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인천의 장소들
출근길,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이렇게 비가 오면 내가 사는 인천에서 유난히도 생각나는 빈티지스러운 장소들이 있다. 비가 오니 지금 당장 이곳들을 가고 싶지만 지금 내게 부딪힌 현실적인 상황 때문에 방문을 잠시 미룬다. 비가 오면 특히나 더 생각나는 인천의 몇 가지 장소들을 공유한다.
#1. 배다리 헌책방거리
엄마의 고등학교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인천의 옛날 감성 가득한 동인천. 어쩌면 그 근처에 있는 배다리라는 헌책방 골목도 엄마 덕분에 처음 알게 됐던 곳이었다. 처음에 읽고 나서 버리는 책들이 많자 책을 버리는 것보다는 배다리라는 헌책방 골목이 있는데 그곳에 책을 팔아보면 어떻겠냐는 엄마의 제안에 버스를 타고 이따금 헌책을 싣고 갔었다. 책을 산 가격에 비하면, 집에서 배다리까지 이동한 버스비에 비하면 소소한 용돈벌이 정도밖에 안됐지만, 내겐 경제관념도 생기고 좋은 기억으로 남은 공간이었다. 낡고, 고리타분한, 빈티지스러운 향기가 나는 그런 공간. 골목골목 구경도 하고, 용돈도 벌 수 있는 그런 공간이었기에 그 이후로도 나는 혼자서 버스를 타고, 헌책을 싣고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가서 종종 책을 팔곤 했었다. 성인이 되고, 시간 관계상 자주 가지 못했었지만, 도깨비라는 엄청난 흥행 드라마의 촬영지였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와 옛 추억을 돌아보기 위해 방문하기도 했었고, 데이트할 겸 남자 친구와 몇 번 구경을 가기도 했었다. 어렸을 적 방문했던 배다리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지만, 그래도 예스러움은 간직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하듯 제법 관광지로서의 느낌도 났었다. 배다리의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내겐 조금은 낯설었다.
#2. 싸리재 커피
동인천에 엄마 친구분이 사셔서 그런지 엄마는 동인천을 지금도 종종 나가신다. 그 친구분이 동인천과 그 일대의 핫 플레이스들을 몇 군데 아시는데 엄마에게 싸리재 커피라는 카페를 가보라고 소개를 시켜주셨단다. 엄마는 꼭 친구분들과 가보고 좋았던 곳은 나도 꼭 데려가는데 여기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인천을 놀러 갔었을 때 엄마와 싸리재 커피를 방문했었다. 이곳은 원래 의료원이었던 곳이었어서 그런지 의료기기 같은 것을 카페 1층 한쪽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원래는 의료원이었다가 커피를 너무 좋아하시는 사장님이 카페를 차리게 되었다는 일화도 있다. 기계로 내리는 커피가 아닌 사장님이 직접 모카포트로 내리는 커피맛도 일품이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LP판과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켜켜이 쌓인 이 공간이 빈티지스럽다. 2층으로 올라가면 한층 더 빈티지스러움이 묻어난다. 계단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면 옆에 창문이 나있다. 창가의 자리에 앉아 있노라면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에 와서 잔에 담긴 커피 한잔을 홀짝이며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고 싶다. 엄마와 처음 와보고 너무 좋아서 지금의 남편과도 연애할 때 종종 왔었다. 동인천 근처에 가면 한 번씩 들렀던 카페였다. 비나 눈 오는 날이면 한잔 하러(?) 가고 싶은 카페다.
#3. 관동 오리진
결혼기념일 1주년이 되었을 때 남편과 나는 어디를 갈지, 뭘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그때 나름 산후조리를 하고 있던 중이라서 멀리 가고 싶어도 멀리 갈 순 없었다. 그런 내가 생각났던 곳은 동인천이었다. 복고, 빈티지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는 1주년 결혼기념일 데이트 콘셉으로도 복고, 빈티지 콘셉으로 남편을 리드했었다. 옛날 부모님 세대가 특별한 날이나 데이트할 때 드셨다는 경양식 돈가스부터 시작해서 기념사진도 흑백 사진관으로 가서 흑백사진을 남겼다. 특별했다. 우리가 결혼할 때는 눈이 왔었는데 1주년 결혼기념일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었다. 복고, 빈티지 콘셉에 맞게 근처에 보인 관동 오리진이라는 카페를 들어갔다. 비 내리는 날이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카페에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하고 좋았다. 조용하게 우리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서. 가장 구석의 창가 자리를 앉았다. 투닥투닥 빗소리도 들렸고, 가만히 앉아 차를 한잔 마시며 비 오는 경치도 감상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전통차를 파는 카페여서 그에 걸맞게 전통차를 주문했고, 전통 디저트도 맛보았다. 우리가 정한 콘셉트인 복고, 빈티지와도 맞았고, 운치도 있었고. 결코 찾아보지 않았고 우연히 들어갔던 카페였지만 너무나 흡족했고 만족했던 공간이었다. 우리만 있었다가 한참의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명하지 않은 곳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SNS에도 종종 나오는 유명한 카페였다. 카페의 분위기를 보면 유명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또 가보진 못했지만 비 오는 그 특별한 날 방문했을 때를 잊을 수가 없어서 비가 오면 그때 그 자리에 앉아 차 한잔 홀짝이며 창밖을 바라보고 싶다.
세 장소 모두 어떠한 이유에서 지금 현재는 비가 와도 갈 수가 없는 상황이지만, 내게 시간적 여유가 생기고, 비가 내린다면 우산을 펼쳐 들고 투닥투닥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터벅터벅 찾아갈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