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아빠와 동생과 산을 자주 오르내렸었다. 그때의 나는 산을 참 좋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네 뒷산부터 시작해서 각 지역 별로 유명한 산까지. 어느 산이든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날 다람쥐라는 별명을 얻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점점 몸이 무거워졌던 나는 그렇게 좋아했던 산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비단 산뿐만이 아니었다. 평지조차 걸어 다니고, 움직이는 게 싫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산과 멀어지고 말았다.
강화도 고려산 등반
한 번은 가족들과 봄에 분홍빛 진달래로 유명한 강화도 고려산을 찾았었다. 고려산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를 해 놓고, 아스팔트 길을 쭉 걸어가다가 나무로 된 계단을 조금 올라가면 다시 아스팔트 길을 걸어가면 돼서 산행이 고되거나 어려운 코스는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차를 주차한 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언제 도착해?"라고 묻기 시작했다. 그러면 가족들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고, 이제 시작이라고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언제 도착하는지 묻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말했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려산에 올라가면 주변에 보이던 분홍빛의 진달래도 눈에 차지 않았었다. 겨우겨우 사진을 찍고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그래도 괜찮았다. 산을 자주 가고 싶지 않았다.
강원도 민둥산 등반
이 뿐만이 아니었다. 가을에는 억새로 유명하다는 민둥산이라는 곳을 등산하기로 했었다. 민둥산에 도착해서 등산로까지 걸어가는데 등산로의 초입에서부터 나는 어김없이 또 "언제 정상에 도착해?"라고 물어봤었다. 아직 등산로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었다. 그러면 옆에 있던 가족들이 고려산을 올랐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였었다.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나를 책망하곤 했었다. 그렇게 나는 산에 오르는 것이 힘겨웠었다. 민둥산도 완만했었다. 어렸을 때 올랐던 산과 비교를 해보면 그리 힘든 코스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힘들었다. 내 체력이 뒷받침되어주지 못했다. 가족들은 자꾸 살랑살랑 거리는 억새 풍경이 예쁘지 않냐고 물어오는데, 힘들어서 그런 예쁜 풍경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걷는 걸 좋아하던 내가. 움직이고, 산을 오르는 걸 좋아했던 내가 이렇게 움직이는 걸 싫어하고, 힘들어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한심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렇게 살 순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내 머리를 스쳤다.
다이어트를 향한 결심 - 옥순봉 등반
다른 가족들에 비해 완만했던 민둥산에 잘 오르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다시 산을 좋아할 수 있도록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운동을 하면서 식단을 조절하고 다이어트를 계속했다. 민둥산에 다녀온 지 1년 여의 시간이 흘렀고, 우리 가족은 제천으로 여행을 가던 도중에 둘레길을 걷기 위해 옥순 대교를 가기로 정하고 출발을 했다. 내 체력을 시험할 날이 온 것이었다. 그러나 옥순대교를 가기로 했던 우리 가족은 뜻하지 않게 길을 잘못 들어서면서 옥순봉으로 가게 되었다. 옥순대교 둘레길을 가게 될 줄 알고 원피스에 조리를 신고 갔었는데, 뜻하지 않게 옥순봉 등산을 하게 되어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옥순봉을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다이어트 그 후
확실히 다이어트를 하고 나니 고려산이나 민둥산을 갔을 때처럼 힘들지 않았다. 완만했던 고려산과 민둥산보다 더 가파르고, 암벽도 많았지만 어렸을 때의 체력이 회복된 거 같아 뿌듯했다. 다이어트를 하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체력이 확실히 좋아졌다. 얼마 전 회사 워크숍으로 설악산 등산을 다녀왔는데, 회사 동료분들이 등산을 정말 잘한다며 날 다람쥐 같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었다. 몸이 가벼워지니 이제 다시 산에 자주 가고 싶고, 산이 좋아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