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아빠가 단양의 고수 동굴이라는 동굴을 데려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친구와 제주도를 놀러 갔을 때 지구 과학을 전공했던 친구는 제주도에 동굴이 있는데 동굴을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하면서 만장굴이라는 동굴을 함께 다녀왔던 기억이 있다. 이 외에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동굴로의 여행이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여행하면서 종종 동굴을 다녀왔던 기억이 있는데 수도권으로는 동굴을 다녀온 적이 없었다. 동굴을 여행 갈 때는 항상 먼 곳이었다. 그래서 수도권에는 동굴이 없을까 했었다. 그런데 역시 없을 리가 없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동굴이 있었다. 그 동굴은 바로 광명 동굴이다.
광명 동굴의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원래는 1903년 설립된 시흥 광산이었다고 한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광명 동굴에서 채굴된 광물들을 일본에서 수탈해갔으며, 징용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시흥 광산은 수도권 최대의 금속 광산이었으며 일제로부터 해방 후에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는데 이때 피난민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었다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광명 지역 최초의 노동 운동 발생지이며, 1972년에는 폐광이 됐다고 봤다. 폐광 이후에는 소래포구의 새우젓 저장소로 쓰이다가 2011년에 바로 지금의 모습인 관광지 광명 동굴이 탄생한 것이었다.
실제로 나도 광명 동굴을 가보기 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만 먼저 봤을 때는 '이곳 참 조명이 예쁘다, 동굴을 놀러 가면 시원하겠지?' 이런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물론 동굴을 들어가서 봤을 때 에어컨 바람보다 더 시원했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에어컨이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역시 "기계는 자연을 따라오지 못하고,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라는 걸 느꼈다. 동굴 안의 조명을 예쁘고 화려하게 꾸며 놓아서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눈이 즐거웠고, 구경거리가 참 많았었다. 특히 나는 와인을 마셨을 때 좋은 기억이 없어서 와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광명 동굴에서 시음했던 와인은 주황색 빛깔의 로즈와인은 정말 달콤했어서 '사람들이 아 이래서 와인을 마시는구나!'를 느꼈다. 주변 지인들이 내가 와인이 맛이 없다고 할 때마다 "네가 아직 진정한 와인을 마셔보지 못해서 그렇다"라고 하였는데 그 말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런 즐거운 구경도 좋았지만, 이면에는 내가 몰랐던 위에 언급한 역사적 아픔들도 동굴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뜻깊은 하루였다. 동굴에서 나왔을 때 입구에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잠시 평화의 소녀상을 바라보며, 광명 동굴에서의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아픔을 다시금 돌아봤다.
다녀온 지 벌써 몇 년의 세월이 흘러버린 광명 동굴. 이제 곧 무더운 여름이 다가오는데 올여름은 집에서 멀지 않은 광명 동굴에서 나의 새로운 가족이 된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시원한 여름을 나도록 해야겠다.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