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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여행자 Aug 17. 2021

무언가에  한번 미치면 그렇게 무섭다던데

어렸을 적 나는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것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올림픽, 월드컵으로 방송사 모두 서로 앞다투어 스포츠 경기들로 TV 중계를 진행했고, 세상이 스포츠 경기를 향해 떠들썩할 때 나는 매번 스포츠 경기를 보기 위해 리모컨을 사수하시는 아빠를 보면서 맨날 스포츠 경기만 보냐며 뭐라 하기 일쑤였다. 그랬던 나였는데 그런 내가 제대로 미쳤다. 야구에. 


때는 대학교 2학년. 학교-학원-집. 일정한 생활 패턴을 유지하며 남들과는 조금 다른 무료한 대학 생활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나는 새 학기가 시작하면서 휴학했다가 복학한 2명의 새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과는 급속도로 친해졌는데 그들이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로 달려가는 곳이 있었으니 바로 야구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한 야구장이었다. 그들은 야구장을 자주 갔었고,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걸 좋아했었다. 그렇게 그들과 점점 친해지면서 야구장에 함께 가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었고, 나는 망설이다가 

'나도 그럼 한번 가볼까?, 나도 그들처럼 어느 순간 야구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니까'라는 생각과 함께 야구장을 따라나섰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야구를 향한 나의 늦바람.

친구들과 처음으로 갔던 야구장. 친구들이 좋아하는 팀인 인천을 연고지로 둔 인천 문학경기장부터 야구에 입문했다. 마침 나는 인천사람이라 문학경기장이 지리적으로 가까웠었다.  2002년 개최했던 한일월드컵 때 친구들과 축구를 관람하고 거리 응원하러 왔던 이후로  문학경기장은 참 오랜만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선수들, 팀을 응원하면서 봐서 그랬는지 몰라도 설령 야구 규칙을 하나도 몰랐을지언정 집에서 아빠가 TV로  야구중계를 시청하실 때 곁눈질로 봤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이었다.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경기라 그런지 박진감이 그대로 느껴졌었다. 더구나 내가 처음 야구장에 가서 친구들과 봤던 야구경기는 엄청난 예매율을 자랑하는 한국시리즈 경기였었다. 그때 당시에는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 경기가 얼마나 생동감 넘치고, 재미있는 경기였었는지, 예매는 또 얼마나 힘든지 알지 못했었지만, 나중에 야구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면서 팀이 한국시리즈를 갔었을 때 한국시리즈 경기를 예매하려고 하면 실패하기 일쑤였다. 내 자력으로는 도저히 한국시리즈 경기는 갈 수 없었다. 그때부터 친구들과 야구경기를 관람하는 재미에 빠졌었다. 늦바람이 참 무섭다던데. 무언가에 한번 미치면 그렇게 무섭다던데. 나는 왜 더 일찍 좋아하지 못했는지 아쉬웠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제부터 그동안 좋아하지 못했던 시간까지 더 열정적으로 좋아하면 되는 거니까. '무언가를 이렇게 좋아할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느낌이 참 오랜만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같이 자연스레 팀이 인천이 연고지인 SK 와이번스 팀(현 SSG랜더스)을 좋아하게 되었고,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기까지의 야구경기가 없는 몇 달 동안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림의 시간을 야구선수들에 대해 찾아보고 그동안의 경기를 다시 보기 하는 등 아쉬움의 시간을 그렇게 해소했었다. 그리고 가을에만 하는 줄 알았던 야구경기는 봄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야구가 돌아왔다.

봄부터 가을까지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야구를 관람하러 인천 문학경기장을 찾아갔었다. 야구장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야구장이 집과 가까우니 9이닝의 긴 경기 시간도 부담이 없었다. 집은 어떻게 됐든 도착을 했었으니까. 야구장을 가서 생생한 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했었다. 무엇보다도 학교-학원-집의 무료했던 내 대학 생활에 생기가 불어났었다. 야구장에 가서 야구 선수들을 응원하다 보니 정작 야구 규칙은 모르고 관람을 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나 좋아하게 되다 보니 야구 규칙이 궁금해졌고, 야구 규칙을 경기 도중에 계속 물어봐서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었다. 같이 보러 가는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나는 야구 중계들을 찾아보면서 야구 경기 규칙도 하나하나 터득해나가기 시작했다. 꼭 사랑에 빠진 남녀가 서로를 탐색할 때처럼 나도 야구와 사랑에 빠져 점점 야구에 파고들어 갔었다. 

나의 야구 사랑은 인천에서 끝나지 않았다. 인천도 모자라 가까운 지역의 원정경기도 보러 다니기 시작했었다. 대표적으로는 두산이나 LG전의 경기가 있으면 서울 잠실로 친구들과 함께 응원을 가곤 했었고, 가는 길에 잠실의 명소들도 둘러봤다. 넥센전의 경기가 있을 때는 돔구장인 고척돔 경기장으로 가곤 했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원정경기로는 친구와 당일치기 일본 대마도 여행 이후 배를 타고 부산을 도착해 부산을 여행했었는데 그곳에서도 나의 야구사랑이 나타나서 사직 경기장도 찾았었다. 부산 사직경기장이 워낙 야구사랑이 유명하다고 들었어서 기회가 된다면 꼭 보러 가고 싶었었는데 마침 그 진귀한 구경을 할 수 있었다. 함께 여행을 갔던 야구에 관심이 없던 친구도 부산의 야구 열기에 취해 재미있게 관람했었던 기억이 있다. 

임신과 출산 이후 내 야구에 대한 열기는 현재 식어있다. 요즘 육아와 일에 전념하느라 야구를 잊은 지 오래다. 아이가 좀 더 크면, 다시 내 야구사랑을 시작할 참이다. 아이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 야구장 여행도 다닐 계획이며 국내에서 그치지 않고, 야구로 유명한 국가인 일본의 야구장을 투어 하며 야구경기를 관람하는 여행과 더 나아가 야구 종주국 미국의 메이저리그 경기도 관람하면서 야구장을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혀줄 꿈도 세우고 있다. 부디 내 삶에 다시 야구 열기가 불어넣어지기를 조심스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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