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의 제목만 딱 봤을 때는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는 알록달록한 색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질 줄 알았다. 그리고 책장을 열었는데 길게 쓰인 글귀들. 글밥이 적을 거라 예상했던 책에는 예상보다 많은 글귀들이 적혀있었고, 책을 잘 볼 수가 없어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림책모임을 얼마 앞두고 다시 펼쳐보았는데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말한 ‘색깔’ 은 바로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 정체성을 나타낸 것이었고, 끝까지 보고 나니 이 책이 많이 좋아졌다.
주인공 발랑탱은 남자아이다. 색깔로 무언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알록달록한 옷을 입는 걸 좋아한다. 친한 친구들은 주로 여자친구들이다. 남자친구들과도 잘 놀고 싶지만 무섭다. 어느 날 발랑탱의 엄마는 발랑탱이 좋아할 만한 곳을 데려갔다. 바로 옷 원단을 파는 곳이었다. 거기서 다양한 원단을 만져본 발랑탱은 신이 났었다. 그리고는 엄마에게 생일 선물로 갖고 싶은 것이 생겼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바로 재봉틀이었다.
학교 쉬는 시간에 운동장에 있는데 축구를 하고 있던 남자친구들 몇 명이 발랑탱에게 다가왔다. 같이 공을 차고 놀자고 했는데 발랑탱은 같이 놀고 싶었지만 공차기를 잘 못하는 자신이 공놀이에 방해될까 봐 거절을 했었다. 그러자 남자친구들 몇 명은 발랑탱을 놀리기 시작했고, 발을 걸어 그를 넘어뜨렸다. 전교생이 발랑탱의 모습을 보며 비웃었다. 상처가 난 발랑탱은 창피함에 그만 울고 싶었지만 겨우 울음을 참았다. 화가 난 발랑탱은 그만 그 친구들 중 한 명과 싸우다가 그 친구의 옷을 찢었다. 담임선생님이 운동장에 나왔다. 담임선생님에게 혼이 났다. 나 또한 화가 났다. 왜 먼저 놀린 건 발랑탱이 아닌 다른 친구인데 발랑탱이 혼이 났어야 했던 걸까? 발랑탱의 억울한 입장에 감정 이입이 되어 화가 났었다. 그 친구가 발랑탱을 놀리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을 것을. 발랑탱은 양호실에 들어가서 상처를 치료하던 중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발랑탱의 집 앞에서 친구가 함께 학교에 가자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발랑탱은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다. “나 오늘 학교 안 갈래”
보통의 부모라면 자녀가 학교에 안 간다고 했을 때의 반응이 왜 학교에 가지 않느냐고 몰아세우기 마련이다. 그러나 발랑탱의 아빠는 그런 그를 꼭 안아주고 존중해 주었다.
발랑탱은 우울할 때 딱 생각난 것이 있었다. 바로 생일 선물로 받은 재봉틀. 재봉틀을 꺼내 옷을 디자인하여 득드드르륵 재봉틀에 실을 끼워 열심히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옷을 만들 때 발랑탱은 다른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오직 옷 만드는 데에만 열중할 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옷을 만들던 발랑탱은 마침내 알록달록한 옷이 완성되었다. 발랑탱은 그 옷을 자신이 옷을 찢었던 그 친구에게 주고 싶었지만 차마 그 속마음을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다. 발랑탱은 다음날 학교 가기 싫은 마음을 극복하고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친구와 함께 학교에 갔다. 자신이 만든 알록달록한 옷을 가지고.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과연 발랑탱은 그 아이에게 다가가 옷을 주었을까? 옷을 받았다면 받은 그 아이의 반응은 어땠을까? 둘은 과연 화해할 수 있을까? 책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나름 궁금해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발랑탱이었다면? 내가 그 친구였다면?
이 책이 특히 더 좋았던 점은 다양하게 생각하면서 볼 수 있는 책이라서였다. ‘개성,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고, 성별 특성에 대한 이야기로도 볼 수 있고, 또한 개개인이 집중할 수 있고,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기도 해서 다각도로 볼 수 있는 그림책이라 좋았다.
지인 중에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남자아이를 키우는 언니가 있다. 그 언니의 아들은 섬세하고 여자아이들과 주로 친하며 양갈래로 머리를 묶는 걸 좋아하고 치마를 입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마치 발랑탱처럼 말이다. 그 언니의 고민은 아이가 세상사람들의 편견과 시선, “남자아이면 남자아이답게 하고 다녀야지” 이런 말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였다. 이 책을 보면서 그 언니와 그 언니의 아들, 고민을 함께 나눴던 그 시간이 생각이 나서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었다.
나는 “남자면 남자답게”, “여자면 여자답게” 이런 말을 정말 싫어한다.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분홍색이라는 시대에서 벗어나 남자도 분홍색이 될 수 있고, 여자도 파란색이 될 수 있는 시대로 빨리 바뀌면 좋겠다. 이러한 색깔로 구별 짓는 건 멈춰지고 각자 개개인의 취향이 존중받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
나는 원래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해마다 최소 한 번은 꼭 비행기를 타야 했던 사람이었는데 이런 내가 결혼과 동시에 국제공항을 한번 못 가보고 있고, 여권기간도 만료되었다. 여행을 가고 싶어 속상하고 우울한 마음도 있었는데 요즘에는 여행 말고 집중할 수 있는 좋은 것들을 많이 찾았다. 바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책 만들기.
글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내게 아직 많이 서툴고 잘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하게 되는 것이 참 좋다. 여행이 전혀 안 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비행기를 타고 싶은 마음이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이렇게 ‘색깔’ 이란 상황에 따라 찾아가기도 만들어가기도 하는 것 같다. 색깔을 다 찾은 줄 알았는데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색깔이 또 그에 맞게 생기는 것 같다. 앞으로도 나만의 색깔을 찾아나갈 계획이다. 나는 아직도 색깔을 찾는 중이다.