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만난 건 프랑스 그림책 읽기 수업에 참여하면서 강사님이 소개해주신 책중에 한 권이었다. 제목과 표지에서 짐작하듯 이 책의 내용은 자폐스펙트럼 증상을 가진 아이와 관련된 내용이다. 이 책을 처음 소개받자마자 다섯 살이지만 아직까지 말을 하지 못하는 아들 녀석이 생각나서 꼭 사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때 마침 이 수업을 들었던 그림책방에서 운명처럼 만나 바로 결제했다.
내용은 대충 이렇다. 이 책의 아이는 모든 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모든 뽀뽀도 싫어하는 아이였다. 심지어 부모님의 소리와 뽀뽀조차도. 그래서 귀를 막고 혼자 있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아이가 선택한 길은 바로 벽 속이었다. 벽속에 들어가니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이 다 있었다. 젖소, 당근, 양귀비꽃 등등. 그래서인지 좀처럼 벽속을 나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벽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나비춤도 마음껏 췄다. 엄마, 아빠가 아무리 밖에서 아이를 부르고 벽에 작은 구멍을 내 빛을 비춰도 아이는 구멍을 막고 빛을 차단할 뿐이었다. 어느 날 엄마와 아빠는 아이를 위해 노래를 부른다. 아이가 듣든말든 벽속에 있는 아이를 기다리며 아이를 위한 노래를 부른다. 엄마 아빠의 간절함에 응답한 것일까? 아이는 결국 용기를 내어 벽속에서 나오게 된다는 해피앤딩의 이야기다.
아이는 여전히 벽속을 다시 들어갈 때도 있지만 이전처럼 벽속에서 살진 않는다. 이렇게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내딛고 아이가 벽속을 나오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감히 상상해 본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생각해 보았다. 우리들도 가끔 여러 사람들과 즐겁게 시간을 보내더라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또한 아이가 세상으로 발을 내딛게 하기 위해 부모의 절실함과 인고의 시간, 그리고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더욱더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 발달지연을 겪고 있는 아들 녀석과 내가 계속 생각이 났다. 나 또한 아들의 언어발달지연을 극복을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기다리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어쩌면 지금보다 더 절실하고 지금 노력하는 것에 비해 더 피나는 노력을 해야 극복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다시금 스쳤다.
아들 녀석은 이 책의 아이처럼 자폐스펙트럼이라는 증상을 병원에서 확실하게 진단받은 건 아니었지만 이전에 ”가능성이 조금 있다 “라는 이야기를 발달센터나 작은 발달 의학 병원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책을 보면서 ’ 우리 아들도 이런 행동을 보였었는데 혹시 일까?‘하면서도 ’이런 행동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괜찮겠지 ‘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워낙 범주가 넓은 병이기에 점점 성장하면서 ”아닌 것 같다 “라는 이야기를 발달센터나 작은 병원에서 듣긴 했지만 확실하게 진단을 받기 전까지는 안심하기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이 특히 더 가슴에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의문점이 있었다. 하고 많은 꽃 중에 왜 하필 양귀비꽃일까? 그림책에 정답은 없고, 작가의 의도를 확실하게 파악할 순 없지만 궁금증을 푸는데 혹시나 도움이 될까 싶어 양귀비꽃의 꽃말을 찾아보았다. 양귀비꽃의 꽃말은 바로 <위안>이었다. 아무래도 벽속에서 아이가 양귀비꽃의 씨앗을 그린다는 점, 양귀비꽃이 점점 많이 피어나는 걸 그렸다는 점, 양귀비꽃이 시들었을 때 슬퍼했다는 점이 위안을 받고 싶어 그렸지만 위안받는 존재가 시들어 없어지니 슬퍼했던 것이 아닐까?
책의 내용 중에 부모님이 아들이 걱정되고 소통하기 위해 냈던 벽의 작은 구멍을 처음에는 싫어했던 아들이 그곳에 구멍을 더 크게 내어 양귀비꽃다발을 만들어 그 구멍에 꽂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는 벽속에 갇혀 살던 아들이 부모님을 만날 준비가 됐고, 부모님과 소통하고 싶고 마침내 세상에 나올 준비가 됐다는 신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머리에 스치면서 책의 내용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 그림책 연수를 갔을 때 소개해주고 싶은 그림책을 가져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눠달라고 하셨었다. 다른 재미있는 그림책도 많았지만 이 책을 같이 연수하시는 동기분들께 소개하고 나의 사연도 나누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연수 동기분들에게 이 책에 나오는 양귀비꽃처럼 위안받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연수 동기분들이 이 책을 소개하자 이런 책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하셨다. 이 책을 알게 되어 인상적이라고 하시면서 같이 공감해 주시고 걱정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을 때 잠시나마 양귀비꽃을 만났었다.
이 책처럼 나의 간절한 기다림과 피나는 노력을 통해 마치 벽에 있는 것처럼 여러 사람들과 소통을 하지 못해 힘든 아들 녀석이 하루빨리 세상에 한걸음 내딛고 더 행복해지기를. 오늘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