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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여행자 Sep 01. 2021

나 홀로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

나는 참 가만히 있는 걸 싫어한다. 가만히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면 좀이 쑤신다. 주말에 남편은 소파에 누워서 쉬고 있는데 나는 앉아서 쉬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무언가를 한다. 집에서도 좀처럼 가만히 있질 못한다. 그러면 남편은 좀 쉬라고 타박을 하지만, 내가 가만히 못 있겠는 걸 어쩌겠는가. 여행을 가서도 나는 쉬지 않고, 계속 움직이고 있어야 한다. 오직 잠잘 때 빼고. 여태껏 여행을 해본 결과 웬만한 체력으론 나와 동행하기 힘들었다. 이게 바로 내가 혼자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다.


약 10년 전인가. 친구 한 명과 미국 뉴욕과 보스턴 여행을 했었다. 우린 정말 거짓말 안 하고 밤늦게 숙소에 들어갔고, 몇 시간 쪽잠을 자고 아침에 일찍 준비하고 나와 돌아다니는 강행군으로 여행 스케줄을 소화했었다. 돌아다닐 때 웬만한 거리는 도보로 이동했고, 좀 멀다 싶으면 뉴욕의 메트로를, 메트로로 갈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은 버스를 이용했다. 그때 우린 어렸고, 체력이 말도 안 되게 남아돌았었다. 사실 체력이 너무 좋았던 것보다 뉴욕과 보스턴을 구경하는 그 자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그 정신력이 우리의 체력을 이겼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있다. 내가 그곳에 있다는 자체가 너무 꿈만 같고 좋아서 잠자는 시간조차 아까웠었으니까 말이다. 이 좋은 곳을 하나라도 놓치기 싫어서 더 많이 돌아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었다. 이 부분이 그때 함께 여행했던 친구와 생각이 맞아서 다행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싸우지 않고 여행할 수 있었다. 이렇게 뉴욕과 보스턴의 여러 명소를 돌아다니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여행하면서 느낀 게 있었다. 나중에도 이렇게 건강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체력을 많이 비축해 놔야지. 그리고 지금 그 친구와 만나면 그때의 여행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때처럼 여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친구는 힘들 것 같다고 한다.  "나는 그때처럼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말하니 친구는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한 번은 다른 친구와 대만 여행을 다녀왔었다. 대만이라는 곳이 작은 곳이긴 했지만, 2박 3일이라는 짧은 일정에서 여행하기에는 가고 싶은 곳이 너무 많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뉴욕 여행을 했을 때와 같이 밤늦게까지 돌아다니고 쪽잠을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돌아다녔다. 함께 여행했던 친구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이런 강행군이 좋다면서 잘 따라줬었다. 옛날에 다른 친구와 여행을 했을 때는 설렁설렁 여행을 해서 여행을 한 것 같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었다는 친구. 이번에는 본전 뽑는 여행인 것 같아 좋다고 이야기해줘 역시 싸우지 않고 즐겁게 여행할 수 있었다. 나중에 여행이 끝나고 친구가 말하길 너는 힘들지도 않냐, 체력이 참 대단하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이 말을 들으니 친구에게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었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 일본 오사카 여행을 다녀왔었다. 나는 더 돌아다니고 싶고, 더 많이 구경하고 싶은데 남편은 많이 힘들어했다. 난 하나라도 더 보고 싶고, 더 가고 싶었는데 남편은 힘들어서 빨리 숙소에 들어가서 쉬고 싶어 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신혼여행으로 아이슬란드를 갔었는데 나는 언제 또 오게 될지 모르는 이곳에 신비감을 느끼고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던데 반해 남편은 아이슬란드의 날씨도 흐리고, 바람도 많이 불고, 해도 빨리 없어지는데 그만 숙소에 들어가서 쉬자고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숙소에만 있을 거면 여행을 왜 오냐"라는 말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이 때문에 우리는 여행을 할 때마다 참 많이 싸웠었다. 피곤해 지칠 때까지 돌아다니고 싶어 하는 에너자이저 아내와 적당히 돌아다니고 쉬고 싶은 남편 간의. 이 싸움의 승자는 결국 아내인 나였지만 말이었다.

한 번은 엄마와 패키지로 노르웨이 트레킹 여행을 갔던 적이 있었다. 첫날은 수도인 오슬로에 도착하여 숙소에 짐을 풀고 자유롭게 시내투어를 하는 일정이었는데 엄마는 시차 적응도 안되고, 숙소에서 쉬고 싶어 하셨던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게 새로운 세상을 한시라도 빨리 보여주고 싶었고, 저녁도 먹을 겸 대충 짐을 풀고 시내투어를 나가자고 졸랐었다. 오랜만에 봤던 오슬로가 너무 반가웠고, 엄마는 어리둥절했었다. 백야였던 그때 저녁을 먹고 나서도 환한 하늘에 나는 눈도 말똥말똥해지고 더 돌아다니고 싶었지만 피곤해서 빨리 숙소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엄마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날은 결국 엄마와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그 후에도 나는 트레킹 일정을 모두 소화하고 엄마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실 때 그 도시 주변을 혼자 배회하기도 했었다. 엄마는 피곤하지도 않냐며, 대단하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때마다 눈이 맑아지며 "하나라도 더 보고 싶다"라고 말했었다. 우리 모녀의 갈등은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베르겐에서 터졌다.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엄마와 함께 다녔어야 했는데 엄마는 그동안 여행에서의 피로가 엄청났었고, 마지막 날만큼은 쉬고 싶어 하셨었다. 그러나 나는 마지막 날이었던 만큼 더 오랫동안 돌아다니고 싶었고, 즐기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 모녀는 갈등이 발생했고, 대화 끝에 타협을 했었다. 조금 더 돌아다니다가 들어가기로. 엄마랑 다른 여러 곳을 여행했을 때는 엄마의 체력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먼 나라로 의 여행이 엄마의 체력을 떨어뜨렸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엄마가 연세가 그만큼 드셔서 그랬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둘 다인 건지 싶다.

나의 남아도는 체력 덕분에 나와 여행을 함께 했던 동행자들은 모두 힘들어했다. 이러한 여행 때 생겼던 에피소드들 때문에 나는 혼자 여행을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여행을 한다면, 동행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가 돌아다니고 싶은 만큼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고, 내 남아도는 체력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바로 내가 혼자 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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