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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여행자 Jul 13. 2024

할머니의 뜰에서

나의 할머니와의 추억을 돌아보다

이 책은 작년에 처음 나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책이 나왔을 당시 여러 사람들의 서평이 이어졌었지만 그림 스타일이 내 스타일이 아니었어서 이 책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었고, 보지 않았었다. 온라인그림책 모임 오티움에서 이번달 주제는 휴식, 쉼이었다. 그 첫 번째 타자가 바로 이 <할머니의 뜰에서> 그림책이었다.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 위해서는 이 책을 볼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을 도서관에 대출하러 갔을 때 내가 알고 있던 표지가 아니라서 당황스러웠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는 하도 많은 사람들이 책을 대여하고, 반납하다 보니 종종 겉표지나 띠지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도 그러했었다. 어제 이야기를 나눠보니 겉표지와 함께 비치해 둔 도서관도 있어 살짝 부러웠었다.


할머니의 뜰에서. 제목에서처럼 할머니와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의 그림책이었다. 겉표지를 벗기니 앞 속표지의 온화하고도 인자한 할머니가 앉아계신 모습이 사진처럼 액자에 담겨있었다. 뒷 속표지를 보면 손자가 햇살을 받아 앉아있는 모습이 역시 사진처럼 액자에 담겨있었다. 할머니는 폴란드 분이셨는데 폴란드 말로 바바가 바로 할머니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할머니를 바바라 부른다.


아침 일찍부터 아빠차를 타고 할머니 집에 도착을 했다. 할머니 집은 유황광산 뒤에 작은 오두막이었다. 할머니는 혼자 살고 계셨는데 아이가 가도 나와보지 않으셨다. 그러나 아이는 할머니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따뜻한 밥을 짓고 있었다. 할머니 집에 가면 할머니가 직접 기르시는 채소들과 그 채소들을 이용한 요리가 집안 곳곳에 있었다. 할머니는 아침마다 버터향이 가득 나는 오트밀에 직접 키우고 만든 비트, 양배추, 피클 등을 넣어 냉면그릇 같은 큰 접시에 항상 내어주셨었다. 할머니가 어렸을 적에는 많이 못 드시고 자라셔서 그렇게 많이 베푸시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그런 마음을 알고 많다고 생각해도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었다. 땅바닥에 음식을 조금이라도 흘리면 할머니는 바로 그걸 주워서 입에 넣어주시곤 하셨다. 그렇게 할머니가 챙겨주신 아침을 다 먹고 나면 할머니는 학교에 데려다주셨다. 학교 가는 길에 비가 오는 날이면 할머니는 지렁이를 주우셨다. 그 주운 지렁이를 밭에 묻어주곤 했었다. 할머니는 폴란드에 사셨다가 캐나다로 이민을 오셨는데 영어를 잘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할머니와 많은 대화가 오가지 못했다. 언젠가 할머니에게 왜 지렁이를 주워서 밭에다가 주는지 물어봤었는데 할머니는 대답대신 흙이 묻은 손을 맞잡는 걸로 대신했었다. 이 장면이 많은 걸 설명하지 않아도 단지 손을 맞잡는 것으로 둘의 교감을 의미하는 것 같아 뭉클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할머니는 더 이상 오두막에 살지 않았다. 아이의 집에서 함께 살았다. 더 이상 할머니집에 갈 일이 없었고, 학교도 아빠가 차로 태워다 주었다. 할머니는  잘 움직이지 못하셨다. 그래서 아이의 방 옆 구석진 방에 거의 누워계셨다. 할머니가 원래 살던 오두막은 없어졌고 그 자리에는 높은 빌딩이 생겼다. 씁쓸했다. 할머니는 더 이상 아침을 해주지 않았다. 대신 엄마가 차려주신 오트밀과 사과한쪽을 할머니 방에 매일 아침마다 가져다 드렸다. 할머니가 드시다가 음식을 바닥에 떨어뜨리시면 얼른 주워다가 할머니 입속에 넣어드렸다. 할머니가 이전에 했던 대로 하는 모습에서 할머니는 웃으셨고,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또다시 뭉클함을 느꼈었다. 할머니와 창밖을 보고 있는데 밖에 비가 내렸다. 우비를 입고 얼른 나갔다. 할머니 대신 지렁이를 주웠다.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봤을 때 더 따뜻함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이 책의 할머니의 푸근하고 인자한 모습에 내 마음도 따뜻했다. 잊고 있던 할머니와의 추억들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 맞다, 할머니와 이런 일들이 있었지’ 하면서 말이었다. 할머니가 예전에 해주셨던 손만두, 그리고 나를 위해 만들어주셨던 니트원피스와 니트, 엄마가 안 계실 때 여기 나온 할머니 바바처럼 손수 차려주셨던 따뜻한 밥과 반찬까지. 할머니의 요리는 엄마의 요리보다 더 맛있었다. 그렇게 손맛이 가득 넘쳤던 할머니였지만, 지금 나의 할머니도 여기 나오는 바바처럼 우리 엄마에게 거의 의지 하신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있어 손의 힘이 많이 약해지셨고 손이 많이 떨리셔서 손으로 만드는 건 거의 잘 못하신다. 이 책을 통해 할머니와의 추억을 돌이켜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또 할머니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던 시간이기도 했다. 아무쪼록 꾸미기 좋아하시고, 패셔니스타이신 소녀 같은 할머니가 지금처럼 건강하고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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