어 일정도 있었기에 겹치지 않는 선에서 예약을 진행했었는데 오로라는 참 예민한 녀석이었다. 예약한 날들 줄줄이 기상악화로 인해 오로라 투어가 취소가 되었다.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에서는 항상 오로라가 있는 장면을 보여주길래 아이슬란드만 오면 오로라를 흔하게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거리를 걷다가도 볼 수 있는 게 오로라일 거라 예상했는데 아마 그건 방송 편집의 힘이었던 걸까. 오로라를 쉽게 볼 수 있을 거라고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도 미안했다. 나와 남편에게는 참 어려운 오로라였다.
나와 남편은 오로라를 꼭 보고 가겠다는 집념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었다. 투어가 취소돼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디든 걸려라'라며 계속 여러 오로라 투어 업체에 예약을 시도했었고, 밤거리를 걸으며 오로라가 나오는지 계속 하늘을 바라보았다. 또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창문의 커튼을 젖혀 오로라가 나오는지 밤하늘을 확인했었다. 그런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상악화는 계속되었고, 끝끝내 돌아가는 날까지 우린 오로라를 보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우리는 우리와 같은 신혼부부를 만났다. 혹시 오로라를 봤냐는 물음에 그 커플 중에 남자분이 너무 순식간이었어서 오로라인지는 확실히 모르겠는데 새벽에 담배를 피우다가 하늘을 봤는데 오로라 같은 빛이 하늘에 비추길래 잠자고 있던 부인을 깨워 같이 보려 했더니 사라졌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내게 사진도 보여줬었는데 찰나의 순간이었겠지만 오로라가 맞았었다.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었다.
오로라를 보지 못했던 아쉬움은 많이 남아있지만 후회는 없었다. 우리는 한번 못 봤다고 포기했던 게 아니라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지'하며 아이슬란드를 떠나는 날까지 오로라를 보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아무 노력도 안 했다면 그게 더 후회가 남았을 것이다. 비록 결과는 아쉬웠지만, 그 과정은 아름다웠던 여행이었다. 이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어쩌면 다음에는 아이슬란드를 가게 되면 그땐 오로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 이러한 기대감을 가지고 살아야 지금의 지쳐있는 내 삶에 원동력이 되어줄 것 같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