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았던 뉴욕, 보스턴 여행기
뉴욕, 보스턴 여행을 했던 1주일. 여행을 하는 내내 꿈만 같았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여행을 하는 동안 최소 하루에 한 명은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정말 영화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함께 여행을 했던 친구도 신기해했다. "정말 우리 영화 같지 않아?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거지? 이런 건 영화 속에서나 보던 건데 말이야." 그랬다. 영화 속에서는 많이 봤었다. 식당이나 카페를 들어갔는데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물 흐르듯이 말을 걸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이 경험이 너무 짜릿했기에 아직도 그때를 못 잊고 있는 것 같다. 그때 만났던 몇 명의 사람들을 꼽자면, 대강 이렇다.
1. 히잡을 둘러싸고 있던 캐나다 여인들
친구와 저녁에 타임 스퀘어를 갔었다. 타임스퀘어와 숙소가 가까웠던 우리는 뉴욕에 있는 동안은 다른 일정을 소화하더라도 저녁에는 꼭 타임스퀘어에서 마무리하자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여느 날과 같이 저녁에 타임스퀘어를 거닐고 있었는데 갑자기 출출해졌다. 배가 고팠던 우리는 저녁으로 무얼 먹을까 고심했던 와중에 센트럴파크에서 처음 먹어보고 반했던 쉑쉑 버거를 한번 더 먹기로 했다. 마침 타임스퀘어에도 쉑쉑 버거 레스토랑이 있었다. 역시 쉑쉑 버거 레스토랑에는 사람이 많았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뉴욕의 활기를 느꼈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 앞 테이블에 앉아있던 히잡을 둘러싸고 있던 두 명의 여인들. 갑자기 그 두 명의 여인들이 말을 건네 왔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었다. 그 여자 둘은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여행은 어디 어디 다녀왔었는지 등의 대화를 이어갔었다. 그녀들은 캐나다에서 왔었다고.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 여러 한국 드라마와 스타들을 물어보며, 그들을 아냐고 물어봤었다. 우리는 물론 안다고 대답했다. 우린 한국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그들과 엄청난 한류 열풍으로 의기투합되었다. 서로의 여행의 안녕을 기원하며, 우리는 기분 좋게 헤어졌다. 우리나라의 한류 열풍이 이렇게나 대단한 줄은 미처 몰랐었다. 새삼 내가 한국 사람인 게 자랑스러웠고, 애국심을 느끼게 해 주었던 그녀들과의 만남이었다.
2. 보스턴에서 만났던 조지 아저씨
보스턴에서의 1박 2일. 짧은 여행. 뉴욕에서처럼 그렇게 우연히 카페나 식당에서 사람을 만날 거란 기대는 애초에 안 했었다. 그렇기엔 너무나 짧은 일정이었기에. 그런데, 친구와 하버드대학교 구경을 마치고, 잠시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쉬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기억은 희미했지만, 그분은 서핑을 즐기시는 분이었고, 딸이 있었다. 우리는 뉴욕을 여행하는 중에 보스턴을 잠시 여행을 왔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나갔었다. 그 아저씨도 딸 이야기를 해주셨던 것처럼. 그렇게 서로 진심으로 대화를 이어가니 더 대화의 깊이가 풍부했던 것 같다. 이건 비밀인데, 대화가 너무 깊어지다 보니 나의 짧은 영어 실력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럴 때는 미국 생활 6개월에서 배웠던 리액션. 알아듣지 못했지만, 알아들었던 것처럼 리액션을 했었다. 그래서 대화는 끝도 없이 이어졌던 기억이 있었다. 나중에 옆에 앉아있던 친구가 대체 그 아저씨랑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했냐고 물어봤을 때는 리액션으로 승부를 봤다고 이야기를 했다. SNS 친구이기도 했던 조지 아저씨, 지금은 연락이 두절되어버렸지만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잘 살고 계시겠지?
3. 록펠러센터에서 만났던 멕시코계(추정) 아저씨
뉴욕에서의 마지막 밤을 우리는 야경으로 장식하기로 했다. 친구와 나는 여행을 오기 전 계획 단계에서부터 어디서 야경을 볼까 논의를 했었다. 나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야경을 보자고 말했었고, 친구는 록펠러센터에서 야경을 보자고 말했었다. 둘 중 어느 누구도 야경 명소를 포기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친구는 본인이 보고 싶어 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포기할 테니 야경만큼은 꼭 록펠러센터로 가자고 했다. 록펠러 센터에서 보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야경이 그렇게 예쁘다나 뭐라나. 우리는 록펠러 센터로 야경을 보러 갔다. 록펠러센터에 도착하자마자 1층에서 하나의 티켓을 받았다. 친절한 직원을 만나면 그에게 티켓을 주라는 미션이었다. 과연 티켓을 건네 줄 일이 있을까 아리송해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를 올라갔다. 전망대에는 사람들이 엄청났는데 그 많은 사람들을 통솔하는 한 직원분을 만났다. 정말 목청 크게, 온 힘을 다해 성심성의껏 관광객들을 통솔하는 그의 모습에 친절함과 매력을 느꼈었다. 내가 이 직원을 멕시코계로 추정하는 이유는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구릿빛 피부에 콧수염이 양옆으로 짙게 나있었다. 나는 수줍게 그에게 티켓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와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너무 어두워서 얼굴이 잘 나오지 않았었다. 내가 너무 아쉬워하자, 친구가 포토샵으로 간신히 사진에 밝기를 넣어주었다. 추억이 되살아 났던 순간이었다. 다시 내가 록펠러센터 전망대를 찾는다면, 그 아저씨가 있는지 살펴볼 것 같다. 아직도 있을까. 여전히 목청 높여 관광객들을 통솔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4. 애틀랜타 국제공항에서 만났던 스타벅스 직원
뉴욕, 보스턴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길, 뉴욕에서 비행기가 지연되어 경유지였던 애틀랜타에서 그만 비행기를 놓쳤다. 그 비행기는 그날 내가 체류하고 있던 어바인으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였다. 친구와의 여행이 너무나 설렜던 나는 이런 일이 생길 줄 미처 몰랐었고, 뉴욕, 보스턴 여행에서 모든 돈을 탕진하였다. 어쩔 수 없이 호텔을 갈 비용도 없어 공항에서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기까지 머물러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배도 너무 고팠다. 정말 딱 거지 신세였다. 돈이 없으니 뭘 사 먹을 수도 없었다. 그때 생각났던 스타벅스 카드. 그 안에 돈이 10불 정도 들어있었다. 다음 날 아침까지 버텨야 하니 진짜 배고플 때까지 참다가 먹자 하고, 진짜 배고플 때 공항 안에 있는 스타벅스로 가서 샐러드를 하나 사서 먹었다. 물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물도 사 먹어야 하는 이곳에서는 나의 갈증은 사치였다. 그런데 이런 나를 눈치챘던 스타벅스 직원이 물 한 컵 공짜로 내어주었다. 너무나 내가 아무것도 없을 때 받았던 감사한 친절이었어서 그랬는지 세상엔 정말 나쁜 사람보다 친절하고, 착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깨달았었다. 이 외에도 공항에서 혼자 몸을 웅크리고, 쪽 잠을 자고 있었더니 담요를 덮어주고 갔던 청소부 직원도 있었다. 정말 너무 힘들었을 때 받았던 친절이라 더없이 소중했었던 기억이 있다. 입장이 바뀌었다면, 나는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 같은데 이를 계기로 많이 반성하는 시간도 됐었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겠다는 것도.
마치 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행하는 내내 카페나 식당에서 줄곧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던 사람들, 여행객에게 말을 걸어주던 사람들. 어렸을 때 뉴스에서 접했던 미국은 총기사고가 많고 각종 마약 사고도 많아서 여행하기 전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었지만, 기우였을 만큼 너무 알차고, 행복했던, 한 편의 영화를 찍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너무 만족스러웠던 여행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렇게 몇 년이 지나도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게 아닐까 싶다. 이렇게 기억에 남을 멋진 여행을 만들어준 데에는 관광지나 음식도 한몫했지만, 뉴욕, 보스턴을 여행하면서 만났던 이러한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