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2주 전 갑자기 안 꾸던 악몽을 꾸었다. 과연 안 꾸던 건지 그동안도 악몽을 꾸면서도 이야기를 안 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처음에 악몽을 꿨다고 했던 날 무슨 꿈이었냐고 내용을 물어봤었다. 남편은 잠결에 아침에 일어나면 말해주겠다고 하고 다시 잠들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꿈의 내용을 물어봤었는데 말하지 못했다. 기억이 안 난다고 하면서.
나는 처음에는 참 집요하게도 물어봤었다. 그런 고통스러운 기억을 공유하면 그 고통이 반으로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그런데 이내 멈췄다. 이건 어디까지나 그 악몽의 내용이 기억이 날 때 해당되는 법. 문제는 남편은 악몽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었다. 아무래도 남편이 기억나지 않는 그 악몽의 내용을 생각하려고 애쓰다 보면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꼴이 될 것 같아서 그냥 더 이상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뒤 아침에 일어났던 남편은 또다시 악몽을 꿨다고 했다. 무슨 꿈이었냐고 물어봤던 내게 이번에는 무슨 꿈이었는지 말해주었다. 기억이 났었나 보다. 남편이 갑자기 왜 요즘 들어 악몽을 꾸는지 걱정이 됐다. 남편은 불안감을 많이 느낀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 것일까. 여태까지 우울증이라고 하면서 겪었던 다른 증상들인 불면증이나 가슴의 답답함 같은 증상들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불안감은 좀처럼 사그라들지를 않는다.
남편은 요즘 들어 내가 없으면 밤잠을 이루기 힘들다고 한다. 내가 꼭 옆에서 같이 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내가 옆에 있어야 안정감을 찾을 수 있다 하면서. 얼마 전에 병원 진료를 다녀왔는데 남편은 의사 선생님께 이러한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그러면 아내와 함께 잠들도록 하라고 했고, 그래서 요즘 우리 부부는 꼭 침대에 함께 눕는다.
남편의 우울증 치료를 돕고자 키우기 시작했던 도마뱀은 처음에 한 마리에서 외로울까 봐 2마리가 되고, 그렇게 불어나 어느덧 4마리를 키우게 되었다. 우리 집 도마뱀 집인 서랍장이 총 8칸이 있어 8마리를 키우자고 할까 봐 내심 겁이 났는데 다행히 남편 본인이 관리하기 힘들 것 같다며 4마리에서 멈췄다. 요즘 도마뱀이 아닌 뱀에도 관심이 생겼는데 제발 그것만은 멈춰달라고 했다. 딱 도마뱀까지 만 이면 좋겠다고. 4마리의 도마뱀 아빠가 되면서 그래도 도마뱀을 볼 때면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키우길 잘했다는 생각이 한편으론 든다. 원래 취미가 없어 나의 취미생활을 부러워했었고, 스트레스받아도 풀 곳이 없었던 남편이었는데 그런 남편의 취미가 생긴 것 같아 옆에서 보는 나도 흡족했다. 얼마 전에는 본인이 원래 좋아하던 가수의 노래를 찾아 들으며 오랜만에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렇게 이전에 좋아했던 거, 새롭게 좋아하게 된 것들을 자꾸 찾아서 하면서 삶의 활력을 불어넣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요즘 남편은 도마뱀들을 키우면서 유튜브도 시작했다. 그동안 "유튜브 해볼까?"라고 이야기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남편이었는데 취미생활이 생기고 나니 바로 시작을 한 남편이었다. 아직은 많이 미숙하지만 동영상 편집도 하고, 자막도 넣고 열을 올리고 있다. 나도 옆에서 조언 아닌 조언을 해주고 있는데 유튜브 만만치 않다고 이야기를 하는 남편이다.
이러한 몇 가지의 노력들로 남편이 불안감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우울증이 완화됐으면 한다. 부디 꾸준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